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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23. 2024

독서기록장, 생기부에 이렇게 연계한다

큰질문과 작은 질문, 그리고 성찰 연계

 어제는 조금 재미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수업인 터라 4월쯤엔 수동태 진도가 나가게 되는데, 학생 여러명이 수동태의 개념을 헷갈려하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고등학교 1학년들에게 좀 들어온다. 중학교 때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암기를 하거나 하는 문제이지만 고등학교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분사 등, 수동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 문제들.

 그래서 나는 내친 김에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수동태의 개념을 인지시키기 위해 잠시 수업을 진행했다. EBS 다큐 프라임에서 오래 전에 방영한 <동과 서> 편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를 활용해 제작한, 상당히 양질의 다큐다. 

https://youtu.be/J5hOkggR_nk?si=S84JQ9X9CqwSFfe5

 리처드 니스벳은 관계 중심, 객채 지향의 동양적 사고와 주체 중심, 분석 중심의 서양의 사고를 <생각의 지도>에서 매우 설득력있게 분석 논증해냈다. 아이들에게 이 서적은, 동서양의 관점 차이에서 발생하는 주체와 능동태, 수동태 개념을 전달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수업 말미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 써 오는 사람, 한 반에 두명 있을까 말까야. 가지고 오면 잘 써주긴 할 건데 기대는 안합니다. 이제 교과서 봅시다."


 

 독서기록장은 학교생활기록부, 그리고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책이 아니면, 평가자인 입학사정관이나 교수들로선, 아이들이 무엇을 읽고 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인터넷 기사인가? 챗GPT가 토해낸 자료인가? 인용 하나에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교수이고 입학사정관인데, 인용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기록으로 가득찬 생기부 기록이란, 굉장히 난감하고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명문대 진학을 노린다는 아이들에겐 "1년에 최소 10권의 독서기록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되어야 한다"라고 지도를 한다. 


 문제는 여전히 설득력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 그로부터 어떻게 면밀한 사고를 해냈는지를 평가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독서교육지도안이 교과에 내재되어 있어야 하고 학생들이 그 프로세스를 따라 책을 읽고 독서기록을 기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해둔 것이다. <생각의 지도>를 제안한 것에 있어선, 나는 교과 지식과 면밀하게 연계해서 아이들에게 제시한 셈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건은, 바로 어제,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에게 수동태의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다큐프라임 <동과 서>를 보여주고 <생각의 지도>에 대해 소개한지, 딱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 독서기록장 써왔어요."

"응?"

 수업 중 한마디도 하지 않던 조용한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와 불쑥 내민다. 나는 일단 빼곡한 글자에 놀라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어떤 아이였는지를 확인하고, 잘 알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이 독서기록장을 몇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리고 여러번 놀랐다.


 첫째로, 글씨가 일관되게 작고 조밀하다. 그것이 빼곡한 분량보다 놀랍다. 성격상, 글씨를 작게 쓰는 편이라고 해도 분량을 다 채우다 못해 칸 밖으로 삐져나갈 정도라니, 이것은, 독서기록장을 쓰기 전까지 충분한 숙려를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쓸 말이 많았으니, 글씨도 작아졌겠지.


 둘째로, 구성이 탄탄하다. 동양과 서양의 보편적인 의식차이에 대해 학생 자신이 가지고 있던 큰 질문과, 수업에서 제시된 작은 질문을 학생 자신이 긴밀하게 연계한 데다, 동서양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도 과감하게 제시하고 있다. 학생이 이정도를 써오면 교사로서는 더 무얼 넣고 빼고할 것도 없다. 


 셋째로, 이게, 책을 소개한지 고작 일주일 사이에 읽고 써온 것이라. 이야.


 그날 밤에 나는 대학원 수업을 듣다가, 잠시 쉬는 틈에 이 내용을 빠르게 생기부 상시기재해두고 아이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공유해도 되겠느냐. 아이는 동의했고, 그래서 나는 수업 때 아래의 내역을 보여주었다.


 왜 동양인의 OO과 OO OO이 높은데도 OO OO는 서양에서 주로 나오는지, 왜 OO OOOO에서는 OO학이 발달하였는지 등, 동서양의 인식 차이에 대해 관심을 갖던 중(큰 질문), 수업 중 수동태의 설명에 인용된(작은 질문) '생각의 지도(리처드 니스벳)'를 읽고(큰질문+작은질문->독서연계) OOOO에 OO의 OOOOO을 OO하는 OOO OOO OO을 보임(학습 특성). 동서양의 OO와 OOO, OO의 관계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인상을 책 속의 분석과 비교하며 깊이 있는 사고를 진전시켰으며, OO OO성으로 인해 OO을 OO게 되는 동양적 OO를 벗어나, OO OO을 완전히 OO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것을 다짐하는 뛰어난 성찰적 지성을 드러냄(탐구 내용).


 학교생활기록부에 도서기록을 하고자 한다면, 이런 수준으로 교과연계, 혹은 비교과 활동연계가 이루어진다면 보다 평가자를 잘 설득할 수 있다. 학생의 활동 내역을 배경과 함께 제시했으며, "왜"라는 질문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큰 질문과 작은 질문을 통해 아이가 탐구하게 된 학습자료가 명쾌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아이 본인의 탐구 활동이 상세하게 기재되었다. 


 이러한 독서기록이 기초교과와 탐구교과를 중심으로 6~7개, 그리고 학생 개인의 진로활동에서 2~3개 정도, 이 수준에 준해 기재될 수 있다면, 효과야 더 말해 무엇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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