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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Aug 24. 2022

입국장의 풍경

떴다떴다 비행기로 시작해 울엄마로 끝나는 이야기

제주도로 여행 간 남편과 아이를 마중하러 김포공항에 왔다. 국내선이긴 하지만 입국장의 반대편에서 누군가 기다려보는 것도 오랜만. 반가운 이들을 기다리다 멍하게 옛날 일이 떠올랐다.


일본에 있었을 때 엄마가 잠깐 오셨었는데,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거의 두시간 가량 입국장의 오고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데면데면하거나 덤덤하게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격하게 반기거나 기뻐하는 분위기들이어서, 옆에 서있던 나까지 덩달아 웃음짓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았는데...그중에서도 인상깊었던 건  남친(추정)을 마중나온 자그마한 어느 여성분.


옅은 색 블라우스에 심플한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단화를 신고 있었는데, 작은 키를 애써 감추지 않은 수수함에 일단 눈길이 갔었고, 손에 든 작은 꽃다발도 눈에 띄었다. 크라프트지로 포장한 정말 손바닥만한 꽃다발이었다. 기다리던 그(서양인, 노란머리, 파란눈)가 입국장에 들어서자 꽃을 든 두손을 곱게 모으고 다가서는데, 막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이리오라 버티는 것도 아닌, 다만 몇발짝 그 수줍은 걸음에 왜 내가 설레고 난리였던건지 모르겠다.

와락도 아니고  느끼한 포옹도 아니게, 품에 콕 박히듯 어설프게 안기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서, 세월이 이만큼 지나도 아직 생각이 난다. 그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는데...


...에서 기억을 접으려는 순간, 그날 입국장으로 들어서던 엄마 표정이 떠올랐다. 손목이 떨어져나갈듯 힘차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들어섰는데, 마치 어린아이 같이 종종 뛰어오시던 모습이 평소 우리엄마의 근엄함과는 너무 달라서 순간 2, 3초 낯설었던 느낌도 같이 기억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엄마 표정엔 오랜만에 딸을 만난 반가움도 있었겠지만 아마 안도감이 더 컸던 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나홀로 국제선 비행길에 적잖이 긴장하셨던 게다. 하네다까지 몇시간 되지도 않는 혼자만의 여정이, 엄마에겐 일탈이자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당신 마음에 들었을 법한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집에 갇혀있어보니 이제 나도 어렴풋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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