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되면 늘 꿈을 꾸었다. 병원 24의 막내작가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방송될 사례자를 찾는 거였다. 피디 7명과 작가 4명이 내게 교대로 찾아와, 아이템 뭐 없냐?라고 물으면 압박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막내 때 꾸던 꿈은 병원 24시 제작사가 있던 방송회관 지하 주차장에서였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무도 없는 주자창에 나 홀로 있으면 팀장님이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검지 손가락을 바짝 세워 내 이마를 밀며 주차장 구석까지 몰고 갔다. 아이템이 왜 없어? 왜 없냐고? 아이템 어딨어!라는 타박에 주차장 구석까지 몰리고야 잠에서 깼다.
역사스페셜의 변주인 한국사전을 만들 때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원고를 쓰고 있었다. 팀장님이 1톤 트럭을 운전하고 계시면 나는 그 옆을 뛰어가며 원고를 썼다. 한 장 한 장 써서 황급히 팀장님 트럭 차장에 넣었다. 트럭을 놓칠 까 봐 늘 죽어라 뛰는 꿈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벌거벗은 꿈을 꾸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나체가 되었다. 패닉이 되어 당황하다 꿈에서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방송이 나가기 전에는 화장실을 못 가는 꿈을 꾸었다. 방광이 터질 것 같아 화장실 문을 열면 화장실이 더러워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가장 난감한 점은 꿈속에서 꿈이라는 인지가 없는 것이었다. 현실로 느끼고 있다 보니 그 당황스러움과 수치스러움은 정말이지 괴로운 것이었다.
그러다 어떤 꿈을 꾸었다. 동네에 비가 많이 와 홍수가 났다. 마을이 물에 잠겨 나가 보았더니 맑은 물이 찰랑찰랑하니 너무 예뻤다. 도시는 텅 비어 사람이 없었고, 나는 옷을 벗고 수영을 했다. 시원하면서도 따듯한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꽤 멀리 가버렸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겁먹은 나는 들킬까 무서워 나오질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어떤 큰 사람이 나타났는데 역광이어서 누군지는 알아볼 수는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남자는 자신의 커다란 코트를 벗어서 나를 감쌌다. 몸을 숙여 나를 두 팔에 안고 물에서 건져냈다. 벗은 몸을 가린 나는 안도를 했고 그제야 남자가 누군지 보았다. 그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숱하게 꾸던 벌거벗은 꿈에서 처음으로 상황을 모면한 꿈이었다.
그 꿈에서 깨고 난 뒤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사귀는 때도 아니었고 각자 자신의 나라에 살며 연락 없이 지낼 때였는데도 잠에서 깨는 순간 알았다. 이 남자와 내가 결혼을 하겠구나. 몇 달 뒤 결혼 날짜를 잡았고 실제로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늘 같은 꿈을 꾸었다. KBS에 출근을 하면 내 책상이 없었다. 아니면 스텝들이 나만 빼고 회의실로 갔는데 회의실을 못 찾고 헤맸다. 일본에서 내내 꾸었던 꿈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별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다시 했더니 원고를 써야 하는데 노트북 전원을 꽂을 수 없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건 일을 쉬며 게으르게 지내고부터다. 요즘 꾸는 꿈은 기껏해야 자기 전 보았던 티브이 드라마 내용이다.
내게 꿈은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 미터. 아무 꿈도 꾸지 않는 요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다. 꿈꾸지 않는 요즘은 일상이 고요하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다시 꾸기 시작하겠지. 그렇다하더라도 잠시, 꿈꾸지 않을 휴지기가 내겐 필요 이상 소중하다. 일을 쉬는 요즘, 어쨌거나 행복한 건 사실. 일보단 내가 더 소중하니까. 내게 좋은 시간이 내게 좋은 거니까. 이 당연하고 간단한 걸 20년이 지나서 알았다. 그때 일찍 알았더라면, 이제는 망가진 건강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싶기도 하다.
왜 일을 할까. 왜 공부를 할까. 왜 승진을 할까. 다 행복하기 위해서다.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의 비중이 더 높아질 때는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숨 돌리고 나는 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잃고 건강을 잃고 세월을 잃고 난 뒤에는 늦었다. 꿈꾸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