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보는 고등학생 이후 처음인듯
“저거 누가 그린 거야?”
“윤아가요.”
“오 사진 찍었지? 이따가 나 사진 좀 줘!”
복도를 거닐다 교무실 바로 옆 교실의 칠판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내가 수업을 들어가기도 하는 1학년 학급이다. 세상에나 티니핑이, 고등학생들까지 홀려버렸구나.
심상치 않은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포켓몬이나 뽀로로를 덕질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귀여운 일이지만 티니핑안 아이들 입장에선 이미 철이 들고도 한참 뒤에 태어난 신문물 아닌가? 그런데 그 티니핑이 영화로 제작되고, 게다가 만만치 않게 흥행을 하더니, 이젠 고등학교 교실에 출몰을 해버렸다. 유명 인터넷 방송인들이 티니핑 캐릭터들을 하나씩 학습하고 있는 괴현상에 더불어. 그러니 수업 중엔 이런 일도 생긴다.
"아 샘 진도핑 진도핑."
"...진도를 나가야 시험을 볼 거 아니니."
2010년대엔 진도 빡세게 나가는 선생님을 "진돗개" 즉, 진도만 나가는 개새끼라고 했다지. 단어 뒤에 "핑"만 붙이면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를 대단히 쉽고 애교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너희들은 대부분, 급식핑 녀석이고. 수업 중에 아이라인을 그리는 저기 화장핑. 그리고 감히 학교 복도에서 축구공을 굴리는 축구핑 등등. 세상 귀엽지 아니한가. 서로를 귀여운 캐릭터로 부르는 일이란.
어린 딸아이를 기르는 입장에선 등골브레이커 걱정에 티니핑에 대해 벌써 겁이 나긴 한다. 우리 딸네미처럼 활력 넘치는 아이가 티니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이번 생일에 벌써 아내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는 생일파티에 피카츄와 뽀로로 등 각종 캐릭터를 보낸 판이다. 이게 티니핑이 된다면 단가와 품목이 동시에 상승하는 대 참사가 일어날 것이고, 게다가 아이들의 연령대가 올라가면 딸네미 친구의 티니핑 취향까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빠 아니야 윤아는 딱풀핑을 좋아해." 라거나, "엄마가 똑똑핑 안사줘서 선물 못했잖아!"라는 말도 나올 판 아닐까. 그러한 걱정을 아빠는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솜씨 좋은 아빠는 말이다. 딸네미가 조금 더 크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을 품는다. 같이 동물핑도 만들고, 우리 딸도 티니핑 캐릭터로 그려주고, 같이 봉제인형도 바느질로 해보고 찰흙으로도 만들어보고, 그걸 고이 간직하는 방법도 알리는 즐거움 말이다. 어떤 취미, 취향들은 돈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면 되니까. 어떤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는 것처럼 아빠는 티니핑 정도야. 아이가 신나게 갖고 놀 장난감들을 만들 수 있다. 이제 딸아이가 그만큼은 커 가니까, 키워 놨으니까.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생기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새로운 이런 대중 문화 상품은 마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교감의 창이다. 나는 교실에, 까불이 아이를 화장핑으로 그려놓았다. 그랬더니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그 사진을 찍어갔다. 피카츄, 뽀로로, 아빠가 그려주는 캐릭터들을 아이는 알아보고, 가위로 슥삭 잘라버린다. 가위 놀이를 즐거워 해. 어쨌든. 아이는 크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사주든, 만들어주든 하면서 아이의 세계를 알아간다.
한가지 드는 약간의 성찰이랄까 반성이랄까 하는 것은, 아이는 늘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속도로 발달한다는 것. 어떤 일면은 눈부시게 성장해 있고, 다른 어떤 일면은 영 느려서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아이는 신비핑이니까. 늘 신비롭기만 한 그런 세계, 그런 캐릭터들이니까. 그런 신비롭고 다양한 세상에 저마다의 하나 하나 서로 다른 티니핑들로, 그렇게 커 나오겠지. 내 네살박이 아이도, 열일곱 내가 기르는 아이들도. 그러고보니 윤아는 그림을 잘 그리니 그림핑일까 매직핑일까 색연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