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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하다 Jun 16. 2021

메주 오빠와 나

<콩나물하다>시즌2- 6화

 주말이에요. 콩나물은 산 넘고 물 건너 콩모 콩부가 사는 밭으로 가요. 부모님은 아직 콩밭에 살고 있어요. 콩나물은 콩밭의 내음을 느껴요. 흙냄새. 빗물 냄새. 어린 시절의 냄새. 기분이 좋아져요. 남매가 모두 콩깍지에 있을 시절,  메주오빠와 콩나물은 콩깍지 사이로 혀를 내밀고 빗물 받아먹는 놀이를 많이 했어요. 콩나물은 그 기억에 혼자 풉하고 웃어요. 서울의 빗물은 그렇게 싫었는데 콩밭의 빗물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콩나물은 콩밭의 부모님 집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요. 콩부가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요. 그 옆에 메주 오빠가 어색하게 서있어요. 



 콩부는 요즘 좋은 물 블렌딩에 빠져있어요. 콩나물은 지하수와 암반수를 적절한 비율로 섞은 물을 마셔봐요. 괜히 몸이 튼튼해지는 기분이에요. 콩나물은 어릴 때처럼 콩부와 콩모 앞에서 휙휙 돌며 춤을 춰요. 다들 즐거워하며 웃지만 왠지 메주 오빠는 그렇지 않은 듯 해요. 

 콩모는 저녁 식사를 마치자 콩나물에게 동네 산책을 하자고 해요. 콩나물과 콩모는 풀밭을 걸어요.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걷는데, 콩모가 문득 뜸을 들이다 말해요. 


       “메주 몸에 곰팡이가 피었대.”

       “오빠한테? 어떡해?”

       “수술을 해야한다더라고.” 

       “어떤 상탠데? 큰일은 아닌거지?”

       “수술하면 그래도 꽤 오랫동안 재발은 안한대. 근데 그, 수술비가 혼자 감당할 정도는 아닌가봐.”

       “수술비가 비싸대?”

       “낫또 오빠랑 엄마 아빠가 조금 보태기는 했는데. 그래도 모자라서.”

       “내가 보태야하는 상황인 거야?”

       “여유가 되면 하고.”

       “얼마나 필요한 건데?”

       “고추씨 천 개 정도. 보험 처리돼서 수술 끝나면 다시 돌려줄 수 있는 건데.”

       “천 개? 천 개면… 천 개면… 나 이사 준비 중인데…”. 

       “어려우면 하지 말고. 네 외삼촌도 있고 고모도 있으니까.”


 콩나물은 무거운 마음으로 콩밭으로 돌아와요. 드디어 넓은 물로 갈 수 있나 했는데.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아요. 오빠가 아픈데 이사가 무슨 대수인가. 하지만 이사만을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번 고추씨인데.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은 콩나물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요. 근데 메주오빠가 이미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요. 


    “괜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얼굴 한 번 보자고 부른 건데 엄마가 그 얘기할 줄은 몰랐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속이 다 까맣게 썩었대.”

    “무슨 일이 있긴. 사는 건 다 똑같지 뭐.”

    “근데 왜 잠을 못 자고 나와있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잠자리가 편치않네.”



 그때 비가 내려요. 메주 오빠는 웃더니 혀를 내밀어 빗물을 먹어요. 콩나물도 깔깔깔 웃다가 메주처럼 빗물을 마셔요. 아빠가 열심히 블렌딩한 물도 맛있지만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이 빗물이 지금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다음날 콩나물은 아침 일찍 콩모의 계좌로 고추씨 천 개를 입금하고 콩밭을 나서요. 아침 햇빛이 지난밤에 온 비를 잘 다듬어 예쁜 이슬로 만들어놨어요. 콩나물은 서울에서 이런 이슬을 얼마나 들여다봤던가 생각하며 길을 걸어요.


오디오 클립 링크 - 6화 메주오빠와 나


* <콩나물하다>는 오디오 클립을 통해 음성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오디오 클립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글. 허선혜, 고권금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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