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an 21. 2020

토스트는 의외로 아침으로 부적절하다

최적의 레시피를 찾는 장대한 모험

 바깥양반은 내가 종종 아침에 먼저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연한듯 아침을 거른다. 그래서 내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정성스레 볶아놓은 김치볶음밥이 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거나, 7곡밥과 소고깃국이 밥솥과 냄비에 고이 잠들어있는 일을 적잖이 겪는다. 저혈압 탓이려니. 바깥양반은 잠이 너무 소중한 사람이니까. 이를 바득 갈며 음식물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린다. 보통 서론을 이렇게 시작하면 안사람을 디스하고 끝나는 글이 되겠지만, 


 그래서 나는 분노의 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깥양반은 쌀밥충이지만 토스트를 해주면 혼자 밥상에 앉아서 밥을 차려먹는 것보단 좋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11월과 12월에 두어번 외박과 외출을 할 일이 있어 일찍 집을 비웠다. 그래서 토스트를 만들기로 해 전날 빵을 사왔다. 


 그러나 첫번째 문제. 채소를 무엇을 넣어야 하는가. 바깥양반의 편식하는 성향을 나의 토스트에 담아내지 않기 위하여, 속재료로 채소는 반드시 필요했다. 바깥양반 한끼 토스트를 위해 양상추를 사오는 것은 무리다. 양배추 한통을 사서 내가 샐러드로 퍼먹어야 할까 생각도 해봤으나 주객이 전도된다. 아침 한끼를 위해 일주일 내내 양배추를 소비하는 일은. 그래서 당장 생각난 것이, 황당하게도 김치를 씻어서 토스트에 넣는다는 기상천외한 발상. 


 첫번째 외출의 아침, 신김치를(하필이면!) 한 줌 쫑쫑 썰어 물에 헹궜다. 계란을 풀어 뒤섞고는 토스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듬어서 팬에 부쳤다. 바깥양반이 사랑하는 스팸을(두번째 오판) 꺼내고 치즈를 까고...빵을 앞뒤로 굽는다. 너무 오래 걸린다! 김치를 썰어야 하니 도마도 썼고 헹구기 위해 볼도 썼다. 아차차, 스팸을 썰어야 하네. 여섯조각 내서 토스트에 올리기로 했다. 칼과 도마를 씻어야 한다. 다시 스팸을 자르고 굽고...아 빵이 탄다! 대충 만들어서 어찌어찌 조립했지만 과정도 결과물도 실패였다. 바깥양반은 문자로 "김치 넣었어? 이상한 맛이야"라는 평을 남겼다. 세상 천지, 김치 토스트라니. 그것도 신김치.


 두번째 외출의 아침. 그래서 양배추를 샀다. 통 양배추를 꺼내 바깥 잎사귀를 몇개 까내고 부드러운 부분을 골라 찢어냈다. 양배추를 씻고 이번에도 스팸(아직 오판을 수정 못했다.)을 꺼내 여섯조각으로 썰었다. 계란과 치즈를 까먹지 않았다. 그래서어...완성. 그러나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구만. 빵을 구워야 하니 버터를 꺼내 팬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절차다. 버터가 녹는 것을 기다려 팬을 한바퀴 돌리는 것도 시간이다. 당연히 맛이 없을 리는 없는 조합이지만, 나 바쁜데! 아침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면서 "간단히" 만들려고 고른 메뉴가 이토록 손이 많이 가서야? 


 세번째 토스트. 그냥 단지 전날 술을 마셨기 때문에 아침을 토스트로 만들었다. 그간 절치부심. 김치 죽이고 양배추 재끼고...답은, 양파다. 왜 진작 생각을 안했지? 양배추보다 손질이 훨씬 쉽고 뒷처리도 쉽다. 맛도 좋고. 스팸도 포기했다. 냉동실에 꽝꽝 얼어있는 코스트코산 베이컨을 전날 꺼내놨다. 번거롭게 스팸을 썰 필요가 없어졌다. 순전히 나의 나태함과 무지다. 바깥양반이 좋아하기 때문에 토스트에 스팸을 넣어준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지만 그것이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면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방기한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즐겁지 못하면 먹는 사람이 편안할 수 없다. 요리의 주체는 나니까.


 베이컨 두장을 꺼내 굽다가 허리를 톡톡 잘라내는 건 훨씬 쉽다. 그리고, 버터를 팬에 올리지 않았다. 식빵을 꺼내 그대로 구웠다. 결과는 역시 성공. 당연히 식빵에는 버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토스트를 한다고 버터를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을, 왜 진작 생각을 못했지. 그러니까 세번째 토스트의 절차는 이렇다. 재료를 모두 꺼낸다. 양파를 손질하고, 베이컨을 굽다가 가위로 톡 자르고, 기름에 계란을 프라이하고, 빵은 그대로 팬에 굽는다. 치즈를 까서 모두를 합치고, 적당히 틈을 찾아 소스를 부어뒀다면 끝! 야! 쉽다! 만들기도 쉽고, 검증된 맛이다. 


 둘이 함께 앉아 토스트를 먹었다. 특식 만드는 김에 핫초코도 끓였다. 토스트다운 토스트를 만들기 위해 또 다시 몇차례나 삽질을 했다. 그리고 깨우친 사실은, 역시나 토스트가 간편한 아침식사는 아니라는 점. 샌드위치가 나을 것 같다. 샌드위치라면 역시...생햄에 양상추? 잠깐 망상을 하다가 역시 안되겠다, 잘 먹고 있는 바깥양반을 본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내일은 떡국이나 끓여야지.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여전히 한가득이니 번거로운 토스트는 잠시 안녕이다. 김치나 한 통 쫑쫑 썰어놔야겠다.

아차 옥수수.


매거진의 이전글 바깥양반과 나의 점과 선과 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