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일기 2.

알찼던 하루

by 공존

남해에서 보낸 첫날밤, 퀸 사이즈에서 아이까지 셋이 자려니 가장 약자인 나는 셋 중 가장 웅크리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니 몸이 찌뿌둥하고 힘들어, 1층의 거실로 내려와 벌러덩 누워버렸다. 몸이 마침내 펴지고 세상 편한 마음으로 맑은 하늘을 본다. 누운 자세 그대로 화창한 하늘을 보는 이 마음은, 그래, 남해에 오길 잘했지.


마침 숙소에 완전 훌륭한 접이식 매트리스가 있다. 장에서 꺼내와서 바닥에 깔고 누우니 천국이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도 딱이라 나는 그대로 아침에 조금 잠을 보충했다. 그러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아이도 아내도 나를 찾는다. 아빠는 아빠의 할 일을 해야지.

우리가 남해에 들른 것은 2년 반 만이다. 2021년 1월에 들러 이틀을 묵었다. 겨울에 왔으므로 풍경은 황량했고, 독일마을, 양떼목장 등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고 다니다보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는 광주에서 남해, 여수를 경과해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가는 복잡한 일정이었으므로 우리는 남해에 와서 뭘 뽑아먹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그 결과, 당시의 여행은 뜻밖의 발견이었던 농가섬 정도를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올해 여름의 일주일간 방문에, 새삼 많은 것이 그 사이 바뀌어있음을 실감한다. 하기사 그 사이 코로나도 겪었고 해외여행의 수요가 국내여행으로 쏠리는 일도 겪었으니, 부침이 있었을 게고, 그 와중에 변화와 발전도, 당연히 있었겠다. 아내의 계획대로 우리가 머무는 남해 서면에서 저 멀리 미조면으로 간다. 남해의 반절 정도를 돈 셈이다.


아침을 먹은 식당은 정갈한 한상이 퍽 맛이 좋다. 미역국을 좋아하는 동백이가 밥에 곁들여 아침을 제법 먹었다. 아침에 제 엄마가 차려줘 밥을 조금 먹고 왔는데도, 아이의 뱃고래가 작아서 그런지.


그러고보면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부쩍 입이 짧아지고 한번에 먹는 양이 좀 줄어서 먹이는 우리가 좀 애를 먹는다. 열흘이나 낯선 외국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을 먹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싶다. 천천히 식사랑을 늘리면서 꾸준히 먹이는 걸 시도하니, 응아는 푸짐하게 잘도 싼다.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과일이든 뭐든 먹이니까 배가 차긴 하나보다.

태풍이 오기 하루 전 남해의 하늘은 티없이 말고 푸르다. 태풍 덕에 바람이 퍽 잘 불어 너무 덥지도 않아, 잠시 정도는 걸을 수 있다. 아이를 아름다운 미조항에 풀어놓으니 자꾸 물가로 간다. 여기서 물에 뛰어들었다간 대책이 없으므로, 아이를 말리느라 힘이 든다. 우리는 미조항에서 잔멸치를 샀다. 한 박스에 4만원. 아이는 멸치볶음을 좋아한다.

차를 몰고 오는 길에 남해 바닷가의 운전면허 연습장이 카라반 캠핑장으로 변한 것이 눈에 띄었다. 넓은 바다를 보며 운전연습을 할 수 있어, 지날 때마다 랜드마크처럼 눈에 들어오던 곳이다. 그러던 곳이 예쁘게 단장을 하고 운전연습생이 아니라 여행객을 맞는 곳으로 바뀌었으니, 몇년 사이에 남해 전체가 상전벽해다. 예전엔 독일마을을 중심으로 관광이 이루어졌다면 서면의 아난티 등, 관광 인프라가 제법 넓어진 인상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또 은모래해변은 조금. 남해에선 가장 잘 알려진 바다인데 해변 전체에 숯가루인지 나뭇가지인지 모를 검은 알갱이들이 잔뜩이다. 이것 탓인지 몰라도 수영복을 입고 신나하던 아이가 몇번 물에 몸을 담그더니만, 더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차에 가서 잠이나 잔단다.


보니, 은모래해변에 공사도 진행중이고 캠핑장도 잘 만들어놨고, 파라솔은 좍 늘어놓고 따로 돈은 받더라만, 또 공용 샤워장은 막혀있고 8월 한창 해수욕을 할 시기에 바닷물에 이런 검은 이물질들이 둥둥 떠나니게 할 것은 무언지. 이런 것들은 그물 가져다가 마을에서 꾸준히 관리만 해주면 말끔하게 없어질 텐데 말이다.

그러나 칭얼대던 아이는 모래놀이 장난감을 던져주자 울음을 멈추고 이제 놀이에 집중한다. 겨우 우리는 여유를 되찾고 뒤늦게 돗자리를 깔고 아이가 마음껏 놀도록 해준다. 부드러운 모래가 아이의 손에서 감기다가도 바닷물을 물양동이에 받아서 끼얹어주니, 아이는 다시금 자기의 다리에 모래를 뿌리며, 물을 끼얹어달라고 한다.


알찬 하루다. 아내는 먹고 싶은 식당에 모두 가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나는 머무는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선들을 발견했고, 아기는 화창한 하늘 아래 많이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을 기대하던 우리에게는 태풍의 전조와 함께 두꺼운 구름이 드리운다. 그 너머로 맑은 오늘이 비끼는 모습에, 남해의 어떤 정취를 슬쩍 맛 본다. 들과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 그 위의 하늘, 그 속에 구름. 이런 것들이, 남해에 오는 이유.


우리는, 바다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하지 못한 아이를 위해 욕실에 작게 풀장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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