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와플 속에서 네 PPL이 느껴진 거야

효리누나와 윤아가 날 속일 줄은 몰랐지만 와플은 맛있었다

by 공존

"오빠 효리네 민박 시즌2 한대."

"흐응."


결혼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바깥양반이 <효리네 민박>의 방영소식을 내게 알렸다. 같이 보는 TV 프로그램이 단 한개도 없었을 시절이라 나나 바깥양반이나 재밌게 보는 방송을 서로에게 말하곤 했다. 그 해 초에 시작했던 <골목식당>은 내가 바깥양반에게 추천해 주었었고, <효리네 민박>이나 <캠핑 클럽>은 바깥양반이 보자 해서 옆에 앉아있다가 나도 빠져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캠핑 계획을 세우고 있지.


시즌 1의 아이유에 이어 시즌 2 민박집 스탭으로 윤아가 나왔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나는 여전히 심드렁. 여전히 알콩달콩 사는 그네들의 속사정을 구경하며 바깥양반 옆에 앉아있는데 그만, 호기심이 가는 물건을 발견했다. 와플기계. 윤아가 스탭으로 들어온 첫날, 첫 식사준비를 위해 꺼내든 세로로 길쭉한 모양의 기구.

출처 한국경제

"괜찮아보이네...우리도 살까?"

"오."


그때의 나는 바깥양반의 쌀밥사랑 때문에 오로지 한식만 차리느라 조금 지루해하고 있었다. 신혼 초에는 여행에서 사온 잼들을 소비하기 위해서라도 빵을 자주 먹었고, 나는 내 주방이 생겼다는 즐거움에 마구잡이로 요리를 해댔다. 그러다가 급격히 살이 쪄서 조금씩 간소하게 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게다가 장모님과 엄마가 여러가지 밑반찬들을 주시는 통에 내가 요리를 할 일도 조금 줄었다.


그러니까, 나는 윤아의 와플기계를 보고, 어떤 큰 고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과, 아침에 바깥양반에게 와플을 만들어주면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와플은 맛있지. 아이스크림도 사서 얹고 하면 재미있겠다.


앉은자리에서 검색을 해보고 방송에 나온 모델을 찾아냈다. 조금 비싸지만 깔끔하고 무엇보다 세로라서 정리하기 쉬울듯했다. 자...와플을 하려면 이제 팬케이크 가루. 있다. 아. 바깥양반이 팬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점도 와플기계를 사는 한 이유가 됐다. 이 참에 연유도 사고 하면 되겠다. 결재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스틸 재질의 색상이 깔끔하다. 하루 이틀 뒤 주말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와플을 굽기로 했다.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생크림과 우유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팬케이크를 몇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반죽에 당연히 계량 따위 하지 않았고, 누나가 건네준 초코시럽으로 데코레이션.


"오."

"이름을 붙였다. 초코나무숲."

"역시 짱이군요."

"당연하지."


그 뒤로 여러번 와플을 구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혼자서 차려먹고, 지각 위기에 놓인 바깥양반에게 와플을 구워서 간소하게 도시락을 싸준 것도 여러번. 그러다가 차츰 내 스타일로 레시피를 계량했다.


일단 현미를 갈아서 반죽에 함께 넣었다. 현미 가루가 아니라 가정용 믹서로 급하게 갈아낸 것이라 입자가 거칠었지만 굽고 나니 먹을만 했다. 아몬드와 호두 등 견과류도 넣었는데 현미처럼 잘게 갈 순 없고 빻아서 넣는다. 그리고 계란은 넣지 않았다. 버터가 제법 들어가기도 하고, 충분히 찰기가 있어서 바삭하게 구우면 조직이 흐트러지지 않을 성 싶다. 맛 없게 되면 버리고 한번 더 굽지 뭐. 다행히도 성공. 겉면이 풀빵처럼 아삭하고 속은 찰기가 있다. 촉촉한 찹쌀떡 느낌도 난다. 그런데 이게 내 취향뿐일 수도 있지. 두번째는 계란을 하나 까서 넣었다. 완성. 두장을 충분히 식혀서 바깥양반 손에 들려주고 출근 인사를 한다.


그날 바깥양반의 문자가 왔다. 당시엔 바깥양반이라 부르기 전이라 카톡 캡쳐 사진엔 부인이라고 칭호가 남아있다. 그 뒤로 종종 와플은 간식으로, 바깥양반 아침 대용 도시락으로 제법 애용되었는데, 그런데.


"오빠가 요즘도 와플해줘?"

"응 아니 요즘은 좀 아침 밥 챙겨먹어서."

"어쩐지 예전에 한두번 인스타에 올리고 안올리더라."


반전이라면 반전, 얼마 뒤에 바깥양반 친구부부와 있었던 대화에서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와플 기계는 어디서 산 거야?"

"효리네 민박에서 윤아가 나와서 샀죠."

"ㅋㅋㅋ야 그거 대박났더라 지금 엄청 비싸대."

"어어?"


나는 바깥양반 친구의 남편이기도 하고, 나와 동갑이기도 한 친구의 말을 듣고는 갸우뚱하며 폰을 꺼내서 검색해봤다. 아하 과연. 내가 살 때보다 두배는 가격이 비싸졌다. 일찍 사서 다행이라고 안도를 하는 순간 등골이 싸늘해지며 한가지 깨우침이 날 덮쳤다.


"아, 그 방송 PPL이었구나!"

"뭐어? 아하하하."


세상에나. 내가 PPL에 낚였을 줄이야. 그래도 뭐, 맛도 있고 멋도 부릴 수 있고. 게다가 바가지로 산 것도 아닌 물건이라. 코로나 탓에 오늘은 뭘 해주나 고민인데, 엄마가 한 솥 만들어서 건내주신 장조림만 다 먹고 나면 오랜만에 와플이라도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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