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한살에 입학하게 된 간호학과
합격하셨는데,
등록하실 건지 여쭙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간호대 합격 전화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에도 이미 합격을 했었고, 최종 등록 여부에 관한 전화를 받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등록 포기를 하였다. 이후에도 간호학과 진학에 관한 미련이 남아 다시 지원하였다. 왜 자꾸 미련이 남고 뒤돌아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정신과 직원 2년 차 가 될 무렵 여전히 병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직원 모두 지쳐만 갔다. 실장님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직원들을 교육하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부담감이 커져만 갔다.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감내하며 알게 된 이런 실무들을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지난 시절 만들게 된 인수인계장 다시금 찾았다.
200페이지가 넘는 인수인계장에는 수정해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데스크에 직원이 늘어나고 원내 조제를 원외 조제로 바꾼 상황에서 더는 직원들이 약 조제에 대해 알 필요는 없었다. 삭제하고 수정할 내용이 있었기에 언제쯤 손을 봐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부장님은 내게 퇴사하기 전 다시 한번 인수인계장을 이제는 피피티가 아닌 워드로 만들어달라고 하셨다. 워드로 만들게 되면 해당 키워드 검색 기능을 활용하여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하나씩 다시금 텍스트로 인수인계장을 만들어나갔다.
팀장으로서 직원들과 함께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라는 말처럼 팀장의 자리는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신입 때처럼 사사건건 잔소리를 듣는 일은 이제는 없지만 고용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것이 또 다른 부담이었다. 고용주와 신입직원 중간 사이에서 기교 역할을 잘 해내야 하는데 보고 배울만한 선배가 없었기에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기껏해야 보고 배운 것이 있다면 실장님의 시기와 질투, 가시 같은 말들과 행동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배운 것의 전부였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서점으로 달려가 팀장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떻게 화법을 써야 하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근무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회사 물품을 찾게 되어 2층 사물함을 열어보던 그때 병원 경영 및 마케팅에 관한 서적을 보게 되었다. 책 제목을 머릿속에 암기해 둔 뒤 쉬는 시간에 해당 책을 검색하여 목차를 보았다. 피부과 실장이 실적을 올리고 직원을 관리하고, 병원 평판에 대해 관리하는 방법들이 적혀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내가 병원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싶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내가 병원으로 입사하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간호대학교에서 진학하게 된 명백한 이유다. 정신과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접수 외에는 어떠한 일도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의 일이었다. 공황 증상을 겪고 있던 환자로부터 전화가 왔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게 물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의사 선생님을 빨리 뵐 수 있도록 예약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시라도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어야만 하는 나의 무능력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고작 이런 사람이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그저 ‘예약했습니다 “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 하년이 무거웠다. 그리고 다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니다. 의료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이 있는데, 내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간호사가 최선이었다. 처방권을 갖고 실질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Cure를 하는 의사와는 달리 Care에 좀 더 집중된 간호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과 시간이 여유가 되지는 않지만 의사보다는 교육 기간이 길지 않기에 덜컥 입학원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등록 제의를 받게 되었다.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이제 앞으로 3년 후면 30대 후반을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 다시 간호대 진학을 꿈꾸고 미련을 갖게 될 거 같았다. 지금은 나 혼자만 신경을 쓰면 되지만 식솔들이 늘어나게 되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다시는 되돌리기 힘든 이 시간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택을 했다.
서른한 살에 간호대에 입학했다.
두 번째 대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교 때 하지 못했던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해외교환학생, 해외연수’였다. 이번 대학생활에서는 해외 연수를 가게 될 수 있을까.
정처 없이 맴돌던 ‘팀장’이라는 자리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 날이
바로 ‘서른한 살에 간호대’에 입학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