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달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
새 러닝화를 샀습니다. 저에게는 두 번째 러닝화입니다.
두 번째 러닝화를 샀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사건입니다. 첫 러닝화를 사던 날, 뭐랄까,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몸은 무거웠고, 뭘 해도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운동'은 너무나도 요원한 세계였어요. 마치 초등학생이 스무 살 너머의 세상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에게도 '운동'이라는 세계는 남에게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아예 안 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헬스장에도 두 어번 등록했던 것 같고, 지역 체육센터에서 하는 요가 클래스에도 다녔었어요.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등록비를 버렸다는 기억, 그러니까 '돈지랄'했다는 경험으로만 남았거든요.
그래서 운동에 대해 조금씩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 제 목표는 딱 하나였습니다.
"돈 안 쓰고 운동한다."
또 헬스나 수업을 등록하면,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될 것 같았거든요. 아무래도 매일 갈 것 같지는 않은데, 안 가는 날마다 죄책감이 쌓인다면, 그걸 또 못 견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돈 안 드는 운동을 생각하다가 러닝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운동화 한 켤레를 샀었습니다. 운동화 정도는 러닝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신으면 그만이니까, 좀 덜 아깝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뛰었습니다. 어떨 때는 500미터도 뛰고 어떨 때는 1킬로미터도 뛰고요. 그러는 사이 제 러닝 아이템도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 러닝 벨트: 쿠팡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걸로 샀습니다. 여기에 휴대폰을 넣고 허리에 차고 달립니다.
- 무선 이어폰: 원래는 줄 이어폰을 썼었는데 아무래도 덜렁덜렁 신경 쓰여서 QCY 제품을 샀습니다. 저렴합니다.
- 러닝셔츠: 평생 안 입을 것 같았던 민소매 셔츠를 러닝 하느라 입게 되었네요. 올여름에 구입했습니다. 아주 만족합니다.
이렇게 아이템이 하나 둘 늘어갔다는 건, 제가 달리기를 계속하리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올여름에도 최대한 열기를 피해 뛰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에는 비가 쏟아지기도 했어요. 신발이 쫄딱 젖었죠. 신발을 빨다 보니 많이 닳았더군요. 그래서 하나 더 사야겠다 생각하던 중에 괜찮은 운동화가 보여서 구입했습니다. 그리 비싼 건 사지 않았어요.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까 너무 많은 투자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다니. 이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저도 천변을 달리는 제 자신을 보며 늘 놀라요. 깨달은 것은 운동은 그 결과가, 그리고 영향이 어느 정도 몸에 느껴져야 계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숨이 차는 정도가 점점 안정화되는 걸 몸으로 느끼니까 '오늘은 또 어떨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게다가 살이 안 찝니다. 원래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은 아니어서 살이 빠지는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고 나서부터는 살이 안 쪄요.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찝니다. 그리고... 뱃살이 사라졌어요. 하하하하하하. 옷태가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안 뛸 수가 없더라고요?!
현재 저의 달리기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매일 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매일'이라는 어려운 목표가 생겨버리면 달리기 자체를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목표는 가볍게 세웁니다.
2. 기록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역시 부담감을 갖지 않기 위해 세운 목표입니다.
3. 그래도 '장기적'인 목표는 가져보자. 제 장기적인 목표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그는 하루에 10킬로미터 정도 달린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일단 10킬로미터가 목표입니다.
여름도 끝나가고, 새 운동화도 샀겠다. 좀 더 성실하게 달려볼 생각입니다. 9월 한 달 잘 달리고 나면 저에게 '모자'를 선물하려고 해요. 지금 쓰고 달리는 모자는 예전에 사두고 안 써서 처박아두었던 모자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프 마라톤을 하겠어!', 또는 '기록을 단축하겠어!' 같이 큰 포부보다, 이런 소소한 목표들이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가볍고 사소하게, 그게 제 방식입니다.
오늘 처음 신고 뛰어 본 두 번째 러닝화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난번 운동화를 신는 동안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운동화는 사이즈를 넉넉한 것으로 샀어요. 그래서인지 두툼한 스포츠양말을 신고 달렸는데도 아주 편안했습니다. 이렇게 저도 약간의 스킬이 쌓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