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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하다 Jul 21. 2021

콩나물에게 고사리란

<콩나물하다>시즌2- 11화

새벽 두 시.  콩나물은 달려요. 전화를 받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파랗게 질려버린 머리를 털어내며 당장 튀어나가 달리는 중이에요. 

고사리의 애인, 고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벌어진 일이에요. 

고사리가 입원했다니. 

그 한 마디가 콩나물에게는 마치 온 세상에 멸망이 도래했다는 말처럼 느껴져요. 

숨이 머리 끝까지 차서 병실 문을 열었더니 고사리가 밝은 얼굴로 콩나물을 맞이해요. 


고사리의 고사리 같은 두 발에 크고 단단한 깁스가 고정되어 있어요. 

콩나물은 고사리의 환한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와요. 

무사하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어쩌다 두 다리가 다 이렇게 됐나 하는 짠함에서, 

회사에서 느낀 고통과 외로움에서, 

집을 구하다 생긴 씁쓸함에서, 

쿠민과의 이별에서 온 공허함에서, 

무엇이 원인인지를 모르고 눈물이 약수처럼 터져 나와요. 

고사리는 콩나물을 다독이며 고수에게 잔소리를 해요. 

안 불러도 된다니까 기어코 불러서 애를 울게 하니. 

고수에게 들어보니 고사리는 술을 먹고 오두방정을 떨며 거리를 걷고 있었어요. 

이웃집이 버리려고 내놓은 돌침대를 걷어찼는데 잘못 세워진 돌침대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던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고사리의 발을 덮치고 고사리의 고사리 같은 두 발은 그만...



입원을 한 것은 고사리인데 죽을 듯이 우는 것은 콩나물이고 위로하는 것은 고사리예요. 

고사리에게로 와 눈물을 쏟아내니 콩나물은 조금씩 살 것 같아져요. 

고사리에게는 분명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운을 나게 하는 어떤 힘. 

콩나물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고사리의 고사리 같은 손이 무척 고사리 같다 생각해요. 

콩나물은 고수에게 자신이 함께 있겠다며 들어가서 쉬라고 해요. 

고사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으며  밤새 고사리의 시중을 들어요.

고사리는 울기도 웃기도 하며 콩나물의 이야기를 들어줘요. 

고사리의 나 너 없으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았니 하는 말에 콩나물은 대답해요. 

그러니까, 나도. 


오디오 클립 링크 - 11화 콩나물에게 고사리란


* <콩나물하다>는 오디오 클립을 통해 음성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오디오 클립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글. 허선혜, 고권금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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