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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Nov 07. 2021

빡빡이가 좋아요

초등학생 딸의 유튜브 시청

*사진은 핀란드의 어린이 유투버 엘리나와 소피아


딸이 거실 TV로 유튜브를 보다 발각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휴대폰엔 Family link로 사용시간제한도 있고 키즈 유튜브만 볼 수 있어 그런지 거실 TV를 애용하는데. 문득 모르는 사람이 몰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거실을 보면 소리를 죽여놓고 유튜브를 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끄곤 한다.


한 번은 도대체 뭘 그리 보나 싶어 좋아하는 유투버가 누군지 물어봤다.

빡빠. 되게 친절해. 방송 시작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저는 빡빠입니다.'라고 해.
빡빡? 무슨 사람 이름이 그래? 본명은 아니겠네? 몇 살이야?

요상한 이름도 다 있네. 대머리인가?

2n살. 구독자가 천 명이나 돼.

나이는 20대 반. 구독자 수는 수십만 명이던데 아직 숫자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천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방송을 하는데?
게임 방송. 나 빡빠 방송 보면서 영어도 많이 늘었어.

못 보게 할까 봐 황급히 영어를 배웠노라고 덧붙인다.


너 빡빡이가 연락 와서 만나자고 하면 어쩔 거야?
어디서 만나면 되냐고 물어보지.

아이고야, 큰일 나겠다.


그럴 땐 엄마한테 먼저 얘기해야지. 그래야 엄마가 숨어서 몰래 지켜보지.
그리고 다 큰 성인 남자가 너같은 초등학생한테 만나자고 할 일이 뭐가 있니?
진짜 빡빡이가 아니고 빡빡이를 사칭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사칭까진 몰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로브롭스 모바일 게임에 빡에 숫자 붙인 아이디가 있라.

엄마, 빡빠는 여잔데.

아이가 보여주는 영상을 보니 머리 긴 여자가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별로 재미는 없다. 그것보단 탄산음료를 마시면서 게임을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어린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는데!

나 장래희망 바뀌었어. 유투버가 될 거야.


핀란드도 엘리나와 소피아처럼 유명힌 어린이 유투버들이 있다. 엘리나와 소피아는 책도 두 권 내고 투르쿠나 헬싱키 북페어에서 강의도 하고 쇼핑센터나 놀이공원 협찬 영상도 많이 찍었더랬지.


그런데 아이는 어느새 어린이 방송은 시시해졌는지 초등 중/고학년이면 성인 유투버들이 하는 게임 방송을 보고 있다. 로니백, 라코, 허발리스트... 이들 중 일부는 공중파에 진출하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네이버나 다음에 취업했단 친구들을 보면서 속으로 '포털 같은 곳은 갑자기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야후 코리아나 라이코스, 네티앙 같은 곳이 하루아침에 철수하거나 사라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고 눈에 보이는 공장과 근로자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IT서비스 분야는 해고가 언론의 화제가 되거나 재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을 거라고 잘못... 한참 잘못 생각했었다. 대학원 졸업하곤 자동차 업계에서 일했는데 계속 전기차로 기조가 바뀌는 걸 보면 자동차 내연기관 설계에 관련된 분들은 새로운 분야를 배워야 하겠구나 생각 들곤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부모가 알던 곳이 아니다. 내 눈엔 쓸데없고 시간낭비처럼 보이더라도 아이가 또래들만큼의 상식과 공감대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니 게임이든 영상이든 전면 금지하기보단 너무 많이 보지 읺도록 자제시키는 방법밖엔 없다.

너 그 동영상 끝날 때까지만 봐! 더는 안돼!

그래도 난 빡빡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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