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를 이케이케

하마트면 호주산 소고기로 만들어먹었다가 부부 동반 응급실행

by 공존

“뭐여 이게. 이 사진이 실화냐.”

“뜨른 뜨른~.”

"후리지아를 사오라고 갑자기 헛소리를 하나 싶더니 그래도 의미가 있네."

"오늘 같이 날씨 좋은 날에 꽃 한다발 사오는 게 귀찮아?"

"아니...집 도착 5분 전에 사오라니. 너 퇴근길에 꽃집 있으면서."

"꽃은 남자가 사야지 그래도."

"흐응."

"자자자 먹자아아."

"맛있게 먹어."

"Yo."


내가 밥상을 차리니, 바깥양반이 밥그릇 두개를 들고 도도도 자기 방으로 가서 찰칵 찰칵 사진을 찍어댄다. 뭘 하나 싶었더니, 마침 오늘 우연히도 바깥양반은 내게 후리지아 한다발을 사오라 말했고, 그리고 나는, 바깥양반에게 서프라이즈 메뉴를 선사하려던 참이다.


코로나 덕에, 그리고 바깥양반이 요즘 부쩍 알뜰해진 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훌륭한 프로주부인 탓에, 매일 매일 이런 저런 밥을 해먹느라 바쁘고 신이 난다. 어제 학교 바깥에서 잠깐 회의가 있었는데 마주앉은 장학관님의 첫마디가 이거였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 요리를 하고 살아요?"

"아니 뭐...취미죠 뭐. 저는 배움의 과정이랍니다!"

"푸훕!"


옆에서 마침 물을 마시던 다른 장학사님이 물을 마시다가 풉 하고 거의 뿜으실 뻔 했다. 먼저 질문을 던진 장학관님은 남성. 옆에서 뿜으신 장학사님은 여성. 그러니까 이것도 어느정도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가사를 잘 모르는 남성으로선 나처럼 요리를 해 먹고 사는 게 그저 궁금한 일이고, 그에 대해 천진난만하게 답하는 나에 대해서, 매일 같이 메뉴를 고민하고 사는 평범한 여성으로선 그저 황당한 답변일 테고.


그러나 나도 고민을 안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오늘 출근해서는 업무를 부지런히 챙겨두고 한 숨 돌릴 짬에 바깥양반에게 카톡을 보냈다.


- 오늘 뭐먹지.

- 뭐먹지잉

- 흐음...고민이네.

- 룰루~

- 아.

- 생각났다.

- 뭔데?

- 음...기대해봐. 바깥양반 좋아하는 탑3 메뉴 중에 하나를 해볼게.

- 스팸?

- 야!


이 와중에 스팸이 탑3 메뉴라고 하는 것도 바깥양반답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러니 살이 안빠지지.


나는 오늘은 육회비빔밥을 하고 싶다. 그보다는, 불현듯 육회비빔밥이 땡기는 날이었다. 화창한 날씨처럼이나 신선한 육회를 참기름과 설탕과 간장에 싹싹 비벼, 갖은 채소와 양념으로 버무려 먹는 그 고소하고 달콤하고 짭짤한 맛에, 신선한 쇠고기의 식감을 즐기고 싶다.


최근에 내가 두번이나 연속으로 실수를 한 게 있다. 바깥양반은 진밥을 잘 못먹는데, 일요일과 오늘 아침 화요일까지 하루 걸러 하루를, 글쎄 진밥을 한 것이다. 꼬들꼬들한 마른밥을 좋아하는 바깥양반은 진밥을 싫어하고, 나는 그래도 진밥이 조금 더 달달하기에 선호하지만 그래도 바깥양반에게 맞추어야 하니 그런대로 먹을 따름인데, 결혼하고 천번을 넘게 매일같이 밥을 차리면서도, 30개월이 넘은 오늘 글쎄 3일에 두번이나 밥을 망가트리다니. 그래서 바깥양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메뉴를 차려주고 싶었던 생각도 있다. 나도 좋고 바깥양반도 좋은 육회비빔밥. 그러나, 사 먹으러 가면 비싼.


동네에 꽤나 훌륭한 육회비빔밥 전문점이 있다. 한우를 취급하는 정육식당인데 15000원이면 1인분으로 훌~륭한 육회비빔밥을 즐길 수 있다. 원래는 바깥양반을 데리고 거길 가려고 했는데...주말에 처가를 다녀오느라 둘이서 거의 10만원 넘게 써버렸다. 3,4일전에 제법 출혈이 컸는데 오늘 한끼 식사에 3만원을 쓰는게 살짝 고민이다. 한번 생각을 해봤다. 만들어볼까? 만들면 분명히 훨씬 저렴할 것 같은데.


그래서 퇴근길에 마트를 들렀는데 여기서 황당한 사건을 내가 또 겪었다. 저렴해서 자주 찾는 식자재마트 정육코너에, 한우 우둔살이 없네?! 어...이거 뭐야 하다가 호주산 홍두깨살이 보이길래 일단 집었다. 여러 식당이나 뷔페의 육회가 수입산이라는 건 비밀도 아니니까. 그래서 깻잎과 참기름에, 육회비빔밥에 올릴 노른자를 위해 계란도 한판 사서 집으로 향하는데.


아하!? 수입육으로 육회를 만들어먹었다간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다고?!


쇠고기는 도축 이후에 다양한 오염을 겪는다. 게다가 도축된지 최소 3,4주는 되었을 수입산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호주에서 도축되어 건너온 이...수입 쇠고기를 가지고 함부로 육회를 만들어먹었다간...내일 출근이 불투명하다. 그래서 그냥 집에 다와서 동네 정육점에 들렀다. 정육점이라니 희한하다. 마트에서 조금이라도 싸게 살 생각이나 하지. 동네 정육점을 가서 육회를 만들 한우를 찾다니.


"저...육회거리 살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50대에 갓 접어든듯한 인상 좋은 사장님이 냉동고에서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꺼내와서 슬라이스하는 기계에 넣고 저미기 시작한다.


"얼마나 드려요?"

"한...300그램?"

"한근이요?"

"네."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넉넉잡고 300그램이면 둘이서 먹을 육회비빔밥을 그냥 고기로 뒤덮어버릴 수가 있다. 그 이상은 당장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장님이 냉동고에서 고기를 꺼내시느라 내 말을 잘못들으신 모양. 나는 그냥 말씀대로 받아가기로 했다. 육회고기 끊어가고 싶다는 손님을 위해 냉동고에서 새 고기 꺼내서 썰어주시는데 쪼잔하게 뭐 300그램에서 자르는 것도 우습고, 무엇보다도, 코로나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팍팍한데 그나마 월급 다달이 나오는 내가 이런 걸 갖고 째째하게 굴 필요가 있는 걸까. 다행히 600그램이나 산 고기는 생각보다 저렴했다. 24000원. 어라? 24000원? 익숙한 숫자다. 어쨌든 둘이서 3만원짜리 육회비빔밥을 사먹는 것보단 훨씬 싸다. 호주산 홍두깨살은 장조림을 해야겠다.

집에 와서 바로 볼에 육회거리를 담고 양념장을 대충 버무렸다. 눈대중으로 고추장 반숟갈. 참기름 대~충 휘휘. 깨소금을 촵촵. 간장 대~충 휘익. 설탕가루 타타타타타. 보통은 요리를 하는데 올리고당을 쓰긴 하지만, 육회는 역시 설탕이다. 육회를 씹다가 살살 씹히는 설탕가루. 건빵을 먹다가 별사탕을 먹는 기분이지. 일부러 간은 세게 했다. 밥을 비벼야 하니까. 위생장갑을 끼고 슥슥 버무린다.


같이 사온 깻잎과 상추를 채치고, 밥을 그릇에 담아내고, 순서대로 올린다. 깻잎, 상추를 먼저 올리고 공간을 잡아 육회를 올린다. 위에서 보면 반반씩. 그리고 계란을 깨서 노른자를 건져서 올린다. 야, 이거 꽤나 쉽잖아. 한그릇에 50그램도 올라가지 못하는 육회비빔밥을 사먹다가 내가 직접 만들어서는 먹게되니 꽤나 보람있다. 상 위에 밥그릇을 올리고 마침내 바깥양반에게 갔다.


"눈감아."

"응? 왜?"

"아 빨리. 오늘은 진짜 스페셜 메뉴라니까."

"오..."


휴지로 바깥양반 눈을 가렸다. 바깥양반은 내 어깨를 짚고 침실에서 서서히 식탁으로 끌려나왔다.


"야."

"허...얼! 와!"

"내가 뭐라고 했니."

"이건 사진 각이야. 잠깐만."


도도도도 바깥양반이 폰을 가져온다. 그리고 밥그릇을 들고 자기 방으로 간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댄다. 성공이다 오늘 하루도. 나는 냄비에 물을 담아 전기렌지에 올렸다. 후딱 홍두깨를 삶아서 장조림이나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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