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봄, 카페란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던 날이었다. 같이 온 여자아이는 이미 이 곳의 방식에 익숙한 듯 2층의 다락방 카페의 문을 열었고, 나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겠다는 부자연스러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따라 들어갔다.
아니, 무슨 커피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던가. 계산대 앞에 서니 긴장감이 밀려왔다. 바 위쪽 벽에는 초록색 칠판스타일의 메뉴판이 달려있었고, 큼지막한 폰트로 나열된 수많은 커피 메뉴를 보며 나는 무얼 마셔야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커피의 이름은 또 왜 이렇게 길단 말인가. 속에서 아주 긴 한숨이 밀려나오는 것 같았다. 빼곡하게 적힌 커피 이름들 중 내가 들어본 것이라곤 아메리카노와 카라멜 마끼아또, 딱 두 개 뿐이었다.
“넌 뭐 마실거야?”
“.. 글쎄, 넌?”
잘 모를 땐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나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난 아메리카노.”
마침 들어본 단어였던지라, 잘 됐다 싶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나도. 나도 같은 걸로 마실게.”
이 정도면 초짜 티 내지 않고 잘 넘어간 듯 했다. 스스로 ‘척’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이 자리로 커피를 가져다 줬고,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카만 커피를 앞에 두고 서로의 공강시간이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딱 새내기들이나 할 법한 대화를 나눴다.
여자 아이가 커피를 한 모금 홀짝 하는 걸 보고는 나도 미러링 효과처럼 한약처럼 새카만 그것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순간 내가 유지하던 ‘아무렇지 않은 체’는 깨져버렸다. 미간이 있는대로 찌푸려지고, 얼굴의 주름들이 씰룩거렸다. 나는 내 표정보다 더 깜짝 놀랐다. ‘뭐가 이렇게 맛이 없어?’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여자아이가 샐쭉 웃으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 수제 초콜릿인데, 얘랑 같이 먹으면 좀 괜찮을거야.”
나는 이 문장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아이는 더도 말고 딱 이렇게 말했다. 순간적으로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신다는 걸 들킨 건 아닐까 하는 사내아이의 민망함과, 은근슬쩍 아는 체 하려던 말과 표정들이 읽힌 건 아닐까 하는 스무 살의 민망함 말이다. 그치만 그 아이는 더이상 카페가 처음이냐는 둥 커피를 좋아하지 않냐는 둥 별다른 첨언을 하지 않았고, 나는 이내 초콜릿이 정말 맛있다며 히죽 웃었다.
당시에는 이 사건을 민망할 뻔 했던 한 에피소드로만 기억했는데, 시간이 훌쩍 흐르고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 오히려 고마운 마음과 함께 멋진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 아이는 처음부터 눈치를 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를 따라 주문한 내가 당황하지 않게 수제 초콜릿을 함께 주문했던 것 아닐까. 왜냐면 그 아이는 초콜릿을 한 조각도 먹지 않았고 다섯 조각을 모조리 다 내가 먹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타인의 세심한 배려를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땐 나도 스무 살, 그 아이도 스무 살. 우린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꼬마들이었는데, 그 아이는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어떻게 그런 섬세하고도 성숙한 배려를 건넬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