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의 십자가
피니스테라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 중간에 마음을 두고 갈 수 있는 Cruz de Ferro 크루즈 데 페로, 즉 쇠의 십자가가 있다. 여기엔 집에서부터 돌을 들고 가 두고 오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십자가 기둥 주위로 돌산처럼 잔뜩 쌓아 올라와 있다.
Cruz de Ferro에 왜 돌을 두고 갈까
순례자들이 자신의 (마음의) 짐을 버리고 영적으로 갱신하겠다는 상징적 의미이다.
Cruz de Ferro 크루즈 데 페로엔 그리운 사람들로 보이는 사진들이 잔뜩 걸려있는 걸 보면 추억과 슬픔, 미련으로 버티는 기둥 같다. 나도 그곳에 어떤 걸 걸어두고 왔던 것 같던데 이젠 기억조차 안 난다. 결국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지나가는 고통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시간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때 나는 폴란드 소년과 걷고 있었다. 십자가 근처 그늘에서 쉬면서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나에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비스킷을 주었는데 또 그걸 눈물 콧물 흘리며 먹었던 웃픈 기억이 난다. 동행자가 없었다면 유달리 강했던 사나운 태양빛을 견디며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중간휴식 때 가방을 벗어던지고 소년의 돗자리에 앉아 힘들다고 소리쳤던 것도 떠올라 지금 이 글을 쓰며 웃고 있다.
그렇게 마음의 무게를 두고 간 뒤에 쇠 십자가 너머 El acebo 엘 아쎄보에 늦은 오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알베르게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조용히 빠져나와 주변 산책을 즐기다 자연을 마주한 십자가를 발견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거대하고도 찬란한 자연 앞에 압도될 때가 있는데 이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십자가 돌턱에 앉아 일몰의 빛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풍경에 심취해 있었다. 어느새 폴란드 소년도 옆에 앉아 둘이 대화를 나누며 자연을 바라보다가 산책하던 브라질 순례자 아저씨도 합류해 서로 인사하고 각자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고 소년은 무릎을 꿇고 명상을, 아저씨는 요가를 시작하였다. 눈을 뜨고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고요히 자리를 벗어나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가. 순례길을 걷다 보면 자연과 순수한 기운이 합쳐져 영적인 순간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서로 다른 일정으로 이 다음부터는 이들을 볼 수 없었지만 내 사진과 기억엔 각인되었다.
Curz de Ferro 크루즈 데 페로
위치 : 까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길에 위치상 2/3를 넘어서쯤 위치한다. Foncebadón 폰쎄바돈과 Manjarin 만하린 사이에 있다.
원래는 자신의 집 정원이나 뒤뜰에서 조그만 돌멩이를 가지고 가는건데 우리는 보통 정원이 없으니 집에 있거나 집 근처, 혹은 길 시작점에서 돌을 주워가도 된다.
그리고 그 돌을 크루즈 데 페로에 도착하면 마음의 짐과 함께 놓아두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다음 편 : 알베르게에서 혼자 자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