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인간관계는 간단해요
데일카네기를 읽어보세요
정신과 직원이 되어 정신과 의사 선생님 즉, 나의 상사로부터 듣게 된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은 이것이 전부였다. 집 책장 어디에선가 보던 익숙한 책이었다. 진지하게 읽어보지는 않았다. 장식용에 불과했던 이 책이 나의 인간관계 해법이었다니 허무했다. 뻔한 말 뻔한 사례들로 가득한 이 책이 과연 나에게 쓸모가 있는 것인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신과 실장님과 관계가 좋지 못했던 난 마지막 방법으로 인간관계 회복을 위해 책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의 지난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책과 난 정반대로 가고 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네가 지금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난날 나의 상사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반면교사 삼기도 했다.
카네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상대방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능력’이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 내게는 부족했다. 왜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저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말’이다. 입은 있지만 말은 할 줄 알지만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말’은 할 줄 몰랐던 난 모두에게 적을 만들고 있었다. 입에 발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일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맞았다. 결국, 이러한 내용들도 오래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카네기가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느껴졌다. 이 책에 대한 신뢰성은 ‘통계’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증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데일 카네기의 책이 오랫동안 읽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카네기가 그동안 겪어온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인간관계’를 하여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제안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나에게 진지한 의미로 다가오는 데에는 이십여 년이 넘게 흘러야 했다.
정신과 직원이 되어 가장 놀랐던 점은 나만 인간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했다. 더욱이 의사 선생님께서 인간관계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를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인간관계는 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분명 어려운 일임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대부분 이곳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많았다. 정작 가해자인 당사자는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현실이 암담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는 잘 읽히지 않아 책을 덮어 책장 구석진 곳에 넣어두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찾게 된 이 책에서 얻게 된 지혜들은 이제야 살아 움직이는 글이 된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말투와 행동부터 하나씩 고쳐나가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람은 익숙한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나 혼자서 노력한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대는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실장님에게 있어 난 이미 적이 되었다. 그녀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나 또한 그녀와 적이 되었다.
“너, 걷는 거 이상해, 왜 뒤뚱거려? “
나의 걷는 모습을 데스크에서 지켜보던 실장님은 환자가 없는 대기실에서 웃으며 말했다. 분명, 기분이 나빴다. 웃고는 있이지만 상대를 비하하는 듯한 말은 도를 넘어섰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3개월이 넘었으면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냐?”
EEG 뇌파검사 측정 기계에 오류가 있어 방문하게 된 기계 회사 팀장 앞에서도 나를 향한 면박은 끊이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졌고 화가 났다. 참을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로 입사한 직원에게 조차 나의 험담을 하고 편을 만들었다. 그것을 알게 된 때는 입사한 직원의 말과 태도였다.
“저한테 시키지 마세요. 저 나갈 거예요.”
병원 문 앞에 붙여져 있는 안내문을 떼야 된다고 말할 때, 신입직원은 이미 나에게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난 그녀가 입사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적이 되어 있었다. 말 한 번 나누지 없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의 ‘적’이 되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은 무엇인가요. 바람 잘날 없는 실장님으로 인해 직원이 수시로 바뀌었다고 말한 상사 앞에서 난 적극적으로 이야기했고 그러한 상황을 지켜본 원장님은 결국 실장을 내보냈다. 실장이 휩쓸고 간 자리는 나에게 인간관계에 깊은 상처를 냈다.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상처였고,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런 게 ‘태움’이라는 것일까.
병원은 원래 이런 걸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나와 동갑내기의 신입직원들이 들어왔고 나 또한 실장님과 같은 말을 쉽게 내뱉고 있었던 그때 깨닫게 되었다. 실장님도 처음 병원이라는 곳에 입사했을 때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서로 예민해져서 말이 함부로 오고 가다 보니 그렇게 사람을 만든 것이라고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었을 때 난 정규직을 그만두고 간호대로 입학하게 되었다. 고맙게도 나의 동료직원들은 그런 문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끊어내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이러한 태움의 고리를 끊고 잘 지내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쉽사리 발을 떼기 어려웠다. 다른 병원에서도 이러한 따스함을 느끼고 싶은데, 과연 네가 또 그러한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해외간호사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미국은 태움이 없겠지?‘
그리고 해외에는 태움이 없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