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에도 나이가 있나

존재자체로 소중한 존재

by 고요한 열정녀

14세, 독립의 시작

“아들, 생일 축하해”

작은 아이의 만14세 생일이다. 이 나이는 아이에게 무척 의미있는 숫자이다. 핸드폰으로 티머니 카드에 충전이 가능하고 각종 사이트에서 부모 동의 없이 계정 생성이 가능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은행 체크카드 발급이 가능한 나이이다.

그 말은 자신의 이름이 부모의 이름과 분리되어 세상에 내어 지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평가가 직접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손을 떠나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느낌이다.

아이는 내심 뿌듯한 얼굴이다. 4살 많은 형은 14세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준다. 이아이들은 이 자유에 대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걸까.

"엄마, 이제 통장에 용돈 보내주면 교통카드에 바로 충전 할께요.“

"이제 핸드폰으로 결제도 할 수 있겠네.”

설레는 표정으로 묻는 아이를 보며 한편으로 대견하기도고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어릴때는 씩기고 먹이고 재우고 말도 글도 모두 부모에게 배우게 되지만 이제 부모와 있는 시간보다 외부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이가 이만큼 크고보니 엄마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함께 있을 때 해주지 못한 것들이 떠오른다.

책도 더 많이 읽혀 줄 걸

독서 습관을 잘 잡아 놔야 책 속에서 위안과 지혜를 얻을텐데

공부습관을 잘 잡아 줬어야 하는데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데 관심과 욕구를 바라보고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생활습관도 제대로 안 잡혔는데 어디가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더 많이 사랑해 줄 걸

더 많이 쓰다듬어 줄 걸

더 많이 웃어주고 칭찬해 줄 걸

이제 눈마주치고 만지고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텐데

작고 귀여운 꼬마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맘에 걸린다.

나의 말로 상처받았을지 모르는 작은 영혼이 안쓰럽다.

존중받는 아이로 키우기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아이를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인간에게는 지배욕구가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 나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어린 아이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무조건 적인 순종을 바라는 권위적인 마음이 존재한다.

주변에서 아이들에게 채벌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전에야 그런 일이 흔했지만 지금은 부모라고 해도 아이를 채벌하는 일은 법으로 금하고 있다. 아이가 직접 신고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언어폭력도 신고 대상이다. 그만큼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얼마전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매를 들었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다른 집 가정교육을 함부로 참견하는건 실례지만 그냥 넘어가 지지가 않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애들 배울라.

애들 맞았다 할 때마다 맘이 안좋아.

부모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 할 권리를 가진건 아니라는거 기억하길.

나보다 작고 힘없는 존재라고 해서, 내가 낳았다고 해서 힘으로 지배하려는 건 그 작은 아이들의 인격에 큰 상처를 남기는 거야.

바르게 키우려 한다는 명분으로 한 행동이 약한자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것, 내가 잘못하면 맞아도 괜찮다는 것을 학습시키고 있을지도 몰라.

존재 자체로 이미 귀하고 귀한 아이들.

어떻게 하면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도록 도와줄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 더 필요해.

아이들과 토론해 보는 것도 좋겠다.

좀 실패하면 어때. 한가지 실패방법은 알게 되는 거고 그 방법은 다시 쓰지 않겠지. 다음 방법을 또 하나 생각해 내겠지.

가족모두 모여서 <신발주머니 안잃어버리려면 어떤방법이 좋을까?>라는 주제로 아이디어를 적어오게 하는거야.

아이디어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설명하게 하고 투표해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에 채택된 사람 상금 또는 선물 주기 또는 소원들어주기.

이거하면 여러가지가 개발되겠다.

생각력도 커지고 발표력도 생기고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도 알게 되겠는걸.

일단은 이 시간동안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리지 않기라는 주제를 계속 생각하게 했다는게 중요해. 일상에서도 ‘신발주머니 잃어버리 않기’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라서 자동으로 챙기게 될거라는 기대가 되는걸. ”

아이의 잘못은 부모의 관점에서 완벽하지 못한 아이의 행동습관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산을 잃어버리고 온다던지, 입고 간 점퍼를 놓고 온다던지,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린다던지 하는 행동들이다. 아이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고 부모는 점점 걱정이 커지고 화도 난다. 결국 아이에게 채벌을 가한다. 부모의 잘못된 사랑법 때문이다. 어릴 때 빨리 고쳐주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 때문에 매를 든다.

나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아들 둘을 키우지만 손찌검 한 번 해보지 않았다. 좀 커서야 등짝 몇 번 때려본게 전부다. 사랑스럽고 작고 여린 아이들을 때릴 곳도 없지만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에게 나보다 작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할 권리는 내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자상하기만 한 건 아니다. 물리적 폭력은 하지 않지만 언어적 폭력까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잘못을 할 때는 자꾸 비난하는 말이 나오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 할 때는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종용하는 말을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과 나의 가치관이나 습성이 부딪힐 때는 좋은 말 보다는 질책과 원망의 말들을 쏟아 내기도 했다.

어린시절 부모가 과잉통제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에 억업된 행동 성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부모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거나 부정적 대가를 치르게 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 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건강한 독립을 꿈꾼다. 건강한 독립을 위해 부모는 어떤 환경이 되어 주어야 할까? 아이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실패도 성공도 책임있게 마주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줘야 한다.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부모들은 아이의 독립을 위해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른 선택을 한다.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고 더 빠르고 쉬운 길로 갈 수 있을지 연구하고 아이에게 실패 경험을 최대한 막아낸다. 현재의 재미나 흥미보다는 사회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존재가치는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아이를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희생한다.

이런 삶은 아이도 엄마도 존중받지 못하는 삶이 아닐까?


아이에게 진짜 주고 싶은 것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이 험난한 세상을 홀로 잘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

어떤 일을 만나도 용기있게 담담하게 맞설 용기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따듯함을 갖게 하고 싶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아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아이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


결국 내가 아이에게 정말로 해주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다.
‘너는 너의 삶을 살아도 괜찮아.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이 말 안에는 존중, 사랑, 신뢰, 기다림이 있다.


아이를 존중하는 교육은 더디지만,

그 아이는 결국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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