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저)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나고야에서 성장하며 고교시절 5명의 그룹 멤버들-아카(赤), 아오(靑), 구로(黑), 시로(白)-과 친하게 지낸다. 이 그룹이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중심이다. 이윽고 혼자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쓰쿠루는 대학 2학년 어느 날 한 멤버로부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절교 통보를 받는다. ‘그냥 사라져 줘.’ 이것이 쓰쿠루를 뺀 네 명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아무리 만남을 시도해도 그들은 쓰쿠루를 외면했다. 그날 이후로 쓰쿠루의 세상은 달라진다. 모든 의욕을 잃게 되고 우울이 드리운 나날이 이어진다.
보통 사회적인 건강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조화로운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즉 건강한 삶의 기본적인 요소는 ‘조화와 균형’이며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본능은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인간의 내부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친구들이 사라진 그의 삶은 이미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기차역’ 같은 규칙적이고 형태가 명확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들이 그렇듯, 이 책 또한 현대인이 세계에 대해 느끼는 소원한 감정과 그 속에서의 자기 인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늘상 등장하는 음악과 섹스는 이 소설에서도 빠지지 않는데,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갖추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공동체에게 버림받은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자신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하는 쓰쿠루의 몸부림과도 같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안정을 방해하는 것은 역시 조화로운 관계의 무너짐이 가장 컸다. 적, 청, 흑, 백이라는 색채로 대변되는 공동체의 조화가 사라진 것. 16년이 지나 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을 때 여자친구는 쓰쿠루에게 그 상처를 해소해야만 한다는 조언을 해준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쓰쿠루는 그들 네 명을 하나하나 만나는 순례여행길에 오른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심리학에서 가장 여러 차례 확인된 결론 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람은 아주 강하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세상을 자신과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단정”하고, 더 나아가 자기를 아주 강하게 신뢰한다. 결국 우리가 공동체라고 믿는 것들도 개인을 앞설 수 없으며, 쓰쿠루의 순례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절교한 후 16년만에 만난 친구들이 쓰쿠루의 상처에 당황해하는 것은, 자신들이 행동이 옳은 것이었다고 믿어왔던 그간의 자기 신뢰가 무너지는 사태를 직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무려 16년 동안이나 고통받아온 쓰쿠루가 극복의지를 행위로 옮기기 전까지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쓰쿠루의 용서는 땅 위에 피를 흘릴 정도로 힘겨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초반, 그리고 후반부 결말로 다가갈수록 꾸밈없는 심리묘사가 풀어내는 주인공의 감성변화가 인상적이다. 한편 '자기'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라는 하루키 문법이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간결한 스토리, 빠른 호흡으로 쉽게 읽을 수 있기에 하루키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