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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7. 2024

선생님 저 전학 가게 되었어요.

Transactional한 학생과 교사의 관계, 그로부터의 배움

 저녁 8시, 목요일. 나는 퇴근 후 캠핑 컨셉의 카페에서 아이를 바쁘게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가장 모범적인 질문자였던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목요일 밤 8시에 온 카톡. 이에 대해서 먼저 사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며,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이들의 수업결손 보완을 위해 오픈채팅방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질문 및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특히 작년 2023년에는 AI 기반 교육 정책이 강조되면서, 학교에서 수업을 한 내용을 AI 플랫폼을 통해 추가 학습하고, 그러한 경과를 종합해서 카톡에서 질문을 하도록 나는 아이들에게 지도하고 있었다.


 "24시간 질문을 해라, 단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양해해달라."가 내가 아이들에게 내린 지침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새벽에도 질문을 받고, 이따금 깨어있으면 대답을 해주거나, 설거지가 끝난 뒤, 혹은 운전 중이면, 차에서 내려서 답변을 해주던 식이었다.  


 그 속에서 희주는 가장 뛰어난 질문자였다. 가장 많은 질문을 했고, 그로 인해 가장 많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 덕분에, 희주는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2학기 1,2차 지필평가, 그러니까 중간과 기말을 모두 100점을 맞았다. 


"선생님, 저 전학 가게 되어서 인사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헐."


 이런, 


"...우리 학교가 인재를 잃었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의대 보냈다고 현수막에 내걸 수 있는 아이였는데. 이 말을 입밖에 내도 되겠지만, 그것은 뭔가 조금 비교육적인 것 같아. 그래서 그 말을 삼키느라, 대답이 조금 늦었. 


"어디로 가니?"

"어- 저- 캐나다로 이민 가게 됐어요."

"아하-...가족과 다?"

"네네."


 와 부럽다.


"가서 계획은?"

"네? 아- 가서어- 일단 공부하면서 대학, 가야할 것 같구요."


 나는 때로 고등학생에게,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 처지에 비추어 질문을 하는 것 같다. 학습 계획. 그런 게 고등학교 2학년생에겐 구체적이기 어렵다. 희주는 뜻밖의 질문인지 어색하게 대답했고, 나는 반성했다. 몇가지 덕담, 학교에서 다시 보자는 이야기와 함께 전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책이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아니, 책을 내가 더 빨리 썼더라면. 나는 그 바로 직전에 탈고한 교육서에, 희주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그 책이 올해 나올 예정이었는데, 책이 나와있었더라면 작별의 선물로 적합했겠지만, 내가 책을 너무 느리게 썼다. 책이 나오지 않았으니 별 수 없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일을 하다가 희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 샘이 쓴 책이 올해 나올 예정인데 거기에 너의 지분이 있단다. 책 나오면 주려고 했는디 출국전엔 안나올듯.나중에 학교로 오렴 한권 주마 ㅋㅋ

- 오마이갓.... 와 나 책에 나왔다ㅡ..ㅠㅠㅠㅠㅠㅠㅠㅠㅠ 쌤 감사합니다 꼭 찾으러 갈게요ㅠㅠㅠㅠㅠ


내게 있어서 아끼던 학생의 유학 소식만큼이나, 희주에게 있어서도 뜻밖의 일이었겠지. 원고지 10장이 넘는 자기 이야기에 놀라, 희주는 이 카톡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까지 보내드렸다고 한다(폰으로 보기에 눈이 아프시지 않으셨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작별인사로는, 이 정도가 고작일 뿐이었다. 보기 드문 좋은 학생을 만나서 많이 배웠고, 희주와의 이야기가 책의 한 챕터를 고스란히 담당한다. 


 얼마 뒤 이민과 전학 수속이 모두 끝나, 희주가 커다란 가나 초콜렛을 사들고 교무실로 찾아왔다. 정말로 마지막 인사가 되었는데 따로 줄 것은 없어서, 마침 교무실에 보관중이던 <앵무새 죽이기>를 꺼내서 앞에 글귀를 하나 적어서 건냈다. 그리고, 좋은 제자가 학교를 떠냈다.




 존 듀이는 후기에 들어서 자신의 "상호작용적 Interactional 교육"을 "교환작용적 Transactional 교육"으로 확장시켰다. 전기의 듀이 교육철학에서, 학습자의 흥미를 기반으로, 이전 경험이 후행 경험에서 확장을 이룸으로써 학습이 발생하던 것에서 보다 발전하여, 수업의 설계자 교사에게 있어서 학습자와의 상호작용적 경험이 본인의 성장을 유도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수업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학습자만이 아니라 교사인 터에, 단순한 상호작용으로는 그것을 규정할 수 없으니, 교환작용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다. 학생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교사도 성장한다. 


 희주와의 배움의 과정은 상당히 교환적이었다. 질문이 첨예했다. 다시 말해 뾰죽하니 날카롭고 예리했다. 충분히 숙고된 질문들이 날아왔고 그로 인해 나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그 근거로, 아래처럼 한꺼번에 이런 총공격이 날아들었다. 



 마땅히, 나는 이 성실한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1년이 흘렀다. 늘 이런 질문이 오간 건 아니었지만, 희주의 질문은 "좋은 답변"을 이끌어낼 가치가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교사로서 성장했다. 희주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도 보다 성실히 답해줄 수 밖에 없었고, 희주와의 문답을 오픈채팅방 계정에 포스팅해, 다른 학생들도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이 일이 듀이의 Transactional한 교육의 사례로 맞춤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도, 학생들에게 질문을 권장한다. 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는 학생관리 프로그램에 허접하나마 메신저 기능이 있어, 주말이든 저녁이든 질문을 하라고 하고 있다. 아직 새벽까진 이르지 못헀지만 저녁시간에도 질문이 잘 들어온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아이들에게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침으로, 학교를 바꾸진 못하겠지만 나 한사람은, 그리고 아이들의 배움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변화는 사람을 영원히 바꾼다. 올바른 질문이 올바른 답변을 만날 때라면. 


 그리하여 올해는, 이 친구가 질문왕 유력한 후보다. 질문이 첨예하진 않지만 핵심을 잘 찌른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름 말을 빠르게 알아듣는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만날 가치가 있다.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이 교차하는 지점에 성찰은 발생하고, 그때 아이는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만난다. 그 성장을 다시금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가는 것이 교사의 일일 것이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진급시키고, 그러면, 희주같은 아이를 만날 수도 있고, 그러다가 떠나보내는 게 교사의 팔자다. 좋은 학생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는 것. 그러다가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는 것. 남는 것은? 교사에겐, 오로지 나 자신의 배움의 성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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