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hyo Aug 19. 2024

덜 후회하는 법

선택 그 이후

간호학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간호대학에 입학한 뒤로 가장 힘들었던 점이 ‘학점관리‘였다. 높은 학점과 뛰어난 언어실력으로 모인 동기들 사이에서 괜찮은 학점을 얻기란 어려웠다. 모두들 실력이 출중하였고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2학년 1학기가 되었을 때 동기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언제쯤 이 눈물 수도꼭지가 멈출지 모르겠다. 이유는 기본간호실습 때 교수님으로부터 듣게 된 말 때문이었다.


“너는 왜 이리 손이 둔하니?”

무엇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학우들 앞에서 혼나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그래 뭐든 처음이니까 혼날 수는 있는데 자존심이 상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김미경 강사가 유튜브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뭐든 처음 하면 꼴찌죠. 꼴찌는 디폴트다.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동기들은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내용을 한 번 딱 보고는 그대로 잘 따라 하는데 반해 난 여러 번을 봐도 습득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그때 동기들은 나에게 말했다.

“요즘 세상에도 아직도 그런 교수님이 있단 말이야? 반을 바꿔달라고 말하면 안 되나? “

그리고 이윽고 빈 종이에 네 나름대로 교수님으로부터 겪은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조교님께 찾아갔다. 조교님에게 학과장님을 만나 뵙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친구로부터 또 다른 말을 듣게 되었다.


“일단, 교수님을 직접 뵙고 상담드리는 게 어때?”

조교님께 학과장님을 뵙게 해달라고 부탁드린 상황이고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일단 상대방이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해야겠다고 한 번은 정면돌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과장님께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 당사자인 교수님도 나도 곤란할 수 있으니 직접 당사자를 먼저 만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의 사정을 말했다.


“이 말을 지금이라도 해줘서 다행이네. 말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교수님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왜 나한테 따지러 왔냐고 물어봤을 거 같았는데, 공감을 해주시고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함을 느꼈다. 지옥 같았던 기본간호 실습은 이내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수업이 되었고,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날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달라진 점은 ‘예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에 보고 익히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미리 전날에 무엇을 배우는지 해당 교과목을 읽은 다음 관련 실습 내용을 유튜브 등을 통해 찾아보았다. 예습을 하고 간 덕분인지 나의 서툰 실습 능력은 나날이 나아졌고 교수님의 꾸지람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도 간호대학교 생활이 아직 적응된 건 아니었다. 치열한 학점으로부터 내가 살아남기 위한 도전 과제들은 아직 많이 남았다. 난생처음 받는 학점 앞에 간호학과에 온 것이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나의 성장하는 모습을 일 년 넘게 지켜봐 준 동기들과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고 편입학 동기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잘 버텨내 준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매년 10월마다 간호학과 입학을 위해 예비 신입생들이 정장을 입고 학교에 면접을 보러 온다. 나도 작년까지는 그 모습이었다. 면접장에서 각자가 준비해 온 면접 예상 질문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떤 면접자는 A4 3장 되는 분량을 다달이 외우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다. 그런 경쟁자들을 뚫고 내가 합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건대 ‘진심’이 전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면접 이후로 합격했다고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한 예비 지원자로부터 쪽지가 왔다. 돈을 드릴 테니 합격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답을 하지 않았다. 진심은 돈으로 주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돈 잘 버고 정년이 없다는 여자가 아이를 놓고도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이 어려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 간호대학을 선택하여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간호사가 된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간호사로 돈 벌 생각을 하기 전에 차라리 다른 직업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교를 졸업하여 취직을 한다는 보장이 없었다고 느낀 한 친구는 등록금 갈 돈으로 가게를 차리기도 했다. 간호사는 간호사이기 전에 의료인이다. 간호사가 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있는 분야를 좋아하고 지속한다면 자연스레 돈과 명예는 따라온다. 비록 난 마케팅을 홍보를 피엠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어떠한 희망을 꿈꾸지 못했기에 그만두었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애초에 난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분야에서 꿈과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는 찾았을 것이다.


목표와 희망 없이 일을 하던 간호조무사로서의 그때와

이전보다 환경이 어렵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목표와 희망을 내다보며 달리는 지금이 더 나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에타에 남긴 쪽지로부터 답장이 왔다.

“간조에서 간호면허 다려고 오셨다가 자퇴한 분을 봐서 2학년 2학기면 잘 버티고 계세요. 1학년 2학기 휴학했다가 복학 안 하시고 자퇴하셨는데,

진짜 잘 버티고 계신 거예요 익님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