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걸 손질하라고?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냐면 외전-

by 공존

몇해 전 일인데,


"야 너 언제 집에 들어가냐."

"뭐...놀다가 들어가는디요?"

"야 집에 가면 문 앞에 택배 상자 좀 바로 챙겨서 냉동실에 넣어놔. 생물 고등어라서 늦게 넣으면 상해."

"아 참...알았어."


시골에서 또 엄마가 무언가를 올려받은 모양이다. 충청도 서해안 곳곳, 당진 홍성 예산 서산 등등에 엄마의 동창 아주머니들이 살고 계시고 무엇보다 외가인 태안엔 셋째 이모가 살고 계시다. 그래서 택배로 집에 여러가지 식재료들이 올라오곤 한다. 홍성 국거리 쇠고기도 한 박스, 태안 특산물인 말린 우럭도 한 박스, 방앗간에서 빻은 고춧가루 등등. 그래. 이번엔 고등어인가. 자반도 한번 올라온 적 있다. 오래 두고 먹었다. 이번엔 고등어라...그날 약속을 조금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가 택배 상자를 풀어, 생 고등어들을 냉동실에 착착 넣었다.


다음날 하나를 꺼내 혼자서 구워먹었는데 우와! 맛있다. 시장에서 생물 고등어를 사더라도, 으레 소금을 쳐서 봉지에 넣어주곤 해서 그간 먹어온 고등어는 짠맛이 밑바탕이 되어 있다. 그런데 평상시 하던대로 팬에 구웠을 뿐인데...순박한 고등어의 맛이 담백함 그 자체다. 기름 쫙 뺀 참치캔의 그 맛이랄까.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바삭하게 구워졌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도 남은 고등어를 모두 해치웠다. 혼자 먹기엔 고등어 한마리는 너무 많았지만, 부모님은 모두 바쁘신 터라 결혼 전에는 거의 늘상 집에서 밥을 혼자 차려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주 일요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에게서 선물을 받기 위해 동네에 들를 일이 있어 미리 아버지에게도 연락을 했다. 친구와 만나 선물을 챙겨 집에 들렀다. 아버지랑 한시간 정도 앉아서 같이 TV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어김없이 조카 돌봐주러 누나네 가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어어 애 왔어. 뭐 가져가라고 할 거 없어?"

"바꿔줘봐."

"야 받아봐라."

"네."

"야 냉장고에 고등어 있거든. 생물이야. 그거 꽝꽝 얼린 거니까 집에 가져가서 녹여서 손질해서 먹어."

"고등어? 네."


그렇게 우당탕탕, 고등어와 고기를 조금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고등어는 두 마리에 한 봉지씩 들어가 있었다. 우선 일요일 저녁은 바깥양반이 카레를 해달라고 한 터라, 그날 저녁은 양파를 볶아 꽤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고등어는 그대로 언 채로 냉동실로 직행했다.


이틀 뒤, 저녁에 고등어를 구워먹을까 하고 점심 때쯤에 고등어를 내어놓았다. 바깥양반과 둘이서 한 마리가 맞춤한 양인데 두 마리씩 묶여 있으니 다른 한 마리는 다시 냉동될 신세지만 일단 봉지 째로 꺼냈다. 저녁이 되어서 이제 고등어를 먹어볼까 하고 싱크대로 가서 고등어를 집었는데 앗?! 고등어가, 생물 고등어가, 손질이 안 되어 있다. 그러니까, 머리도 달리고, 꼬리도 달린, 그냥 정말 고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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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엄마."

"왜."

"고등어 이거 손질 안된거야?"

"아하하하 그래 임마 손질 안됐다고 했잖아."

"아니, 손질이 안됐다고 해서, 배도 안따고 머리도 있는 건 줄은 몰랐지!"

"아하하하하 야 그거 녹여놨냐?"

"어."

"그러면, 쌀뜨물에 잘 씻어내서 손질해."

"어?"

"머리 따서 땡겨. 내장 나와 그럼 배 따고 지느러미만 대충 걷어내."

"와..."


하마트면 엄마 시즈모드 박을 줄 아시냐고 물을뻔했다. 그러나 나는 효자이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우선 쌀뜨물을 냈다. 밥이 조금 남아있었는데, 그건 퍼내서 냉동실에 넣고 새로 밥을 앉혀야 할 판이다. 요즘 쌀뜨물을 집에서 어떻게 재활용하는 30대가 있긴 한가? 내가 20대에 이 일을 당했다면 더욱 훌륭한 청년이 될 수 있었겠다. 아버지는 쌀뜨물을 이리저리 살림에 쓰시는데 나중에 배워야 하나. 온갖 생각을 하며 쌀을 씻어, 밥을 새로 앉히고 물로는 고등어를 씻었다. 아...이 티티한 고등어의 눈망울이라니. 두 고등어 중 한쪽의 고등어가 좀 더 눈색이 좋지 않았다. 왜 이런 건 눈에 띈담.


마음을 굳게 먹고 도마에 고등어를 올렸다. 칼을 머리지느러미 뒤에 집어넣어 대각선으로 머리방향으로 밀어냈다. 머릿살을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왜 나 처음이지 이거. 머리뼈의 빡빡함을 느끼며 칼을 팍! 그러니까 피도 팍!

혐오스러워서 다른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아...빨간피다. 칼슘이 많구나. 두려워 겁시남을 느끼면서 고등어를 뒤집었다. 다시 머리지느러미 뒤로 칼을 집어넣어 밀어낸다. 아슬아슬하게 반대편의 칼집과 만났다. 힘을 주어 머리를 떼어낸다. 내장이 반쯤 딸려나왔다. 도마에 피가 이미 흥건해 칼과 고등어 도마를 한꺼번에 씻어내고 배를 따낸다. 다시 씻는다. 옆에서 바깥양반이 내 어깨를 붙들고 구경을 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여기까진 쉽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요령이 남았다. 물론 어디서 배운 건 아니고 그간 고등어를 먹으며 배운 눈썰미다.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내 갈라야 한다. 등뼈에 최대한 칼을 붙여서 죽 발라내야 하는데...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자괴감이 막 들면서...

혐오스러워서 다른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잘 되지 않았다. 등뼈를 따라 살을 발라낸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어쨌든 등지느러미만 붙은 채로 첫번째 고기가 손질이 끝났다. 도마가 다시 붉은 피로 흥건한데, 한 마리가 더 남았다. 이걸 업으로 삼는 분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솟구치면서 다시...머리 쪽에 칼집을 넣기 시작했다.


고등어 두 마리 손질이 그렇게 끝났다. 두 마리째에도, 등을 따내는 칼집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대로 두마리를 씻어내 각자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넣었다. 손을 박박 씻는다. 고등어를 손질하며 몇방울 물이 몸에 튀었다. 옷을 갈아입고 세수도 했다.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고등어는 무리다. 마침 해동된 아이들이니 곧장 구우면 딱이겠지만 오늘 저녁에 고등어를 먹는 것은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이 고등어였다. 손질된 그 모양 그대로 팬에 올려 뚜껑을 닫았다. 소금기 없는, 아마도 포획된지 몇시간만에 살아있는 채로 냉동되었을 그 고등어. 설거지와 상차리기를 동시에 하는 틈에 바삭하게 고등어는 익었다. 소금기 없는 생물이니 그대로는 싱겁다. 간장소스를 부어 구울까 하다가, 아침부터 그런 짓을 하면 집안에도 연기가 자욱할 것이고 위층 아래층에도 민폐일까 해 그만두었다. 대신에 종지에 간장을 붓고 겨자를 풀었다. 와사비가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내 손으로 머리를 따고 배를 딴 고등어는, 여지없이 참말로 참맛이다. 담백함 그 자체, 생물의 원기 그 자체다. 한번 녹았다가 다시 얼렸음에도 불구하고 싱싱함이 어디 가지 않았다. 비린내 잡내가 조금도 없다. 보람찬 아침 밥상이다. 두툼한 살이 둘이서 먹기에도 한참이나 남았다. 붉은 피를 참아가며 손질한 보람이 있다.


냉동실에 아직 여덞마리가 남았다. 원래의 그 모습을 간직한 채로.

https://www.youtube.com/watch?v=DA63jO80JQ8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 동안 내가 지켜온
수 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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