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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결박은 끝났다. '이제 입만 막으면 모든 준비는 끝이다.' 검은 침입자는 크로스백에서 15센티 길이로 잘라온 씰링용 아크릴 테잎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가로 8센티, 세로 15센티의 실링 테잎은 접착되는 부위에 이형지가 붙여져 있었다. 천천히 이형지를 떼어냈다. 술에 취한 여인의 숨결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검은 침입자의 먹잇감들은 항상 알코올 냄새를 풍겼다. 조심스레 핸드폰을 크로스백에 넣었다. 눈은 이미 어둠에 적응한 지 오래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실링 테잎을 여인의 입 주변에 붙였다.
"으~ 음~"
술에 취한 여인이 알 수 없는 촉감에 놀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자 당황한 여인은 몸부림쳤다. 어두움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여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음~! 음! 음~!"
검은 침입자가 '킥킥' 웃었다.
'이제부터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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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들어오세요."
"수연씨는?"
"친구 만난다고 나갔어요."
완공까지 수시로 드나들던 공간이었는데, 혁의 아내 수연이 이사를 오고는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살림들이 제 자리를 찾아 놓여 있었다. 혁의 집은 가로 7미터 세로 14미터의 남향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 구조였는데, 입구로부터 거실, 주방, 침실로 설계되었다. 남쪽 정원을 바라보고 1인용 소파가 두 개 놓여 있었고, TV가 놓인 서쪽을 향해서 긴 소파가 배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TV는 북유럽풍 거실장 위에 놓여있었는데, 70인치 정도의 크기였다. TV의 좌우에는 JBL 북쉘프 스피커와 산스이 빈티지 앰프가 놓여 있었다.
"세간살이가 많지는 않네요."
"말도 마요, 창고에 뜯지도 않은 박스가 한가득이에요."
앰프옆으론 커다란 원목 책장이 놓여 있었고, 책장에는 액자와 LP음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경영, 역사, 소설류의 책들이 많았다.
"혁씨, 경영학과 다녔어요?"
"네."
"그렇구나. 전 이사 오면서 전공 서적 다 버렸는데... 후회되네요."
"저도 안 본 지 오래예요. 그냥 버리기 뭐해서."
"음, 전공 서적은 관심 없고, 조선왕조실록, 죄와 벌, 태백산맥, 사기, 이방인, 체 게바라 평전, 수영 입문."
책장 가운데에 두껍기가 예사롭지 않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양장본이 비스듬히 눈에 띄게 놓여 있었다.
"아니, 이 난해한 책을..."
책을 집었는데, '응?' 가볍다. 너무나 가볍다. 책 모양을 한 인테리어 소품이다. 속이 빈 종이 박스였다. 옆의 영문 서적도 마찬가지다. 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혁이 피식 웃었다.
"혁씨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전 철학은 몰라요. 관심도 없고. 그거 각도 잘 맞춰서 놔야 해요. 안 그럼 수연이가 화내요."
'책을 사면 될 것을, 구태여 인테리어 책을 사는 심리는 뭘까?' 태영은 이런 상품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이런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종이 박스를 원래 위치에 비스듬히 놓았다.
주방 한편에는 커다란 검은색 냉장고와 캡슐 커피 머신, 오븐형 에어프라이어, 잔기 밥솥이 놓여 있었는데, 그 밖의 조리 기구나 살림살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사각형 원목 식탁 위엔 견과류가 든 유리병이 놓여있었다.
"주방이 엄청 깔끔하네요."
"저희가 음식을 잘 안 해 먹어요."
"그렇구나."
"캡슐 뭘로 할래요?"
"골드요."
혁이 머그잔을 거실 테이블에 내려놨다. 커다란 파티오 창 밖으로 7월에 식재한 사과나무와 감나무, 체리나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캡슐 커피가 참 잘 나와요."
"전, 김형이 볶은 커피가 더 맛있던데요?"
"무슨..., 제가 직장 다닐 때는 이거 하루에 두 잔씩 마셨는데... 사무실에 가챠 머신이 있었어요."
"가챠 머신?"
"그니까, 캡슐 뽑기 기계 있잖아요."
"동전 넣고 돌리는 거?"
혁이 다이얼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예, 사장이 500원을 넣고 돌리면 캡슐을 뽑을 수 있는 기계를 마련했는데, 동그란 플라스틱 캡슐 안에 커피 캡슐이 들어 있었어요. 그 당시 네스프레소 캡슐이 천 원에서 천이백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사측에선 나름 복지 정책이었던 거죠. 총무를 담당하는 직원한테 지폐를 오백 원짜리로 교환해서 사용했어요."
"하하, 재미난 사장이네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꽝인 캡슐도 있었고, '하나 더'라고 적힌 태그가 들어있는 캡슐도 있어서, '한번 더' 태그를 총무팀에 가져가면 오백 원을 돌려받는 뭐 그런 건데... 지금 생각하니까 우습네요."
"뭐 하는 회사였는데요?"
"1급 비밀이에요. 알려고 하지 마세요. 위험해요."
"하여간... 엉뚱하다니깐."
정원의 잔디가 잘 자라고 있었다.
"잔디가 보기 좋네요."
"네. 생각보다 잔디가 잘 자라네요."
"정원에 레오폴드 벤치 가져다 놓으면 잘 어울리겠네. 하나 만들어 드려요?"
"저야 있으면 좋긴 한데..."
"은근히 너구리야."
혁이 멋쩍게 웃었다. 창밖으로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가요, 점심에 스파게티 할 거예요."
"미정씨 보기 민망한데..."
"우리 미정이는 그런 거 일도 신경 안 써요. 가요."
두 사내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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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바스락.'
소리의 시작을 좇으니, 커다란 고라니가 있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한 참을 응시하다 물었다.
"야, 뭘 보냐?"
눈꺼풀을 몇 번 꿈벅이더니 방향을 돌려 사라진다. '당돌한 녀석이네...' 주변에 고라니가 늘어났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만, 쓸만한 것들은 눈에 띄질 않는다. 칼바람이 태영의 패딩 속으로 파고든다.
"아, 씨... 겁나게 춥네..."
해는 아직도 소나무에 가려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이미 11시가 넘었다. '일요일 오전부터 집 뒷동산에서 뭔 짓거리란 말인가..., 주말 하루 정도는 낮잠도 자고 그래야 하는데... 이게 뭐냔 말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두껍게 입고 나올걸...' 이렇게 구시렁거리는데, 아침 먹은 게 잘 못 됐는지, 아까부터 배도 살살 당겨온다. 작년부터 집 뒤 동산에서 땔감을 주워왔더니, 이젠 집 주변 동산엔 쓸만한 장작이 씨가 말라 버렸다. 그냥 들어가자니 그렇고... 들고 나온 플라스틱 양동이는 텅 비어있다. 일단, 얼마 전 재선충으로 잘려나간 소나무 밑동에 엉거주춤 앉았다. 밑동에는 허연 송진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두꺼운 패딩을 입었어야 했는데... 입고 올까..."
집으로 내려가면 다시 나오기가 싫을 것 같다. 궁시렁거리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강한 바람에 담뱃불 붙이기도 쉽지 않다. 깊게 들이 마신 담배 연기에 순간 정신이 몽롱하다. 왼손에 쥐고 있던 일회용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는데, 저만치 언덕 아래로 미정이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구름이 예쁘다. 비닐하우스에서 저장해 놓은 무를 들고 나오던 미정이 태영을 발견하고는 소리친다.
"춥지? 적당히 마무리하고 들어와, 된장찌개 끓일 거야!"
"응, 30분까지는 들어갈게."
양동이를 뒤집어 흔들며 말한다.
"쓸만한 게 없네."
"없으면 그냥 들어와!"
"그래, 좀 더 찾아보고."
"맞다, 콩쥐는?"
"응, 그저께 입원했어."
미정이 틀 밭의 배춧잎을 몇 장 뜯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된장찌개엔 배춧잎이 들어가야 제 맛이지. 보자, 어쩐다... 김형네 쪽으로 가볼까."
'사십이 넘으니 이 짓도 할 게 못된다'라고 투덜대며, 힘겹게 엉덩이를 떼며 일어섰다. 뭐, 운동도 하고 난방비도 아낀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추운 게 제일 문제다. 몇 년 전부터 시나브로 추위를 타기 시작하더니, 뒷 목을 타고 뒤통수까지 이어지는 시큰 거림이 그를 괴롭혔다. 한 번 오한이 들면 며칠이고 계속된다. 동네 노인들이 들으면 기가 찰 테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김형네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집은 토박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는 분리되어 외지인들만이 터를 이룬 곳이다. 야트막한 동산을 등지고 네 가구가 올망졸망 이어져 있다. 밭으로 사용되던 산비탈을 읍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김 사장이 평지로 개간을 해서 3 ~ 400여 평으로 필지를 나눠 외지인들에게 분양을 했다. 지금은 네 가구가 들어와 일렬로 집을 짓고, 한 필지는 농막을 가져다 놓고 주말농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태영의 밭과 경계한 나머지 한 필지는 땅 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상태다. 네 집 중에서 난방비를 아끼려 난로를 때는 집은 미정네 밖에 없다.
숲 속 길 사이로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고, 그 위로 고라니 발자국이 겹쳐 찍혀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소나무가 빽빽하게 무성한지라 좀처럼 볕이 들지 않아 눈이 내리면 녹지 않고 오래갔다. 고라니가 눈의 띄게 늘어났다. '갑자기 개체수가 이렇게 늘어나다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싶은 태영이다. 작년만 해도 한 두 마리가 멀찍이 논을 가로질러 뛰었는데, 이제는 무리를 지어 뛰어다닌다. 윗동네에서 산을 밀어내고 태양광 시설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장작을 주으러 다니면 곧 잘 눈에 띈다.
작년 정월 즈음.
"빨갱이가 뭔 공작질 안 허나 감시하러 온 겨."
"하하, 빨갱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리에 땅을 거간하러 왔던 헤글러 김사장이 태영의 집에 들렀다. 헤글러는 당상관 부동산 김 용식 사장의 호(號)다.
"여보게, 이 난로 얼마나 줬는가?"
"얼마 안 줬어요, 깡통 난로라 얼마 안 해요."
"딱~보니께... 쯔~읍, 20만 원 정도 줬겠구먼? 그럴 겨."
김 사장이 난로 상판을 일회용 라이터로 깨뜨릴 듯이 깡깡 두드렸다.
"사장님, 그러다 난로 깨져요."
"이 사람아, 이래서 깨지면 그게 난로여, 달걀이지. 이왕 사는 거 좋은 걸 사야지, 싼 게 비지떡이여! 우리 사무실에 있는 거 있잖여, 기름 온풍기. 그게 일젠디 말이여, 그런 게 왔다란 말여. 요즘 세상에 누가 난로를 때는가... 먼지만 날리지. 답답~허네. 그 일제 온풍기가 백만 원 짜리여. 버튼만 누르면, '띠띠띠' 하문서 점화가 되는디, 기름도 을매 안 먹어. 순식간에 말이여, 몸이 노골 노골하니 을매나 따신지, 양사장 있잖여?"
"예?"
김사장이 난로를 깡깡 두드렸다.
"1층에 청국장 집 있잖여, 그 자식이 양 사장이여. 그 자식이 엊그제 우리 사무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더니, '형님, 큰일이유, 지가 집에 못 가겠슈~.' 이러는 겨~! 그래가꼬, 내가 놀라서 '뭐여, 뭔 일 났당가?'허니께, 이 미친넘이 뭐라는지 알어? '용식이 행님, 지가유, 온풍기가 느~무 따신께, 불알이 축~처져서 걷지를 못하겠슈~ 오늘 장사 못 헌 게, 형님이 하루 일당 줄꺼쥬~?' 이 지랄을 하는 겨~! 온풍기가 을매나 좋으면 그 자식이, 그 지랄을 하냐 이 말이여. 구라 아녀~, 참 말이여! 서울서 대학 나오면 뭐혀, 아무짝에 쓸모없는 겨~. 요즘, 누가 난로를 때는가! "
여전히, 라이터로 난로를 깨려는 듯 깡깡 두드린다.
"뭐, 그냥저냥 쓸만해요. 흐흐. 사장님, 커피 드세요."
"그려, 근데 커피는 제대로 탈 줄 아는가? 자네는 죄다 허당이라 믿을 수가 없어."
"믹스 커핀데요, 뭐."
"믹스 커피 우습게 보면 안 되네~, 믹스 커피는 말여, 물 조절이 생명이여, 생명! 워메~! 물이 한강이네~. 배 띄워도 되겠네. 여튼 말여, 뭐든 살 때는 나한테 미리 얘길 하란 말여, 왜 헛돈을 쓰는가, 답답허네. 답답 혀~."
커피를 홀짝 거리던 김사장이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묻는다.
"글고, 자네 이젠 안사람 학대하고 그러진 않지? 그러면 안 되네."
"누가 들으면 참말인지 알아요. 그만하세요. 좀."
"내가 없는 말 하는가, 허 허."
미정은 김사장이 오면 상종 못 할 인간이라며, 밖으로 나가거나, 방에 들어가 내다보지도 않는다. 부부가 사용하는 난로는 보기와는 다르게 가격이 만만치 않고, 가성비도 상당히 좋았다. 난로 내부에 내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 축열 기능도 상당히 뛰어나고, 연통도 이중 스텐 구조라 연통 값이 난로 값만큼 비쌌다. 뭐,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해봤자 태영을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으로 치부하는 김사장에겐 씨도 먹히지 않았다. 되려 그 돈 주고 이런 물건을 왜 샀냐고 잔소리를 할 게 뻔했다. 그에게 이런저런 신세를 지기도 했고, 워낙에 오지랖이 넓은 양반이니... 태영은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김 사장의 말처럼 난로는 손이 많이 가는 난방 기구다. 우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재를 치워야 하는데, 먼지가 여간 많이 날리는 게 아니다. 재를 비울 때마다 진공청소기로 날리는 먼지를 빨아들이면서, 삽으로 조심스레 재를 퍼내지만, 그래도 먼지가 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뒷 언덕을 다니며, 땔감을 주워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집 주변엔 쓸만한 녀석들이 드물어져, 잔가지를 긁어모아 불을 때지만, 금방 타버려 수시로 땔감을 넣어줘야 한다. 그래도 난방유 값을 생각하면 이 정도 번거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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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눈을 피하려 좀 더 언덕으로 올라가 혁의 집 방향으로 향했다. 혁의 집은 여섯 필지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태영은 부끄러운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땔감을 주우러 다닌다고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좋을 리는 없었다. 언덕 위에서 누군가 태영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든다. 박 씨다. 손을 흔들며 재빠르게 양동이를 엉덩이 뒤로 감췄다. 공동 우물에서 자베르와 맞닥뜨린 포슐르방 노인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태영이 속으로 염원했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제발...' 바람과는 다르게, 등산복 차림의 혈색 좋은 박 씨가 괴상한 스텝을 밟으면서 태영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태영씨. 훅 훅, 잔가지 주우시나요? 훅! 훅!"
"예, 산책 다녀오시나 봐요."
흰 벽돌집 강 씨가 태영에게 말하기론, 50대 후반의 박 씨는 중소기업의 오너라고 하는데, 상당히 탄탄한 업체라고 했다. 비만한 록키가 입으로 "훅 훅" 바람 소리를 내며 태영의 아래턱을 노리며 쨉을 날린다. 지난밤의 과음을 자백하듯 '훅훅'거리는 날 숨에서 술냄새가 풍겨온다. 그는 일 년 만에 농막 아래를 소주병으로 가득 채웠을 정도로 주당이었는데, 처음엔 올챙이 같았던 박 씨의 아랫배가 언젠가부터 성난 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버렸다. 곱게 술만 먹으면 알바 아니겠지만, 그의 술주정은 여러 번 이웃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렇죠, 불멍은 남자의 로망이죠. 훅! 훅!. 공기가 참 좋습니다. 훅! 훅! 올라가기가 아쉽네요. 훅! 훅!"
"네, 날씨가 좋네요. 오후에 올라가시나요?"
언제 왔는지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박 씨의 아내 오 씨가 몇 개의 잔가지가 담겨있는 태영의 양동이를 힐끔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간밤에도 한바탕 난리가 났나 보다.
"네, 직장에 가야 하니까요. 요즘 기름보일러는 연비도 좋다던데..."
태영을 바라보며 빈정거리는 말투며, 입가에는 조소가 가득하다. '젠장, 하필이면 오 씨한테 딱 걸렸네.'
"없이 사니 그렇네요. 하 하. 그럼 안전 운전하시고요.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네. 그럼. 훅! 훅!"
농막을 가져다 놓고, 300여 평의 밭을 일구는 박씨네는 5도 2촌 생활을 하고 있다. 재미나게도 그의 아내는 습관적으로 '직장에 다녀서'라고 말했다. 언젠가 미정이 '대파가 참 잘 됐다'라고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직장을 다녀서'라고 대답을 했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미정 부부도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십여 년 동안 직장을 다녔는데, 뭔가 억울했다. 미정은 오 씨가 퇴직을 하고,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오 씨도 처음부터 이렇게 쌀쌀하진 않았다. 옆집 윤 씨가 태영에게 전하기로는 태영이 자신의 뒷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그래서 맘에 안 든다나 뭐라나... 그렇다고 하는데, 접점이 없는 그녀의 험담을 할 이유가 없었다. 태영이 짐작건대, 작년 가을의 일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그날은 미정 부부가 함께 집 뒤편 언덕을 어슬렁 거리며 불쏘시개를 줍고 있었다. 평소라면 태영만이 잔가지를 줍는데, 그날은 미정이 같이 가자며 따라나섰다. 가을부터 조금씩 잔가지를 모아놔야 그나마 겨울에 조금 수월했다. 그날은 꽤나 높이 올라와 능선이 가까이 보였다. 하나씩 나눠 끼운 블루투스 이어폰에선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흘러나왔다. 태영은 25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레미제라블을 유독 좋아했다. 극은 중반을 넘어 테나르디에가 포슐르방의 집에 강도짓을 하려는 급박한 순간이다. 에포닌이 테나르디에의 범행을 저지하려 '꺄!' 비명을 지르는 순간, 미정도 덩달아 '꺄!' 비명을 질렀다. '너무 몰입한 거 아냐?'하고 태영이 생각하는데, 미정이 그의 팔을 붙잡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
"자기야!!!"
뭔가 심상치 않았다.
"왜? 뱀이야? 어디!"
그도 모르게 펄쩍 튀어 오르며 소리를 쳤다. 아무리 작은 언덕이라도 명색이 산인지라, 드물게 뱀이 나타나곤 했다.
"아니, 저, 저기!"
미정이 그의 뒤로 숨으며 손가락으로 멀찍이 떨어진 소나무 숲을 가리켰다. 미정이 가리킨 숲은 빽빽한 소나무 그림자로 어둑어둑했다.
"뭐? 뭐가 있는데?"
"사람이 있어, 저기 나무뒤에서 갑자기 머리통이..."
여전히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람? 나무 뒤에? 뭔 소리야?"
"맞다니까. 머리통이 쏙 나왔었어! 나랑 눈이 마주쳤다니까!"
"그래?"
태영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거기 누구요? 혹시 마 씨 할머니?"
혹시나 마 씨 노파인가 싶어 소리쳤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거기! 누구냐니까! 왜 대답이 없어? 거기 숨어서 뭐 하는 거야!"
한껏 허세를 부려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자기야, 가지 마! 그냥 내려가자!"
"있어봐, 괜찮아."
말리는 아내를 뒤로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찾아 단단히 거머쥐었다.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누군가 나무 밑동에 쭈그린 채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미정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보시오, 누구길래 거기 숨어 우리를 훔쳐보는 거요! 어서 나오지 못하겠소!"
태영이 호통을 쳐보지만, 여전히 조용한 걸 보면 필시 나서지 못할 곡절이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접근해 보니, 소나무 밑동으로 드러난 뽀얀 아랫도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밀가루처럼 뽀얀 것이 분명 여인의 아랫도리다. 다 가리지 못한 검정 패딩도 눈에 보였고, 붉은 등산화도 보였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입성이 주말 내내 송이를 채취한다고 뒷 산을 쏘다니던 오 씨와 꼭 같았다. 아마도 산에 올랐다가 갑작스레 배탈이 났나 보다. 태영이 발길을 돌려 미정에게 돌아갔다.
"사람 맞지?"
"응, 그냥 내려가자."
"뭐야, 왜?"
"똥 싸나 봐."
"뭐라고? 진짜?"
"봤어? 똥 싸는 거 봤어? 누구야?"
신이 난 미정의 눈이 희번덕 거렸다. '이건 좀 무서운데...'
"얼굴은 안 보이고, 엉덩이만 봤어. 여자 같아."
"여자?"
"응, 배탈이 났나 봐."
"와~, 완전 개망신이네. 대박! 내가 보고 올게!"
미정이 발 길을 돌리려 하는데, 태영이 엄지와 검지로 미정의 뺨을 잡아당겼다.
"으이고~ 미정아, 그냥 가자."
"궁금한데..."
미정 부부가 뒷 산을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한 박 씨가 농막에서 비척거리며 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들려 있었다. 2층에서 언덕을 감시하던 미정이 외쳤다.
"오 씨였어! 오 씨! 같잖은 직장 다닌다고 깝죽거리더니... 똥싸개였네! 오호호~"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오 씨가 태영을 피하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지들 집 주변에 똥을 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저기에 소문을 낸 것도 아닌데...' 태영으로선 여간 억울한 게 아니었다.
혁의 뒤편 언덕은 아직 쓸만한 잔가지들이 많았다. 태영과 강 씨의 집이 양 끝에 위치하고, 혁이네가 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니. 지난 3년 동안 뒷동산 잔가지의 4할 정도를 사용한 셈이다. 강 씨네 주변 잔가지를 갈무리할 즈음이면, 태영의 집 뒤에는 다시 잔가지가 잔뜩 쌓일 것이다. 혹시라도 혁의 눈에 띌까, 조심스럽게 잔가지를 주어 모았다. 소나무 잔가지와 잎, 솔방울은 송진 성분 덕에 불 붙이기가 아주 수월하다. 다만, 불땀이 약하고, 금세 사그라든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마에 땀이 찰 즈음, 양손의 양동이에 잔가지가 가득 찼다. 이만하면 아침까지 거실을 훈훈하게 데울 수 있을 테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줍다 마녀의 집에 갔듯이, 태영도 정신없이 땔감을 줍다 보니 어느새 비탈에 세워진 혁의 집 뒤편 울타리까지 와버렸다. 이제 돌아가려 하는데, 커튼이 반쯤 열린 커다란 침실창으로 벌거벗은 남녀가 보였다.
"아이고 이런..., 금슬 좋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피차간 여간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슨 도둑이라도 된 것 같아, 조심조심 뒷걸음질로 멀찍이 언덕을 돌아 내려갔다. 집으로 내려오던 태영이 입맛을 쩝 다셨다. 아마도 된장찌개가 생각 나서였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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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혁씨네 전화 좀 해봐."
"전화? 왜?"
"빵 좀 구웠어."
"빵이 맘에 들게 잘 나왔나 보구먼? 집에 있을 걸, 아까 잔가지 줍다가 봤어."
"그래도, 전화해 봐. 혹시 모르잖아."
미정은 빵 굽기가 취미다. 태영은 지금도 미정의 처음으로 구운 빵을 잊지 못하는데, 미정이 오븐을 구입하고 처음으로 내민 빵은 '플란다스의 개'란 만화 영화에 나오는 네로가 먹던 것과 똑같이 생겼었는데, 그 단단함은 돌덩이와 같았다.
"와! 네로 빵이다!"
"네로 빵이 뭐야?"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먹던 빵!"
"아!"
"와, 완전 단단해, 이 부러지겠어."
"크크"
그랬었는데, 이젠 직접 발효종을 만들어 빵을 굽는 수준에 도달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 셈이다. 뭐 그 과정이 결코 수월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안 받는데? 자나?"
"벌써? 이제 일곱 신데?"
어쩌나 하는데, 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예, 혁씨, 집에 있어요?"
"아뇨, 지금 운전 중이에요."
"그렇구나, 오후에 나갔나 봐요?"
"아뇨, 어제 서울 왔다가 조금 전에 내려가는 고속도로 탔어요. 집에 도착하려면 4시간 정도 남았는데,
무슨 일인데요?"
'어제라니...?' 태영의 눈이 커졌다.
"예...? 아, 그러시구나. 저기, 아내가 빵을 구웠다고 그래서..."
혁이 잠시 뜸을 들인다.
"음..., 집에 수연이 있으니까, 수연이한테 가져가라고 할게요. 잘 먹을게요."
"그래요, 운전 조심해요."
"없대? 뭐래?"
"응? 응. 잠깐 나와 있대."
"둘 다?"
"아니, 수연씨는 집에 있대."
"그럼, 주고 와."
"어?"
"당신이 다녀오라고."
"아니, 가져가라고 전화한대."
"그냥 당신이 가져다주고 와. 수연씨 다니는 거 안 좋아해"
"나도 다니는 거 안 좋아하잖아."
"가! 다녀와."
미정이 등을 떠민다. 동지가 가까운 요즘엔 해 지기가 무섭게 어둠이 내렸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삼백여 미터 떨어진 혁의 집에서 라이트도 켜지 않은 자동차가 빠져나간다.
"라이트도 안 켜고..., 뭐지?"
길을 걸으며 기억을 더듬으니 창문으로 보인 건 뒤엉킨 벌거벗은 몸뚱이였을 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연히 혁과 수연일 거라 짐작했는데... 센서등이 켜졌다. 어느새 집 앞이다. 잠깐 주저하다 벨을 눌렀다. 조용하다. 한번 더 벨을 눌렀다. 여전히 조용하다. 태영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치정 영화 속 상황이 떠 올랐다. 집을 비운 남편, 벌거벗은 사람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가는 차량. 혹시...
"누구세요?"
망상이 깨져버렸다.
"예, 수연 씨. 아내가 뭐 좀 전해 드리라고 해서요."
"네, 잠시만요."
목재로 만들어진 견고한 현관문이 열리고, 수연이 얼굴을 내민다. 그녀가 문을 열어주기는 처음이다. 뜨거운 열기가 무스크향과 함께 훅 밀려온다. 홍조를 띤 얼굴, 살짝 흐트러진 모양새, 흥분된 열기를 삭이고 있는 것 만 같았다. 오전의 기억 때문일까...
"저기..."
"아, 이거 아내가 식빵을 좀 구웠는데, 맛이나 좀 보시라고..."
태영의 종이백을 건네받은 수연이 붉게 상기된 빰의 열기를 손등으로 식히며 말했다.
"제가 가려고 했는데,,, 언니한테 잘 먹는다고 전해주세요."
"별말씀을요. 저기, 혁 씨는 어디 나갔나요?"
"그이요? 네. 볼 일이 있어서."
무슨 바람일까? 알 수 없는 호기가 발동했다. 대학 시절 활동하던 연극패의 무대가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숙여 주먹을 코 밑으로 가져가, 마치 탐정이라도 되는 듯 질문했다.
"아, 그러시구나. 좀 전에 출발했나 봐요?"
"네?"
놀란 그녀의 눈이 커졌고,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였다. 살짝 뜸을 들인 그녀가 태영에게 되물었다.
"네? 누가 출발해요?"
"아뇨, 혁씨요. 조금 전에 차량 한 대가 댁에서 나가길래요."
"네? 아... 어, 엄마가 왔다가 조금 전에 집으로..."
태영이 수연의 눈을 응시했다. 수연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랬군요. 늦었네요. 그만 가볼게요."
"네..."
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온 태영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가 잘 못 봤겠지...' 머리를 주억거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연 씨가 뭐래?"
"응?"
"수연 씨가 뭐라고 했냐고?"
"응, 잘 먹는다고, 고맙데."
"당신 아까부터 좀 이상한데? 왜 그래?"
"이상하긴, 그게 아니라, 수연 씨가 자꾸 얻어먹기만 해서 부담스럽다고 그러네..."
"별게 다 부담스럽네."
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잘 못 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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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적어도 태영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혁은 작년 말에 홀로 녹촌리로 전근을 왔다. 읍사무소 근처에 달방을 얻을 때도 혼자였고, 대략 5개월 정도의 공사 기간 동안에도 그녀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24시간 건축 현장을 감시하는 건 아닌지라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혁의 공사 기간 동안 감리 역할을 했던 태영이었는데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집을 완공하고 9월 즈음에 이사를 왔던 때도 그녀는 한동안 두문불출 했다. 태영이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추석 이후 늦가을이었다. 도로포장 문제를 상의하려 그들의 집에 들렀는데, 마른 체형의 여인이 틀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들의 틀밭은 총 4개로 가로 1미터, 세로 3미터의 크기로 집과 같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집을 지을 때 이미 설계에 반영되어 있었다. 라피아로 짜인 썬 캡, 젠아이저 이어폰,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 굽이 높은 샌들. 중 키의 그녀 발치에는 길이 1미터 정도의 나무 자가 있었고, 자에는 한 뼘 정도의 간격으로 검은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 전에 정식된 듯 한 상추 모종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고,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는 다른 틀밭의 채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딸깍발이를 연상시켰다. 태영은 그녀가 궁금해져, 수작을 걸어 봤다.
"저기, 사모님."
"..."
그녀의 앞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저기요?"
"아! 네."
놀란 그녀의 눈이 커졌고, 태영에 대한 경계가 느껴졌다. 옅은 화장의 수연은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썬 캡 위로 틀어 올린,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칼이 보였다. 분사기를 쥐고 있는 그녀의 잘 관리된 손톱에는 다양한 빛을 반사하는 반짝이가 장식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뒷 집에 사는 김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작은 목소리다.
"저기 오지랖인데요, 잘 아시겠지만, 녀석들 간격이 너무 촘촘한 것 같아요."
"아, 그런가요?"
"네, 지금 간격보다, 반 뼘 정도는 더 넓게 심으셔야 할 것 같아요. 알고 계시겠지만, 상추란 녀석은 보기보다 크게 자란답니다. 보니까 토종 상추를 심으셨는데, 그 녀석들은 특히나 몸집이 커요. 남은 녀석들은 간격을 조금 더 넓게 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에..."
공들여 모종을 심은 사람치곤, 별 관심 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사모님, 상추 좋아하시면 저희가 파종한 아바타 모종이 많이 남았는데, 좀 드릴까요?"
"아니에요, 지금 심은 것만 해도 많은걸요."
집 뒤편에서 나타난 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왔어요? 김형네 집에 가면 별에 별 채소가 다 있어. 토마토만 해도 열 종류가 넘어."
"아내가 이것저것 심는 걸 좋아해서, 이런저런 작물들이 많아요."
수연이 손톱의 장식을 살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기야, 이거 간격이 너무 좁다는데?"
"이거 혁씨가 심은 거예요?"
"예, 이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김형, 간격을 10센티 정도 더 넓히면 될까요?"
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쩐지...' 딸깍발이는 귀하다. 절대 흔하지 않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훅 사그라들었다.
"예, 그 정도 하시면 되지 싶어요."
"처음이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그냥 적당히 심어요."
"그게 쉽지가 않네요. 이게 일종의 강박이라... 흐 흐."
수연이 혁에게 분사기를 건넸다.
"자기야, 나 들어갈래. 얼굴 다 타겠어. 먼저 들어갈게요."
"네."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