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이유들
너 언제 시간되?
"나, 일단은 면접보고 나서 나중에 시간될 거 같아. 그때되면 치맥하러가자!
"아...알겠어. 이번에는 꼭 가자!"
언제쯤 마음 편히 함께 웃으며 치맥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단짝친구와 마음 놓고 웃으며 수다를 떨었던 날이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다. 2년여 간의 계약직이 종료된 이후 친구는 갈곳을 잃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다시 연락하여 만나게 된 친구의 모습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또한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일뿐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내게 밥한끼 사주고 싶다고 근처 돈까스 집으로 초대한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외국계 기업으로 취업을 하고 싶다던 친구의 오랜 바램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이 버거울 수록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헛된 상상이 자꾸만 커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미국에 간다면...
분명 미국을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을거야.
그리고 급여도 한국보다 많이 줄거야.
그리고 다양한 국적에 사람들이 사는 만큼 나를 분명 환대하며 받아줄 수 있는 곳도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미국 가면 다들 성공해서 오는 거니까.
네가 만약 미국에 가면 일자리 걱정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면서
세계 여행도 마음껏하고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을거야.
적어도 이 좁은 땅에서 허우적 거리고 경쟁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세상일거야.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도 취업이 어렵다는 소식을 뉴스나 선배들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될 때마다 상상속에 풍선은 자꾸만 커져갔다. 미국에는 간호사를 지켜줄 수 있는 법도 잘 정비되어 있고, 태움을 상상할 수도 없으며 군인 대우를 해줄지 언정 의사가 간호사를 하대하거나 함부로 하는 일은 적어도 없을 거라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국 또는 해외 간호사에 대한 환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해외 취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해외 취업을 꿈꿨던 이유는 번듯한 직장을 얻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취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깊은 고민과 성찰없이 입사하게 된 첫 직장은 정말이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 취업 특강으로 오게 된 한 강사의 강연을 듣고 강사가 운영하는 기업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해당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졸업을 하기도 전에 운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모두들 졸업 이후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할지 걱정을 하던 그때. 졸업식날 친구들에게 네 명함이 생겼다고 한껏 자랑하며 들떠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취업 걱정으로 근심 가득했던 친구들 앞에서 나의 이런 배려없는 행동이 지나고 보니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의 첫 직장은 순탄치 않았다. 아르바이트만 해왔던 내게 직장 생활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는 네 할일만 잘하면 되는 것뿐이라면 직장은 '인간관계'와 더불어 네 할일만 잘하는 것이 아닌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남일도 잘 도와줄 수 있는 여유도 싹싹함 즉 '일머리'가 필요했다. 일머리도 없었거니와 눈치도 없던 난 결국 입사한 지 9개월만에 첫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면접을 보게 된 여러 회사 중 성분 분석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직장 생활은 더없이 어려웠다. 술로서 친해지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퇴근 후 이어지는 술자리에 함께 참여하지 않고, 상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였을까. 결국 여자 상사는 내게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거침없는 말을 내뱉더니 본색을 드러냈고 내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더니 더 나아가 갓 들어온 신입직원과 한 패가 되어 네 발로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한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원래 이런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네가 사회부적응자는 아닌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했다. 이후 또 다시 면접보게 된 집 근처 식품 회사는 한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였는데, 첫달 들어온 급여를 보고 단번에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경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더는 회사를 그만다녀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 네 나이 28살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취업 소식 또한 듣게 되었지만 잘된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3년 동안 NCS만 준비해 한전에 합격하거나 고졸이라는 서러움을 견디지 못한 친구는 결국 전문대로 진학하여 지역 공무원이 된 친구들도 있었다. 그 외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한채 뿔뿔이 흩어졌다.
내게는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쉽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서러운 생각이 밀려들어 왔을 때
그때 난 한국을 정말이지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네가 아메리카 드림을 꿈꿨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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