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육영수 저)
앙시앵 레짐 ancien régime
: 프랑스어로 ‘옛 제도’를 의미하는 말이나, 일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전의 ‘구제도’라는 특정 개념으로 쓰인다.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18세기 프랑스의 모든 권력은 귀족과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특권계층에게 집중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법적으로 성직자, 귀족, 제3신분의 3개의 신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세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신분은 여전히 특권층과 비 특권층으로 크게 양분화되어 있었다. 전체 2700만 인구 중에서 50만이 채 안 되는 성직자와 귀족은 전체 토지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세금도 부담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의 향락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3신분에 속한 사람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결국 계급 간 경제적 불평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가난한 농민은 물론이요, 상공업자들 까지도 무거운 세금과 사회적 의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특권층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시골 신부나 가난한 귀족의 경우 일반 상공업자나 농민에 가까운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구시대의 경우 어쨌거나 문벌이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를 결정했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당시 프랑스의 구조적 차별은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굶주린 파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구조적 차별에 분노하던 가난한 특권층까지 합세한 민중의 무리가 앙시엥 레짐의 불평등 타파를 부르짖으며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다. 즉 1789년 7월 이전까지의 차별과 불합리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일련의 성공을 거둔 가공할 이 혁명은 유럽과 세계 역사에서 정치권력이 소수 왕족과 귀족, 성직자에서 일반 시민에게 옮겨지는 시민사회로의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소신과 이를 지키기 위한 피나는 투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바라보는 정통주의적 시선이었다면,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에서는 학계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통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를 펼쳐나간다. “여성에게도 과연 르네상스가 있었는가?”라는 조안 켈리의 물음을 통해 ‘프랑스혁명은 여성에게도 진짜 혁명적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더불어 ‘프랑스혁명이 노동자, 유색인에게도 혁명이었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역사학자마다 다른 사관(史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근원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해서만큼은 정통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단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주의적 해석과 수정주의적 해석을 정리해 보자면, 정통 해석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특권 계급이 우위를 차지하던 구체제 아래서 성장한 부르주아지가 정치권력 싸움에서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중과 결합, 봉건제를 완전히 파괴한 부르주아지가 선도한 반봉건 사회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을 파악한다. 반면 수정 해석은 이에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우선 프랑스 혁명의 반봉건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토지 소유에 입각한 통치 체제로서의 봉건제도는 프랑스 혁명 때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사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시민 혁명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기존의 귀족과 혁명 주체인 부르주아지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결국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유산 계급의 혁명이며, 계급 혁명이 아닌 정치 혁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영미계 학자들의 수정주의 해석이 받아들여지기까지 격렬한 논의가 상단 기간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는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세대의 프랑스 역사가들이 등장하면서 정통 해석을 비판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정치사적 측면을 더 부각하는, 즉 프랑스 혁명을 정치적 문화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가 되었다. 저자 육영수 교수는 이러한 현대 프랑스 역사가들의 새로운 수정주의 해석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은 그가 1997~2013년 사이에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새로이 조망하는 글이지만, 목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혁명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성찰하는 것이다. 저자의 프랑스 혁명과 현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돋보이는 책이다.
1부 :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 혁명은 없다
여성을 위한 프랑스 혁명은 없다?
프랑스 혁명 초기 부르주아 여성들은 청원과 제안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혁명의 대중적 동력을 일으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빵을 요구하는 하층계급의 여성들과 함께 대중적인 시위에 앞장서며 혁명의 중요한 대중적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베르사이유 행진 등의 선봉은 여성들이었고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부르주아 여성들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여성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평등과 우애를 향상’시켰다는 정통의 평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반박하는 수정주의적 견해가 등장한다. 혁명 전에도 살롱 문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권력을 행사하던 엘리트 여성들을 제어하기 위해 자코뱅 혁명정부가 여성의 집회를 금지시켰고, 또한 남성 혁명주의자들은 ‘젠더에 바탕을 둔 예의범절 코드’를 주조함으로써 여성은 가사에 전념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처치는 모두 혁명의 미완성을 이러한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탓으로 돌리기 위한 남성 혁명가들의 음모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여성들이 남성 혁명가들에 의해 반혁명 분자라는 오명을 쓴 것과, 나아가 ‘서양의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도 더 선구적이며 희생적으로 여권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프랑스 여성들에게 가장 늦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도록 해 준다. 이 장에서 저자는 프랑스 혁명 속의 여성뿐만 아니라 인권선언과 아이티 혁명 사례에 초점을 맞춰 혁명 속 노동과 복지, 유색인에 대해서도 서구 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수정주의적 시각을 제시한다.
2부 :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 혁명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새로운 얼굴을 묘사한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일어난 이후 끊임없이 예술가들의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최근의 영화 ‘레미제라블’ 역시도 프랑스 혁명 시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장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문자로 쓴 역사’와 ‘영상으로 쓴 역사’가 어떻게 달리 해석하는지 사학사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3부 :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전환
프랑스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재조명해보려는 글들을 담았다. 프랑스혁명은 봉건귀족에 대한 부르주아지 계급의 승리라는 거대담론일 뿐만 아니라 혁명가요와 혁명 축제가 꽃피었으며 민중문화와 엘리트 문화가 충돌하고 교류했던 정치문화의 일상 무대였음을 흥미롭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