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수달이의 반달살이 / 한림
13일째. 여행의 중간기점인 오늘 잠시 학교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2월 9일에 올라가는 배를 타고 밤늦게 집에 도착할 예정이니 남은 날이 지금까지 여행을 한 날과 같다. 정확히 한 가운데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새벽같이 제주공항에 와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하니 세상에 마상에 폭설이다. 활주로에 내릴 무렵에부터 심상치 않게 눈이 내리더니, 택시를 타자 이내 브레이크가 헛돌 정도로 도로가 눈밭이 되어버렸다. 경력이 많아 보이는 기사님은 천천히 신중하게 운전을 하신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내리막길에서 뒷차가 앞차를 추돌하는 사태를 그대로 목격했다. 신중한 기사님이 아니었으면 회의 시간에 늦을뻔 했다. 내가 그렇게 폭설을 보며 긴장감에 휩싸여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아내는 아침 산책을 돌면서 혼자 제주도의 청명한 날씨를 즐기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출근한 것은 성적처리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긴 하나 내가 겪는 것은 처음이다. 하필 제주도에 와 있는데? 싶지만.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성적 확인을 하지 못한 아이가 몇명 있다. 나는 12월부터는 생기부 업무에 올인하고 있어서 한명의 성적 일부를 잘못 판정했다. 오늘 왕복 여비로 12만원 가량의 돈이 지출되었으므로, 딱 한순간의 판단이 그만큼의 비용을 초래한 것이다. 물론 돈으로만 계산할 일은 아니다. 크게는 학교에 대한 신뢰와 공정한 절차의 준수라는 원칙이 있고, 작게는 나와 아이의 관계다. 코로나 탓을 할 건 또 아니지만, 지난 1년은 마스크로 인해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거의 외우지 못했다. 많아야 한 학급에 10명 정도일까. 비대면 수업으로 발생한 관계의 물리적 공백은 그만큼의 실질적 상실로 이어진 셈이다. 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다른 하나, 학교의 신뢰나 교사-아동의 신뢰 말고도 하나의 조직체 안에서 나와 다른 선생님들간의 상호신뢰가 있다. 내 실수로 인해 방학 중에 사안이 발생했으니 제주도에 있노라고 버팅길 순 없다. 올라와서 얼굴을 비추고 말하는 것의 도리겠다. 또 한편으론 실수라고 할지라도 1년간의 조직원으로서의 나의 행적에서 이런 실수가 방만한에서 비롯된 것인지 업무부하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이루어질 것이다. 과연 다른 선생님들은 나를 일도 못하는데 사고나 치는 녀석으로 볼지. 아니면 업무가 과중하니 발생한 실수로 볼지. 물론 성적처리는 절대로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되는 일이긴 하다.
학교에서 다시 김포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탈 때만 해도 겁이나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눈도 다 녹고 공항에서 이륙할 즈음엔 날씨가 개이기 시작하더니, 제주도에선 다시 청명하기 그지없는 푸른 하늘이다. 잠이 모자라 내내 자다가 일어나 창밖을 보며 두시간 이동, 한시간 체류, 다시 두시간 이동에- 공항에서 대기 시간 두시간 가량을 보낸, 7시간 나들이를 마쳤다. 공항에서 내리니 세시가 약간 안되었다. 우리는 공항과 숙소의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한명은 택시로 한명은 차로 이동했다.
그런데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직진을 해서 죽 가는데 바람에 밀려 살짝살짝 차가 한쪽으로 밀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것도 길을 달리는 내내 주욱. 핸드폰으론 코로나 알림이 아니라 파도로 해안가 접근금지 안내가 연신 울리고 있다. 하루 아침에 서울에 다녀오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섭다. 애월 근처가 칼바람이라더니 정말이구나. 아내와 카페에 잠깐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러 향한 해안가의 식당에서는, 차를 내려 몇걸음 걷는 사이에도 몸이 휙휙 바람결에 휘청이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방파제가 너머로 사람 키만큼 파도가 쳐서 물이 튀고 있었다.
제주도로 넘어온지 일주일째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제주도에 머물러본 것이 길어야 5일이니 신기록을 세웠다. 시커먼 하늘 아래로 파도가 몰아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또 느끼는 건, 우리가 관광지로서 이 섬을 바라보기 때문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이곳에선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불어닥치는 이 파도를 관광객인 나는 운 좋아야 일주일에 한두번 보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 뒤에는 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밥집, 어디의 핫한 카페가 있다는 그런 구석구석들이 모두 인적이 드문 시골이라는 것. 길을 걸을 땐 한껏 가슴이 부풀어 "나중에 이런곳에서 살자"란 말을 수십번 주고 받는 우리지만, 막상 가로등도 주변에 인가도 드문 우리 숙소 같은 곳에서 정말로 살게 된다면, 만만한 일은 정말 아니지. 그렇게 나는 차츰 머무르는 사람의 시각으로 이곳에서의 삶을 더듬어갔다.
또 한가지. 일기를 계속 쓰면서 "바깥양반"에 맞추어져 있던 글의 색상에 대한 고민도 절반 남은 여행을 돌이켜보며 반추하게 된다. 지금의 내 글은 예정의 호칭에서 "수달이"로 이름만 바뀌어 있는 상태다. 화자로서 아내에 대해 유지하고 있는 거리감이나 묘사하는 톤은 그대로인데 바깥양반이라는 격을 둔 표현에서 수달이라는 애칭처럼 변했으니 스스로는 나의 글을 읽으면서 난감하기가 그지없다. "수달이"라는 호칭에 맞추어서 글의 톤을 조정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평범하게 아내라는 호칭을 택해, 지금의 감정선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저녁을 먹고 나오니 아내는 딱 한군데만 더 카페에 가서 앉아있다 가자고 한다. 차에서 내려서 잠깐 걷는 사이에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려 마치 촛불의 심지처럼 곧추선 사진을 얻었다. 이럴 땐 영락없이 수달이가 딱인데 말이야. 그리고 아내는, 숙소에 오더니 철푸덕 맨바닥에 누워서 팩을 하고 도롱도롱 잠에 들다가 드라마가 시작할 때가 되니 자세를 바로잡고 TV를 시청하셨다. 나는 그제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