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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우 Apr 17. 2020

[음악] 언니네 이발관

한국 모던록의 역사, 그 중심에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이 오래된 음악은 늘 들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가져와서,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는 앨범이다.

각각의 완벽한 네러티브를 갖춘 열 개의 이야기가 담긴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3집 <꿈의 팝송>으로 한국 인디 앨범 역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은 의심의 여지없는 우리나라 모던락의 시작이자 그 자체인 밴드다. 앨범 발매 콘서트를 치른 후 무려 8개월 간 수백 번의 재작업을 거치며 총 3년에 걸쳐 완성된 이 앨범은, 2008년 발매되자마자 한국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모던록 음반’, ‘올해의 모던록 노래’ 부문 3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치만 사실상 내겐 어떠한 장르의 구분도 필요치 않은 앨범이다. 음악이 담긴 앨범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누군가에겐 영화나 드라마로 보일 수 있을 만큼 시각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소설로 읽힐 수 있을 만큼 강한 네러티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발매된 이 오래된 앨범을 들으면서, 우리가 음악을 듣고 있는 건지, 책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를 환상 속에 잠겨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 앨범에 담긴 10개의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눈부신 세상에서 그저 보통일 뿐인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당신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언니네 이발관을 말할 때 이석원은 단연 그 중심에 있는데, 2017년 마지막 정규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 발매하며 그가 남긴 선언문을 첨부한다.


소식이 늦었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드려야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예전에 써 둔 편지를 올립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미안해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그만 두길 바래왔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털어놓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한번만
이번 한장만 하다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그간 실천하지 못한 계획들도 있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서 인사드리고 떠나면 좋겠지만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음악이 일이 되어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기에
음악을 할때면
늘 나 자신과 팬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더이상은 그런 기분으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음을..
이렇게밖에 맺음을 할 수 없는
제 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음악을 그만 두고
더이상 뮤지션으로 살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23년동안 음악을 했던 기억이
모두 다
즐겁고 행복했었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운 기억만은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훗날 언젠가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 뵐게요.

감사합니다.

23년동안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것
잊지 못할 순간들을 만들어 주신것
모두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2017년 8월 6일 저녁 이석원 올림


여담으로 아직도 나는 노래방에 가면 ‘아름다운 것’을 자주 부른다. 그때 마다 익숙한 노랫말과 대비되는 묵직한 감정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 그 부드러운 긴장감이 이 곡을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울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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