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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08. 2018

#24. 부딪혀라, 보일 것이다

[신동진의 와인에 빠지다] - 2화 와인의 시작

모든 일이 그러하듯,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어떻게'라는 부분에서 턱하고 걸리고 만다. 나도 그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이럴 땐 나만의 방식이 있다. 일단 달려들고 본다. 와인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이렇게 와인 연재까지 온 방법이다.

먼저 책을 통한 학습을 선택했다. 책으로 나올 정도라면 적어도 사실관계는 확인이 됐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쉬는 날 대형서점으로 가서 와인 관련 서적을 보이는 대로 살펴봤다. 대부분 비슷한 구성이었는데, 포도품종과 생산지 등에 대한 설명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너무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이 방법으로는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할 것 같아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토요일이면 집 근처 마트 와인 판매대를 찾았다. 퇴근길에는 회사 근처 와인 매장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모르겠더라도 와인에 붙어 있는 라벨을 눈에 익히고자 했다. 사람도 자꾸 보면 정이 들듯, 보다 보면 언젠가는 와인과 나도 가까워지지 않겠냐란 막연한 기대에서다.

그렇게 한 달여 간 배회하다 안식처를 정했다. 바로 마트 와인 판매대다. 마트에는 수많은 와인들이 널려있을 뿐 아니라 와인 라벨을 찍어 검색해봐도 그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다. 마음 편히 와인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매주 토요일이면 마트에서 와인을 살펴본 뒤 1~2병을 산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저녁에 와인을 맛볼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맛을 보고 난 뒤에는 꼼꼼하게 맛과 느낌, 그리고 와인의 포도품종과 나라,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 정리한다.

그러다 알게 됐다. 와인이란 것이 단순히 맛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와인 한 병에는 참 많은 인문학과 세계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학창시절 사회와 지리, 세계사에 소홀히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당시 난 이들 과목을 '매우 굉장히 너무너무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 쯤으로 여겨 등한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들 과목을 단순 암기 방식으로 접근해서 흥미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경험상 와인과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많이 마셔보는 것'이다. 비싼 와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와인 매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2만 원대 이하의 저렴한 와인 중에서도 훌륭한 향과 맛을 선사하는 것들이 많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취향에 맞게 알아나가면 된다.


남들이 아무리 최고라 하는 와인이라고 해도 내게 맞지 않을 수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많이 마셔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복잡한 향과 맛을 보여주는 와인을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와인을 찾았다면 이제 포털에서 '와인 이름'을 검색해보자. 와인이 어떤 포도품종으로 만들었는지, 생산자·제조 지역, 수상 이력 등이


상세히 나와 있다. 수입가격이 궁금하다면 와인서처에서 검색해보면 된다. 해외 판매 가격, 빈티지별 와인 평가 점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더 궁금하다면, 이제 해당 와인을 구성하고 있는 포도품종에 대해서 검색해보자. 해당 와인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살펴보면 좋다. 의외로 재미난 세계사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게 처음으로 시작하는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프랑스 보르도 지방 와인 중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을 주 품종으로 한 레드 와인을 추천한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은 세계 최대의 와인 산지로, '수학의 정석'과 같은 곳이다. 보르도 지역의 와인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다른 지역의 와인을 이해하는데 기초 지식이 되니 말이다. 아울러 까베르네 쇼비뇽은 레드와인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포도품종이다. 실제로 와인 매장이나 마트에 가면 와인 라벨에 가장 많이 적혀있는 품종이기도 하지만 세계 최상급 레드와인이자 보르도의 5대 와인으로 손꼽히는 '샤또 라피트 로칠드'나 '샤또 마고' 등의 주된 품종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까베르네 쇼비뇽으로 만든 와인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복잡한 향과 맛을 선사해줘서다. 오래 숙성된 와인일수록 더 깊은 향과 맛을 줘 더욱 매력적인 포도 품종이다.

​사실 처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애정을 쏟아야 한다. 외국어 공부를 비롯해 글쓰기 훈련, 취미로 삼는 기타, 피아노마저도 익숙해지려면 많이 해봐야 한다.


최근 한 선배님께 연락이 왔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는데, 문득 내 의견이 궁금해지셨다고 했다. 들어보니 이미 많은 준비를 하셨고, 거의 마무리 국면이었다.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우리 마음속 뜨거움은 머뭇거리는 동안 식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이 식기 전에 부딪혀 보세요. 그래야 그다음이 보여요"라고..


헤럴드경제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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