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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Sep 27. 2021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부추전을 굽다가 문득.

부추전을 굽는다. 부추는 짧게 썰고 새송이 버섯과 청양고추도 약간 송송 넣고, 한 숟갈씩 떠서 한입 크기로 부친다. 생각해보니 내가 부추전을 즐기게 된 것이 정말 최근 몇 년의 일인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내가 부추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가 지겹도록 부추 다듬기를 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집은 제사가 아주 많은 집이었는데, 엄마는 정말 제사음식을 정갈하게 하셨다. 그중에서도 부추전은 머리와 꼬리가 가지런하도록 네모반듯하게 부쳐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다듬고 씻을 때부터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그뿐인가. 꼬치전에 끼울 재료도 같은 사이즈, 만두전(동그랑땡)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새우전은 칵테일 새우 두 마리를 사이좋게 겹쳐 동그랗게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재료 준비를 언니와 내가 낑낑거리고 해 놓으면, 늦게 오신 작은엄마들은 부치기만 하고 가시는 거다. 재미있는 건 늘 어른들만 하는 것 같았다. 막상 이런 얘기를 엄마께 말씀드리면 '선나꼽재이' 도와주고 말도 많다고 하시겠지만, 아무튼 그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시집와서도 제사는 지내지만, 시댁의 제사음식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우리 어머님은 그렇게까지 부추를 일렬종대로 세우진 않으니 얼마나 관대하신가. 제삿날의 기분에 따라 짧게 썰어 둥글게 부칠 때도 있다. 그만큼 부담이 없어진 셈이다. 주말에 가장 즐겨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부추전이 된 것도 그 덕분일 수 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내 마음대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네모 반듯하게 부쳐도, 둥글 넓적하게 부쳐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나의 부엌이다. 하지만 막상 커보니 어른들 하는 일 중에 재미로 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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