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은 편식을 하니까
"볶음밥에 고수 넣었는데 괜찮아?"
"네 먹어볼게요."
"괜찮아 수달이(바깥양반 별명) 원래 현미도 못먹는다고 했었는데, 잘만 먹어. 막성 먹으면 잘 먹어."
"현미가 까끌하니까.
조카들을 데리고 캠핑장 한바퀴 산책을 다녀오자, 엄마와 누나는 바베큐를 하던 자리에서 볶음밥을 해서 호일에 싸둔 상태였다. 배는 부르지만 볶음밥은 놓칠 수 없지. 특히나 바깥양반은 볶음밥을 워낙 좋아해서 떡볶이를 먹든, 곱창을 먹든 철판에 볶고 굽는 음식만 있으면 거의 무조건 먹는 편이다. 그런 바깥양반에게, 고수가 들어갔는데 괜찮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고수를 못 먹는다는 것이지.
나는 애초에 못먹는 음식도 없지만, 고수를 퍽 좋아한다. 쌀국수를 먹을 때도 따로 한접시 받아서 국수에 쏟아붓는 편이고, 타코를 먹으러 갔을 때도 따로 먹는 편이다. 상하이 여행을 가서도 "게이 워 샹차이 이디엔(고수 조금만 주세요.)"를 외친다. 언제나 나보다 두 술은 더 뜨시는 엄마는 절에서 만든 반찬을 나눠서 가져왔다며 무려, 고수 나물 무침을 차려주신 적도 있는데, 고수는 불교에서 금하는 오신채에 속하진 않는가보다. 꾸밈새는 딱 미나리나물 무침 비슷하고, 그 맛이야 뭐 고수 향. 그래서 오늘 바베큐를 먹으면서도 나는 한 손엔 젓가락, 한 손엔 고수를 쥐고 한 줄기 씩 떼서 먹었다.
"괜찮아?"
"응 맛있어."
바깥양반은 조용히 고수가 들어간 볶음밥을 먹었다. 둘 다 고기를 워낙 많이 먹어서 배는 불렀지만, 누나가 만든 캠핑식 콘치즈까지 해서 두루두루 배불리 먹었다. 그러니까 바깥양반의 특성은 이렇다. 편식이 아주 심하긴 한데, 그게 정말로 아주 민감한 식성이라기보다는 대체적으로 겁이 많고 경험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선입견 탓이다. 막상 자기의 선입견을 해소할 형태가 되면, 잘 먹는다. 분명히 시집 오기 전에는 장모님께서 항상 달달한 백미밥만 차려주셨다는데, 나는 단 하루도 백미로 밥을 지은 적이 없다. 지금도 귀리, 흑미, 현미, 보리 등등 여러가지를 섞어서 먹는데 특히 현미, 보리, 흑미를 최근에 아주 좋은 가격에 구했다.
가지도 그런 케이스. 바깥양반은 가지가 주는 그 선입견 탓에 잘 먹지 않는 편이었다. 가지. 가지는 맛있지. 까끌까끌한 떫은 맛이 살짝 느껴지면서도 살짝 쪄서 간장양념에 버무리면 참 맛있는 반찬이다. 기름에 볶아도 맛있고, 깍둑깍둑 썰어서 솥에다가 가지밥을 하면 밥도둑이다. 이왕이면 기름기 적은 돼지고기도 썰어서.
언제였을까 퇴근길에 채소가게를 지나는데 가지가 한 바구니씩 좋은 가격에 나와있는 것이 보여서, 가지의 달달한 맛을 생각하며 한 봉다리 샀다. 그날은 먼저 저녁으로 가지 튀김을 만들었는데, 완전히 망했다. 바깥양반이 약속이 있어서 내가 혼자 차려먹은 저녁이어서 망정이지. 실수로 어마어마하게 두껍게 튀김옷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가지도 제대로 익지 않고 원. 억지로 먹느라 혼이 났다. 다행스럽게 주말쯤에는 가지가 얄상한 튀김옷으로 예쁘게 튀겨졌는데 역시나 우리 바깥양반은,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나만 먹어봐 맛있는데."
"으응 나 가지 안먹어."
이것 참. 아니 식재료에 대한 편견이 이렇게 심하면서 외식을 감히 한다는 말인지. 갑갑한 마음에 또 혼자서 가지튀김을 다 먹었다. 이번엔 꽤 맛있었다. 달달하게 녹아내리는 가지의 육질에, 상큼한 간장양념. 그건 그렇고, 그래서 바깥양반에게 가지를 먹일 방법이...아. 생각났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레시피가 있다. 그땐 뭐 이런 걸 만들어? 하면서 무시했었는데, 내게 가지가 생겼고 그 가지를 맛있게 포장을 해서 먹여야 할 바깥양반이 있으니 이제는 시도해볼 때가 됐다. 가지 라자냐. 유럽에선 가지를 많이 먹는 편이라서 실제로 이탈리아인지 어딘지에선 인기 요리라는데. 바깥양반도 나도 한번도 먹어본 일은 없다. 가지로 라자냐라니.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만드는 것보단 훨씬 웰빙스러울듯 하다. 하루 이틀 뒤에 날을 잡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얇게 가지를 저며 팬에 올렸다. 올리브유를 뿌려두었고, 가지 위엔 소금과 후추를 솔솔 올린다. 미리 절반 정도 익히는 단계다. 한번씩 뒤집어서 노릇하게 구워진 가지를 오븐 용기에 담아둔다. 빈 후라이팬에 이번엔 대충 조합한 라자냐 소스를 만든다.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옥수수도 넣고, 양파와 토마토 소스로 구색을 맞추고, 고기도 마구 썰어서 함께 볶는다. 흐음. 베이컨보다는 아무래도 간 돼지고기가 좋을 것 같은데 이걸 만들기 위해서 간 고기를 사오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지. 편한대로, 내 식대로.
소스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가지를 하나씩 정리해서 자리를 잡고 그 위에 소스와 모짜렐라 치즈를 약간 올린다. 그 뒤에 다시, 가지를 펴서 층을 만든다. 다시 소스, 다시 가지. 다시 소스, 다시 가지. 소스와 건더기를 아낌없이 붓는다. 아 그런데 맨 위에 소스를 올리고 나니 왠지 반 남아있는 양파 토막이 마음에 걸린다. 얇게 썰어서 라자냐 위에 올린다. 그리고 모짜렐라 치즈를 송송 뿌려서 마무리.
바깥양반의 식성은 귀여운 구석이 있어. 나는 오븐에서 익어가는 라자냐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못먹는 것은 아니고 단지 겁내는 것이라서 배우자이자 보호자인 내 입장에선 뭔가, "갱생시킬 수 있는 말썽쟁이"로 보이는 면이 있다. 원래부터 백미 말고는 먹어본 적이 잘 없어서, 심지어는 돌솥밥을 하는 식당을 따로 찾아다닐 정도다. 좋은 쌀에 잡곡을 섞어서 맛있게 지은 밥의 구수한 참맛을 잘 모르는 것이다. 팥밥, 콩밥, 보리밥 등등 백미 자체를 거의 먹지 않은 나와 다른 성장 배경.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식성의 심대한 차이. 그런데 그런 바깥양반의 식성이 나의 요리를 통해서 나의 식성과 교차한다. 재밌는 일이지.
오븐에서 라자냐를 꺼냈다. 앗. 실수했다. 오븐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치즈가 좀 탔다.
"다 됐어?"
"어, 어어어, 어 잠깐만. 좀만 있다 나와."
나는 재빠르게 포크를 꺼내서 탄 치즈를 걷어냈다. 아차. 실수. 그러나 조금 치즈가 탄 만큼, 속까지 잘 익었을 테지. 식사준비를 마쳤다. 나는 바깥양반을 불렀다. 가지를 싫어하고, 잘 먹어본 적이 없는 식성의 그녀를.
"맛있어?"
요리주걱으로 한 덩이 떠서 바깥양반의 앞접시에 덜어주고는, 콩닥거리며 바깥양반이 가지 라자냐를 먹고 난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뜨거워서인지 바깥양반의 답변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맛있어? 먹을만해?"
"뇸뇸...응. 맛있어. 이거 옥수수야?"
"어 옥수수도 넣었지.
아싸. 성공. 그래도 참, 가지 가지고 가지가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