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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01. 2024

학교생활기록부, "연구내용"을 써야할까?

중요한 것은 연구 질문과 연구 결과

"아 잠깐만, 지금 입학사정실 가서 컴퓨터 좀 끄고 갑시다."

"네 교수님."


 두 해 전의 일이다. 야심한 시각에 모교의 교수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현장교사 특강을 해달라고 하셨고, 나는 이내 그 요청에 응해 오랜만에 모교를 가서 까마득한 과 후배님들께, 교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어떻게 하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을 했다. 


 특강이 끝난 다음 교수님께서는 식사를 제안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강의동에서 나와, 대학 본부 건물에 잠깐 들렀다. 교수님 덕분에 입학사정실이란 것을 처음 구경하게 되었다. 모교인 한국외대의 경우, 100명은 족히 들어갈 커다란 대형 회의실에 원형으로 책상을 배치하고 자리마다 PC가 놓여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의 자리로 가셔서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겨 나오셨다.


"아 지금 입학 시즌이라 정말 쉽지 않아요. 한명 생기부 보는데 10분도 채- 주지 않아요."

"아 네 교수님들 생기부 보느라 힘드시죠 잘 압니다."


 10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등학생 학교생활기록부, 많으면 한명당 22,3 페이지 정도가 담겨나오는 그 빼곡한 서류를, 평가자 한사람 당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모두 검토해서 평가해야 한다. 교수님은 바쁜 입시 일정 중에 현장교사 특강을 주관하신 뒤, 나와 식사, 그리고 차담까지 하시고는, 다시 입학사정실로 돌아가셨다. 대학 교수는 정말이지 바쁜 직업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어떻게 쓰던지, 평가자인 입학사정관과 교수들은 그것을 면밀히 검토할 시간을 부여받지 모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던져진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어떻게 써야, 평가자가 수월하면서도 정확하게, 또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학생부 종합 전형 평가자의 곤란한 입장을 고려하며, 학교생활기록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전공적합성과 학습역량을 알고 싶어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학생들이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어떻게 심화학습했는지를 주로 살펴본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비해 현재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방법은 "주제중심 프로젝트 탐구활동"이다. 쉽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학 조별과제와 같다. 팀을 짜서 한가지 주제에 대해 탐구활동을 하고, 그것을 발표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진로영역이나 동아리 등에 넣는 것이다. 왜 혼자 하지 않고 팀으로 하느냐 하면, 아이가 혼자 해서는 중도탈락자가 나오기 쉽고, 열심히 하는 애들끼리 묶어놓으면 주제에 융복합이 그래도 좀 이루어져, 내용이 보다 충실해진다. 교사 입장에선 또한, 학생 개별 주제탐구보다는 팀별 운영이 관리가 수월하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탐구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의 진로나 동아리 뿐만 아니라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에도 조금이라도 넣는 추세인데,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두가지다. 


1. 학생들의 연구활동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이 어렵다

2. 학생들이 조사하는 연구내용이 차별화 되지 않는다. 


 첫번째 사항부터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각 과목마다, 진로활동, 또 동아리 활동마다 주제별 탐구 및 발표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시험 대비와 수행평가 대비, 수능 대비까지만 해도 벅찬데 거기에 여러 과목의 주제별 탐구활동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다들 해야하니, 또 대학에서 좋게 본다하니 일단은 그 활동에 끼려한다. 그래서 그나마 학생들과 교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모둠별 발표활동이 되고 나면, 이때부터 무임승차가 발생한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아이의 진짜 흥미와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 입장에서도 일단 대학이 잘 본다 하니, 또 애들에게 좋은 활동이라 하니 주제별 발표활동을 집어넣긴 했는데 동아리 단위 15명, 학급 단위 25명을 지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실있는 운영보다는, 구색을 맞추어 보고서를 받아 발표를 시키고(물론 발표를 생략하기도 한다.) 그것을 생기부에 잘 적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평가자인 입학사정관과 교수의 입장에서 이렇게 작성된 생기부는 어떨까? 거기에 적힌 내용이 학생 개인적으로, 공적으로 의미가 있는 연구활동이라고 느껴질까? 수천명의 생기부를 동시에 보는 상황에서 말이다.


 학생 스스로도 이걸 왜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주제별 탐구활동이 생기부에 적히고 나면, 그렇게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이가 진짜 계획하고 주도한 활동이 아니다보니 탐구 결과 역시 대동소이한 것들이 나오고 그로 인해, 교수와 입학사정관은 비슷한 생기부 내용을 보고 보고 또 본다. 각 전공 과목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내용, 익숙한 도서, 의미도 없는 강연과 견학. 그것이 아이들의 어떤 특성을 말하고, 이 탐구활동으로 인해 얘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역량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기재 내역들이 난립한다. 


 결국 평가자인 입학사정관과 교수, 생기부를 함께 꾸려나가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곤란한 상황에서 생기부의 양만 채워지고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은 낭비되는 것이다.




연구내용보다 중요한 건 연구과정이다


 교수들의 본업은 연구이고, 제자들의 연구를 관리하는 것이다. 연구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입학사정관 역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발되기에 교수에 버금가는 연구에 대한 전문성을 갖는다. 그러한 평가자들의 입장에서는 학생이 "왜" 탐구했는지 설명되지 않는 주제별 탐구활동은 사실상 학생의 탐구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똑같은 내용이 담긴 생기부를 수백명 분량씩 보면서 생기부 기재 수준의 인플레이션에 적응해 나갈 뿐이다. 


 학생들의 주제별 탐구 활동이 생기부에 기재되어, 평가자에게 가치로운 항목으로 이해되려면 이것을 왜 탐구했는가?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연구 설계 과정을 "주제탐구 퍼실리테이션"이라고 하는데, 원래 혁신학교처럼 학생들의 자기주도적인 학습활동을 강조하는 곳에서는 이 과정을 거치려 노력한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한때, 그래서 "혁신교육은 포스트잇이다"라는 말도 유행했다.)

출처 : 비전성남(https://m.snvision.newsa.kr/9331)

  주제탐구 활동을 하게 되었다면, 왜 이 활동을 했는지 학생 저마다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기부 첫머리에 들어가고 나면, 연구내용이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아래는 그러한 방식으로 지도한 진로활동의 생기부 기재 사례다. 


 왜 우리 교육은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고자 국제바칼로레아(IB)에 대하여 학문적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여 핀란드의 15배, 일본의 3배인 우리나라의 교육 비용을 근거로 제시해 경쟁에 매몰되고 지향하는 교육의 가치도 불문명하다는 점을 비판하며,  왜 바칼로레아 시험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유럽 문명의 모태인 로마와 라틴어, 인문교육의 계승과 인간화라는 관점에서 고찰(후략)


 교육 진로를 지망하는 학생의 위의 사례에서는 교육학과 교수라면 누구라도 품게 될 질문으로 글머리를 장식하고, 그로 인해 최신의 교육학 이슈의 하나인 국제 바칼로레아를 연구 대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전조사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진단될 수 있는지를 보였다. 그리고 연구 내용은 간소하게 작성하고, 연구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분석 내용을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학생들의 주제탐구 활동은 사실상 기존에 나와있는 자료들을 분석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길게 써봐야 그냥,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다 뿐이지 그것으로서 아이가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발전적 아이디어를 구상했는지, 어떤 학습계획을 세웠는지 평가자가 알 도리가 없다. 위의 생기부는 아래의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육목표를 교육과정과 논작평가까지 연계한 IB의 체제가 역량 중심 관점보다도 학습자의 잠재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엘리트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교육에 담아내려는 시도라는 점을 평가함.


 그것이 옳든 그르든, 주제탐구를 통해서 학생들이 품게 된 생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를 통해서 학습자가 어떤 특성, 어떤 능력을 보이는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처럼, 학생 스스로가 이 주제에 대해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가 하나의 연구 과정으로서 평가자에게 납득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주제발표 활동에서 내용 구성은 학생들의 자유도가 높다. 즉, 이러한 내용을 넣고자 한다면 학생들이 마음껏 자신의 생기부를 디자인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니, 주제발표 활동에서 이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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