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서 학교가 있는 인천까지 두 시간도 더 걸렸다. 오늘은 비가 와 시간이 더 걸렸다. 평소 5시 30분이면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부지런하다. 그 시간이면 차들은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고 인천에 도착할 때면 벌써 러시아워에 가깝다. 시간을 더 당겨서 5시에 출발해야 인천에 도착해도 그나마 나을 법하다.
관리사무소에 들러야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 5시 출발이 9시 30분으로 늦춰졌다. 모든 일이 늘 계획대로 될 수 없는 법이다. 동탄에서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가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굵어진다. 이윽고 폭우가 쏟아진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도로 위에 고인 물웅덩이를 지나는 순간, 차가 휘청한다. 바퀴가 헛도는 찰나의 수막현상에 핸들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반대편 차선의 대형 버스가 튀기는 물보라가 쓰나미처럼 중앙분리대를 넘어온다. 물보라가 차장을 덮치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다. 찰나의 순간 시야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 간담이 서늘하다. 원래 운전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이때가 곤혹스럽다. 눈을 부릅뜨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와이퍼 넘어 전방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럴 때는 엉금엉금 기는 게 안전에는 최고다.
폭우는 내리고 풍경은 어둡다. 이런 날은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을 듣는다. 휘몰아치는 바이올린 선율이 이런 날씨와 너무 잘 어울린다.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은 강렬하고 드라마틱하다. 격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부분으로, 여름의 폭풍우를 연상케 한다. 빠른 템포와 극적인 음향과 긴장감, 그리고 스릴을 주고,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을 느끼게 해 준다.
바이올린 솔로는 휘몰아치듯 빠르고 긴박하게 연주된다. 거친 바람과 비, 천둥을 표현한다. 반복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선율은 불안과 초조함을 고조시키고,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이 차 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격렬한 바이올린 소리가 빗줄기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짧지만, 강렬한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 터널을 벗어나자, 비가 서서히 그친다. 시커먼 먹구름이 건너편 구릉에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먹장구름은 하늘을 채웠다. 사방은 어둡고, 고속도로 맞은편 산그림자는 아득하다. 집들이 점점이 이어진 언덕 위로 구름은 여전히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 있다.
비 그치고, 풍경이 차분하게 바뀌면 몬티의 "차르다시"를 듣는다. 이 곡은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했다. 천재 연주가 고소현의 음악도 훌륭하고 해외 연주자들의 것도 각자의 매력이 넘친다. 헝가리의 민속 춤곡 형식인 차르다시는 서정적이고 감미롭게 시작했다가 점차 빠르고 열정적인 리듬으로 전환된다. 어느새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빠르고 현란한 바이올린 연주가 감정을 폭발시킨다.
폭우를 뚫고 학교에 도착하니 2시간이 넘었다. 그래도 좋다. 풍경 변화도 좋고, 먹장구름이 드리워진 하늘도 싫지 않다. 가끔은 좀 시간이 걸리고, 더디면 어떤가. 이 순간 스피커에서는 첼리스트 하우즈(Hauser)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있고, 우울한 하늘이 있고, 쇼스타코비치는 몽환적이다.
올 때는 클래식을 들었지만, 갈 때는 비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이승훈의 "비 오는 거리“를 들으면 좋겠다. 비발디가 폭풍우 속에서 나를 달리게 했다면, 차르다시가 그랬듯이 이승훈의 노래는 빗소리와 함께 나를 차분히 감쌀 것이다. 그때는 고요하게 비 오는 거리를 달려갈 것이다.
누군가 ”세상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지는 것이다."하고 했다. 그 또한 좋은 말이다. 때로는 살아지는 세상도 나쁘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