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동네 사람들이 몹시 안타까워하는 일이 있었다. 덥고 덥던 8월의 더위, 숨 막히는 습도가 연일 계속되던 때였다. 몸집이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잔뜩 말아 넣고, 뙤약볕에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작업실에 앉아있으면 창밖으로 그 개가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아스팔트가 녹아버릴 것 같은 한여름의 대낮은 짐승의 맨발에 화상을 입히는데. 개는 마치 잃어버린 주인이라도 찾는 양, 간절한 표정으로 헉헉거리며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치만 몸을 피하는 짐승을, 경찰 한 사람이 잡을 수는 없었다. 나도 물과 사료를 수 차례 강아지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두었고, 행인들은 손에 들고 있던 소시지, 음료수, 과자를 주었다. 차를 멈추고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려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곧 죽을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강아지는 늘 사람을 피했고 두려운 얼굴로 도망을 갔다. 한 번도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지 않았다.
동네 젊은이들에게 그 개는 늘 화젯거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개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동물보호소라도 보내면 좋을 텐데, 도대체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엔 호젓한 골목이 하나 있다. 큰 저택이 있고, 검은색의 비싼 세단과 기사님이 늘 대기하고 있는 집이다. 언젠가 모나와 산책을 하는데 큰 소리가 나길래 보았더니 60대 아저씨 두 분이 그 집 앞에서 싸우고 있었다. 고성을 고래고래 질러가며 밀치고 위협하는 쪽은 저택의 주인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간단했다. 저택의 나무가 자라서 옆집 창문에 닿고 있고, 그 굵은 가지는 태풍이 오면 분명히 옆 집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저택 주인은 내가 어련히 알아서 가지치기를 할 텐데 왜 지랄이냐고 소리를 질렀고 옆집 아저씨는 작년에도 같은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피해자인데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찰까지 왔지만 소동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모나와 나는 경찰이 왔으니 적어도 옆집 아저씨가 맞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사고가 나면 증인이 되려고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모나와 또 산책을 하던 어느 날, 기사님은 그날도 차를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그 강아지가! 골목에 나타나더니 그 집 차고로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놀라서 차고 문을 열어준 기사님께 물었다. 저 강아지가 이 집 개냐고. 기사님은 맞다고 했다. 차고 문이 열리면 잽싸게 도망을 갔다가 돌연 휙 하고 돌아온다고 했다. 얼마나 동네 사람들이 걱정했는지 몰라요, 파출소에 신고 한 사람도 있고, 잡으려고 엄청 쫓아다닌 사람도 있었어요. 기사님은 시큰둥했다. 원래 저러는 걸.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뭐에 감사하는지도 명확지 않았지만 일단 감사를 표하고 동네 카페로 뛰었다. 그 강아지, 집이 있어요! 그 부잣집 강아지예요! 사람들은 진심으로 기뻐했고 대단히 안심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았고 다시 염려가 고개를 들었다. 근데 왜 그렇게 꼬리를 말고 다니지? 왜 사람에게 안 오지? 집주인이 학대를 하나? 그 아저씨가 때리는 거 아냐? 밥도 안 주고 어둡고 답답한 차고에 평생 가둬둔 거 아냐? 어쨌든 무수한 추측과 염려를 남긴 채 강아지일은 끝이 났구나, 싶었다.
어제 오후, 강아지 짖는 소리가 크게 났다. 가서 보니 그 강아지가 대문 안에서 행인을 향해 열심히 짖고 있었다. 어머 너 집을 지키는 거니? 슬금슬금 강아지에게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늘 도망만 가던 애가 대문 철대 사이로 코를 내밀었다. 긁어달라고? 설마 싶어 손을 내밀었는데 강아지는 내 손길을 반겼다. 학대의 경험이 있는 강아지는 (사람처럼) 사람의 팔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강아지는 내 손을 지긋이 보며 눈으로 말했다. "어서 만지시지." 어이가 없네. 아니 그간 네가 보였던 그 모습은 뭐란 말이니. 그때 또 기사님이 나타나셨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기사님 왈, 저거? 꽃님이. 오래 살았어. 저거라는 명칭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름이 꽃님이라니! 귀여운 암컷 강아지 꽃님이라니! 집에 가려고 손을 거두면 꽃님이가 응 아니야, 하면서 몸 여기저기를 만지라고 했다. 결국 꽃님이를 한참 동안 마사지해드리고 집에 왔다.
꽃님이의 행동은 어쩜 그렇게 다를까? 생각 보니 차이점은 대문이 아닐까, 싶었다. 대문이 나와 꽃님이 사이에 있으므로. 대문이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심한 것이 아닐까. 기댈 곳이 있어서. 숨을 곳이 있어서. 대문이 있으면 두려운 대상은 안심할 수 있는 상대가 된다.
마음이 평안할 때와 혼란할 때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혹자는 취약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야말로 그의 본성이며 인간의 한계라고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지성, 이성, 예의, 지식 그런 것들이 없는 자리엔 생존을 위한 본능만 욕구만 남겠지.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는 성현과 위인, 모성애 등등에 위로를 받으며, 인간이 그렇게 까지 추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고 믿으며 의미를 더한다.
쨌든, 대문은 필요하다는 거다. 그럴듯한 대문 말고 진짜 대문. 보기에만 멋있고 튼튼해 보이는 거 말고, 아무리 힘센 사람이 와도 이 대문을 넘어올 수는 없다는 절대적 믿음을 주는 대문.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종교가 되기도 하고 돈이 되기도 하며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나는 그 대문을 가지고 있나? 그 대문의 위력을 믿고 있나? 어제는 흔들리고 오늘은 괜찮았다가, 내일은 또 흔들리는, 종잇장 대문을 가지고 있진 않나?
당분간 꽃님이를 예의주시 하겠지만 전보다는 훨씬 마음을 놓았다. 대문 안에서 꽃님이가 행복해한다는 걸 확신하면 그때는 꽃님이에 대한 염려를 완전히 거두어야지. 그러고 보면 꽃님이가 그간 웃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니들이 뭘 알아? 내겐 대문이 있다구 완전 터프한 아빠도 있다구 이 똥멍충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