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읽기에 시의적절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마을에 페스트가 돌아서 마을이 봉쇄되고 주민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추석 기간 이동 금지에 관한 루머까지 떠도는 상황에서 <페스트>를 단순히 소설로만 읽기는 어렵다. 고전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감을 느끼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므로, 코로나 시국에 집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예전에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을 때 카뮈가 매력적인 작가이자 사상가라고 느꼈다. 그의 주요 사상 중 하나는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으로 이 세계를 어떻게든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카뮈는 여기에서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카뮈의 매력이다. <페스트>에서도 그러한 카뮈의 사상이 드러난다. 등장 인물들은 '페스트'라는 부조리한 사건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던 인물들은 좌절하는 반면, 오히려 사건을 단순하게 받아들인 인물들은 좋은 결말을 맞이한다. <페스트>의 인물들은 부조리한 세계 앞에 선 인간 군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에 자기가 맡은 역할은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그리고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살려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명령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535p)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리외는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페스트에 대응한 인물이다. 그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성실하고 꾸준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기다리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한단 말인가? 카뮈는 그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조차 확실하지는 않다. 어쩌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