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생일에 엄마 생각이 난다.
#지은이 배정순 05.
"아이고...이제 산넘어 산이다."
그때 엄마는 분명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분만실에서 병실로 올라온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시며 혼잣말인듯 아닌 듯 터져버린 그 대사를 잊지 못한다. 산통만 지나가면 모든 고통이 다 끝난 줄 알고 좋아하던 철부지였던 터라, 그 나즉한 말씀이 순간 너무 서운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정말 산너머 산이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엄마가 해줘야 할 것은 많고, 오늘보다는 항상 어제가 그립다.
오늘은 열살 아들의 생일. 내게 '엄마'라는 새로운 인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이제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괜히 10년이라고 해서인지, 올해 아들 생일엔 자꾸 앞과 뒤를 둘러보게 된다.
자식이란 낳아놓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 이렇게 내 인생을 마구 흔들어놓는 존재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서른 중반이 훌쩍 넘은 출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나는 저 똑똑한 줄만 알고 세상을 너무 몰랐다. 이후로는 내가 하던 일도, 생각과 행동의 방식도, 가치관도 모두 아이에 맞춰 달라졌다. 대부분은 자의보단 타의였던 적이 많아서, 그 변화의 단계마다 즐거웠다고만 포장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부터 새롭게 바뀐 인생에는 분명 실보단 득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다행이다 싶은 것은 부모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세상 어떤 간접경험으로도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너도 니 새끼 낳아봐라'는 정말이지 누가 만든 명언인가!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정말 산너머 산인가 보다. 그러나 분명 그 산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겠지. 비가 오면 잠깐 젖었다가 해가 나면 다시 적당히 단단하게 마르겠지. 가끔은 꽃도 피고 새도 울겠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엄마가 넘어야했던 그 산에도 꽃이 피고 새가 울었을까? 분명 나와 같이 넘던 산이었겠건만, 업혀있었던 처지로는 기억도 발자국도 내것이 아니다. 다만 그때의 울 엄마에게도 가끔은 산들바람에 웃어보는 날이 있었기를, 생일 케이크에 초를 붙이며 엄마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