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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7. 2021

순대가 안들어간다는 순대국밥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전주 삼례 유성식당 순대국

 유성식당의 순대국밥과 머릿고기국밥엔 순대가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순대를 넣어달라고 하면 넣어준다. 나는 순대 넣은 순대국으로 하나, 바깥양반은 머리국밥 하나. 사장님께 둘은 어떤 차이냐고 물어보니 머릿고기국밥엔 돼지내장 부위가 없다고 하고, 순대국엔 내장과 머리고기가 함께 섞여 나온다고 한다. 주문을 하니 여사장님이 “머리 하나 넣어서 하나~”하며 주방으로 달려간다.


 매장은 바글바글. 대부분 20대 남성들이 3~4인 팀을 이뤄서 먹고 있다. 촉이 와서 검색을 해보니 바로 근처에 대학교가 하나 있다. 개학도 다가오겠다,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인듯싶다. 그래서 더욱 양도 많을 것이고.

 가격은 요즈음 표준가격인 7천원. 특이 아니라 보통인데도 수북하게 뚝배기에 곱창부터 해서 온갖 부속고기들이 담겨나온다. 정작 순대는 전주식 피순대가 아니라 천안 병천식에 가깝다. 위치는 전주 옆 삼례인데 순대국에 순대가 기본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런데 그 순대도 전라도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은, 순대는 직접 제작을 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 대신, 머릿고기와 내장을 직접 삶아 육수와 고기를 내는 곳이다.


 순대 없는 순대국, 근데 고기가 한 가득 수북이 담긴 제대로 된 국밥이라니. 요상시러 보일지 모르나 우선, 뚝배기 가득 담겨 있는 저 돼지 곱창이 바로 순대의 메인재료인 소창이다. 저 소창에 선지를 넣으면 순대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순대를 직접 제작은 하지 않지만 순대 제작에 쓰이는 소창까지 아낌없이 국밥에 담아주는 식당이라는 것. 실제로 직접 머릿고기를 삶는 국밥집들은 순대를 만들지 않는 곳이 많다. 머릿고기를 삶고 다듬는 것, 그리고 다른 부속들을 다듬어서 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노동인데다가 순대와는 공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머릿고기를 하며 순대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순대국은 70%의 머릿고기와 부속고기, 30%의 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전부터 시장에 솥을 걸고 장사를 하던 오래된 점포들은 머리를 팔팔 삶아놓고는 필요한 만큼만 순대를 따로 떼와, 머릿고기 그리고 내장부위들과 함께 토렴을 해 국밥을 냈다. 순대가 들어가지 않는 그런 국밥들도 모양은 영락없이 순대국밥이니, 순대가 들어가지 않아도 다들 순대국밥이라 불렀다. 


 예전엔 이런 곳이 흔했다. 실제로 지금은 사라진 내 모교 앞의 한 순대국밥집은 그날 그날 가게 상황에 따라 당면순대를 넣거나 빼거나 했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고 젊은 여성이 "아니 순대국밥에 순대를 안 넣으시면 어떡해요?" 하고 따진 일이 있다. 매일 매일 머릿고기를 삶아서 제대로된 "순대국밥"을 내던 보기 드문 식당이었는데 말이다. 중학교 시절을 보낸 서울의 불광동에도 수십년간 직접 머릿고기를 삶아 순대국밥을 말던 집이 여럿 있었다. 재개발과 식문화 변화, 사장님들의 노쇠와 건강문제로 서울에선 이제 이런 식당을 찾아보는 것이 퍽 어렵다. 


 즉, 유성식당은 “순대가 들어가지 않는 순대국밥”이라는 아이러니한 식당이 아니라 옛 시장 돼지국밥집의 정체성을 2021년의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한 진짜 맛집이라는 것. 요즘 보기 드문 귀한 진짜배기 머릿고기국밥집이다.

 바깥양반의 머릿고기국밥을 흘끗 바라보다가 고기를 한점 집어먹었다. 오돌뼈가 붙은 귀가 안보인다. 요즘 사람들 입맛에 안맞으니 뺐을 것이다. 아니면 술안주 메뉴로 따로 빼놨을수도? 그러나 뽈살과 목항정 등이 두루 들어간 두툼한 머릿고기가 정말 인상적이다.


 결정적으로 국물. 뼈국물이 아니라 돼지머리에 내장으로 뽑아낸 고기 육수에 칼칼한 고춧가루 내음이 확 올라온다. 후춧가루도 꽤나 올라가 있는데 돼지냄새를 가리기 위해 억지로 뿌린 것도 아니다. 돼지냄새는 깔끔히 잡혀있는 가운데 얼큰함만이 느껴진다. 이것도 재미있다. 어지간히 신선한 고기를 들여서 부지런히 손질하지 않으면 이렇게 냄새를 잡아놓기 어려운데. 그 특유의 꼬리함은 커녕, 잡내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바깥양반의 기념비적인 첫 순대국 식사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나의 애절한 부탁으로 마침내 나와 순대국 데이트를 허락해주신 바깥양반께서는 경상도 돼지국밥을 먹는 감각으로 양이 이렇게나 많은 머릿고기국밥을 천천히 오물오물, 많이 먹었다. 순대국밥을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깔끔한 국물 덕분이다. 바깥양반이 남긴 국밥을 몇숟가락 떠먹고 보니, 유성식당의 베스트메뉴는 “머리국밥에 넣어서”가 될 것 같다. 유성식당은 순대국도 맛있지만 머릿고기를 직접 삶아내는 진짜 맛집이니까. 메뉴판에 친절하게 그런 옵션 조절이 가능하다고 작게 적혀있다.

 식사를 마치고 유명한 메뉴판을 먼저 찍고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 간판을 찍었다. 그 어떤 순대국밥도 굳이 찾아와서 먹을 음식은 되지 못한다. 대신 전국에 각양각색의 순대국이 존재한다. 유성식당의 경우에는 이제는 도심에서는 보기 드물어진 머릿고기국밥을 제대로 만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김치와 깍두기는 평범.


 일요일 점심 1시쯤 방문했는데 가벼운 대기줄이 있었다. 5분 남짓 기다려 들어갔다. 주차장은 3분 거리 삼례공영주차장에 대고 걸어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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