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갖고 돈을 벌 수 없을까
암호화폐 토큰을 발행해 돈을 벌려면
양심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할까
당분간 양심을 접으라고?
블록체인 가스비를 줄일 수 있다고? 그거 반갑고 귀가 솔깃하다. 속물이라 욕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달콤하다. 후배의 목소리가 5월 말의 아침 공기만큼이나 상쾌하게 들린다. 후배에게 빨리 이야기하라고 채근했다.
후배는 진지하다 못해 근엄한 얼굴로 묻는다. "형님, 진짜 청정 공기 발생기를 만들어 팔 겁니까?" 후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바람에 순간 멈칫했다. 나도 그걸 고민하던 터라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더 이상 회피할 수도 없고, 이 문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순간이다.
"글쎄, 그게 가능할까?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야. 청정 공기 발생기를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생산 시설도 없어. 설혹 우리가 만든다고 해도 이미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했잖아. 그걸 어떻게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했다.
"형님, 바로 그겁니다. 이미 대기업이 진출한 시장이라, 우리가 진입한다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자금도 부족하고, 기술도 없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코인 판매가 잘 되어 자본금을 두둑이 모으면 그때 가서 생산을 고려해 볼 수는 있어요."
후배가 무심한 표정으로 설명한다. 사업 계획을 짤 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는 후배의 신랄한 이야기가 오히려 후련하다. 속이야 쓰리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돈 없고, 기술도 없는 우리가 청정 공기 사업을 하겠다며 암호화폐를 파는 것이 맞는지 헷갈려. 자네가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답을 기다리는 거야. 빨리 그 말을 들려주게." 후배를 재촉하자, 그는 정색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형님, 우리가 천연 공기 발생기를 만들지 않으면 어떨까요? 아니, 전혀 만들지 않으면 신경 쓰이겠죠. 만들긴 하지만 대충 구색만 갖추자는 거죠. 나중에 돈이 많이 모이면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이 말을 들은 나는 혼란스럽다. "아니, 그게 가능할까? 우리 비즈니스 모델이 그건데, 그걸 하지 않으면서 암호화폐만 팔아도 되냐?" 나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후배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금부터 우리 사업계획서, 흔히 말하는 백서를 작성해야 한다. 백서 안에다 우리 회사가 청정 공기 기술 우수 업체라는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좋다. 지금 우리가 그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기술을 사거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영입하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난 후, 공공 기관으로부터 우수 기술 업체라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건 맨입으로 할 수 없고, 담당자한테 따로 로비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든 사업이 그렇지만,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천연 공기 발생기 판매와 공기 청정도 데이터 사업을 계획해도 사정이 있으면 못 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 코인이 잘 팔려 돈을 많이 모으면 계획대로 사업을 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업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지만, 원래 비즈니스는 그렇다면서 나를 위안해 준다. 당분간 양심을 꺼내 냉장고에 보관하는 객쩍은 농담을 던지는 후배를 보니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가 천연 공기 발생기를 팔지 않으면 데이터 거래도 없다.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만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동 거래 명세서(스마트 콘트랙트)를 생성할 일이 없고, 자연히 거래 횟수(트랜잭션)가 발생하지 않는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그건 우리가 대여한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가동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된다.
"형님 집 보일러가 개별난방이라고 했죠? 만일 가족이 일주일 여행을 간다고 하면 스위치를 외출 상태로 바꾸죠? 그 기간 가스비가 크게 줄겠죠?" 후배가 설명하는 대로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스비야 당연히 줄어든다. 그 원리를 우리 사업에 적용하자는 말입니다. 알 듯 말 듯 한 후배의 말에 당황스럽다.
"그럼, 토큰만 발행하고 실제로 사업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인가?"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보며 후배는 "그렇죠. 천연 공기 청정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코인을 발행한다고 하면 됩니다. 물론 돈이 많이 들어오면 까짓 전문가를 고용해 실제 사업을 할 수도 있고요."
그게 가능할까? 솔직히 양심에 찔리긴 하다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후배의 말에 동의한다. 후배의 설명은 이렇다. 먼저 발행 토큰 수를 줄이면 당연히 토큰 거래량도 준다. 또 천연 공기 발생기를 적게 판매할수록 공기 청정도 데이터를 거래하는 횟수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대여한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활동할 일이 적어진다. 마치 보일러를 외출 상태로 돌린 것과 같은 원리다. 극단적으로 암호화폐만 발행하고, 네트워크 활동을 줄이면 이더리움 가스비를 몇백만 원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막 코인 거래소가 생겨나기 때문에 일이 쉬워요. 암호화폐 시장의 태동기라 지금은 코인 발행하고 등록하기가 편하죠. 거래소도 한두 개가 아니라 서로 코인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 그렇구나. 솔직히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다들 그렇게 하는데"
사업을 수행할 계획이 확실치 않아도 암호화폐 발행이 가능하다는 데 놀랐다. 도대체 코인 거래소에 상장해 매매하는 토큰 가운데 제대로 블록체인 사업을 실행하는 코인이 몇 개나 될까? 개중에는 분명 앞으로 발전 잠재력을 가진 블록체인 사업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업의 코인은 사두면 나중에 큰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코인 거래소에는 한몫 챙기려는 코인도 많다. 이제 우리도 그 복마전으로 들어간다. 당분간 눈을 질끈 감고, 양심을 접어 두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