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한 사회적 조건 아래에
- 아빠!
어어? 왜 그렇게 화 내면서 들어오니.
- 아 진짜 개빡치네. 아니 애들이. 진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학교에서. 무슨, 그거 아니라고 하면, 나보고 조선족이녜요.
흐음...자주 그런 애들이랑 싸우니?
- 아니 애들 진짜 이상해요. 말도 통하지도 않고, 어디 이상한 거 듣고 와서는 자기들끼리, 무슨 이상한 단어만 쓰면서 우리들 말은 다 무시해요.
그럼 너도 걔들 무시하면 되잖아.
- 네에? 아니, 그건 안돼죠. 막 교실에서 맨날 이상한 말 하고 그거 아니라고 하면 욕하고 무시하는데-.
자아. 그렇지. 그게 첫번째 이야깃거리가 되겠구나. 이상한 말을 하는 친구들에 대해서, 화가 나고 따지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지. 그런데 그런 걸 그냥 보아 넘기는 아이들도 있어. 너는 굳이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화가 나고. 그렇지?
- 네? 네에...아니...딴 애들도 좀 이상해요. 나만 화내니까 애들은 오히려, 나만 이상하고 진지충이라고 그러고...
아빠가 대학교 1학년 때 우리가 모두 좋아했던 교수님이 계셨어. 그 교수님이 그 해에 수업을 하시고 마지막 시간이었는데, '지식인은 고독하다'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거든. 원래 언제나 어느때나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어렵고 고독한 거야. 일단, 아무도 도와주지 않거든. 그리고 뭔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걔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오히려 다수결로, 그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궁지에 몰리는 경우도 아주 많아.
그런데 아빠가 그동안 보고 배운 바로는, 그런 올바름을 고민하고 분노할 줄 아는 건 매우 중요한 능력이야. 그래서 우리 딸 얘기를 듣고 첫번째로 해줄 말은, 네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분노하는 그 마음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해.
네가 친구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에 대해 싸우고 싶어하는 마음. 그걸 부르는 단어가 여러가지 있지만, 아빠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단다. 정의로운 양심, 행동하는 양심, 비판적 양심 등등. 중립적인 단어이기도 하고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친구들의 이상한 말과 행동에 분노하는 그런 양심을 갖고 있는 것에 아빠는 조금 보람이 느껴지네.
- 네? 양심...아니 좀...양심이란 말은 시시한데...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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