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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런 건 왜 읽고 그래"

교수님과 첫만남은 이랬다.

by 공존

- 영득, 오랜만이네. 이번에 다른 학교로 옮긴다. 잘 사나?


시간은 더욱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014년 2월의 어느 저녁.


운동을 마치고 샤워장을 나와 드라이를 하는데 페이스북 메세지 알림이 떴다. 이따금 학교 활동에 대해 질문하는 학생들 외엔 페이스북 메세지를 잘 쓸 일이 없는 터라 뭐지? 하고 폰을 봤는데, 5년 전에 교생 실습을 가던 마지막 학기에 수강한 수업의 교수님이셨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폰을 보다가 얼른 답문을 했다.


- 헉 교수님 넵!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요!

- 이렇게 메세지를 주시다니 황송할 따름;;


- 황송은 무슨...잘 지내고, 어디선가 또 보게되지 않을까? 잘 지내시게. 평강.


- 네 서울대에서도 좋은 가르침 나누어 주세요. 축하드립니다. 짧은 한 학기 수업이었지만 여러가지 말씀 잊지 않고 있어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친한 동생들을 통해서 교수님께서 우리 모교에서 서울대로 옮기신다는 것을 몇개월 전에 들은 터였다. 그리고, 졸업하고 5년간이나 대학 생활을 잊고 살아온 나와는 다르게, 동생들 여럿은 교수님과 계속 학문적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대강 짐작하게 된 것이지만 학교를 옮기시면서 제자들과의 식사자리가 마련된 것이고, 그 자리에서 동생놈들은 내 이름을 어떻게 꺼낸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교수님께선 날 기억하시고 페이스북을 검색하여 친구추가와 함께 메세지를 보낸 것.


뜻밖의 일이라 당연히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의 교직생활은 상당한 혼돈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교수님의 문자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마침 2014년 2월은 고3 감독과 혁신교육 업무를 2년째 병행하면서, 그리고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와의 여러가지 문제로 몸도 마음도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워낙 교수님께서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관계맺음에 적극적이신 분이라(여기에는 약간의 비밀이 있는데, 나중에 밝혀진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도 많고, 모두에게 존경을 사는 분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때의 나는, 이렇게 먼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아직 차가운 2월의 저녁 바람을 맞으며 완전히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냉기, 샤워장에 구비된 남성용 스킨의 코를 찌르는 민트향에 잠겨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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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관찰하고 검토하고 증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 고등학교 영어교사. 교육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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