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예이츠의 수많은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은 표정에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 나는 저런 눈동자를 갈망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 슬라이고(Sligo) 출신의 시인 겸 극작가로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그림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진로를 전향했다. 그는 젊은 시절 슬라이고, 더블린, 런던을 기반으로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그가 쓴 시들의 초기 심상은 켈트 문화권의 환상적이고 여성적인 서정성을 보여준다. 아일랜드 극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문학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 중에서,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poem by William Butler Yeats
다른 유명하고 좋은 그의 시들도 물론 많다. 특히 '하늘의 천' 같은 경우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에 영감을 주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예이츠의 이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라는 시를 좋아한다. 시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해 준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그 시집에 수록된 '패랭이 꽃'이란 시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시다.
포스팅을 하려고 번역을 찾다 찾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번역이 없어서 임의로 번역을 살짝 각색해 봤다.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영시는 조금 힘들어도 원문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각자가 즐겨 쓰는 어미나 표현이 모두 다를 텐데,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번역자의 의도에 따라 정해져 버리는 건 영시를 읽는 데 있어서 좋은 과정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번역 역시 주관적인 해석이니, 내 어설픈 번역에 부디 이 시를 가두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적어도 나는 이 시의 뉘앙스와 문체를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니까.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그녀와 나는 만났네
눈처럼 흰 순백의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거닐며
그녀는 내게 말했지, 나무에서 잎이 자라듯 사랑을 쉽게 하라고
그러나 난 어리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듣지 않았네
강가 어느 들녘에 그녀와 나는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말했지, 둑에서 풀이 자라듯 삶을 쉽게 살라고
그러나 난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이 가득하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 시에 대한 짤막한 TMI를 풀자면, 아일랜드 전통 민요 혹은 노동요로 불리던 노래의 일부를 예이츠가 재구성해 시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1절이 그 노래(The Rambling Boys of Pleasure)와 닮아있고, 2절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아마 그 노동요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로 추측된다. 그리고 예이츠의 시를 훗날, 여러 가수들이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까지 했으니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salley였다. 일단 이 시의 유래가 된 노동요에는 'flowery garden'이라 쓰여 있는데, 예이츠는 이를 salley garden으로 바꿨다. 나는 한국식 제목으로 이 시를 먼저 접했던지라, 당연하게 salley가 버드나무 일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반대로 버드나무를 한영사전으로 찾으니 willow란다. 그럼 salley는 뭐고 버드나무는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발견한 게 버드나무의 학명 Salix koreensis Andersson. 분명히 salix 이게 어원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아서 고민하던 중, 이게 아일랜드 시니까 혹시 게일어가 아닐까 싶어서 구글 번역기에 언어를 게일어로 맞추고 salley를 검색했더니 역시 아무것도 안 나온다. 폼을 역으로 바꿔서 버드나무가 게일어로 뭔지를 검색해 봐도 saile라고 나온다. 음...... saile 랑 salley라.. 뭔가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한 듯하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 알게 됐다. 버드나무를 뜻하는 sallow라는 영단어가 있고, 그걸 옛날 아일랜드 사투리로 salley나 sally라고 불렀다는 것을. 단어 하나를 두고 참 힘든 사투였지만, 어찌 됐든 예이츠가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슬라이고는 아일랜드의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내가 폴란드에서 살던 시절 예이츠와 데미안라이스에 빠져있던 터라 christmas vacation에 맞춰 아일랜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슬라이고를 꼭 가고 싶었는데, 더블린에서 너무 멀어서 못 갔던 기억이 있다.
슬라이고의 작은 호수 섬 '이니스프리'를 보러 갔어야 하는데 말이다. 음.. 언젠간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