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좋아서 고립을 택할 때
고독을 즐길 수 있어
사람들 속의 의도치 않는 은둔형 고립은
외로움에 떨게 해
사례 1 : 경쟁 상대의 배경에 밀린 은둔형 외톨이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불공정한 룰(rule)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경우가 있어. 분명 실력은 더 나은데. 경쟁 상대의 ‘배경’이 더 좋아서 탈락했다면 이해가 돼? 그것도 대입에 중요한 스펙이 되는 경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 이건 중앙선데이(2023.08.12.) 심층기획 기사 내용을 인용할게.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까지 오직 육상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한길을 걸어온 청년이 있어. 그녀가 공정한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가 공정하지 않은 부모의 배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 그동안 뒷바라지로 고생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어. 그래서 그녀는 코로나 시간 은둔에 돌입했다고 해. 스스로 공간적·정서적 고립을 선택한 거야.
왜 우리는 고립하고 은둔할까? 개인의 성격 탓만으로 치부하기엔 문제가 많아. 기사에 나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주장을 재인용할게. 보사연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원인으로 연이은 취업 실패가 35%, 인간관계의 어려움 10%, 학업 중단 7.9% 순서라고 해. 특이한 것은 은둔청년은 혼자 사는 가구(29.1%)보다 가족과 같이 거주하는 형태(66.2%)가 두 배나 더 높아. 이들 은둔 청년의 대부분은 사회적 강요에 따른 심리적 고립을 선택한 거야. 그건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의 문제야.
사례 2 : 엄마가 만든 은둔형 외톨이
얼핏 생각하면 가족이 없는 은둔형 외톨이가 더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이야.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청년의 케이스가 있어. 이 내용도 중앙선데이의 기사를 인용했어. 그는 엄마가 신청한 학원 강의는 무조건 다 들어야 했데. 성적이 떨어지면 그 강도는 심해졌지. 항변하고 싶었지만 말할 새도 업었다고 하네. 그는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점차 방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지냈어.
전문가는 은둔청년의 상당수는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해. 아이가 스스로 뭘 할 수 있도록 격려하지 않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학원 수강 등의 여러 장치로 아이를 옥죄는 거지. 그걸로 부모의 역할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성적만 가지고 아이를 닦달하는 게 문제라는 거야. 부모는 자녀와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고 버럭 화부터 내니까 아이는 점차 무기력해져.
점차 아이는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낙담하고 말문을 닫아버려. 그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지. 입과 방문이라는 두 개의 대화 창구가 사라졌어. 아이는 부모와 정서적 단절할 뿐만 아닐 공간적으로도 단절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거야. 그는 재충전을 위한 공간적 고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의 심리적 고립을 선택했어.
고독과 외로움에 떠는 아이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알고 있니? 어째 뜻이 비슷한 것 같지만, 둘 다 사람의 혼자라는 상태를 나타내지만, 감정적 홀로임과 공간적 홀로임에서 차이가 뚜렷해. 무슨 말인지 헛갈릴 거야. 지금부터 고독과 외로움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할게.
고독(Solitude)은 사람들과 접촉이 없이 외부와 차단된 상태를 말해. 물리적이고 공간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뜻하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다른 사람과 떨어져 혼자 있는 경우가 있긴 해. 어떤 사람은 의도적으로 고립하여 혼자 있는 고독을 선택해. 명상과 성찰 혹은 창작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경우를 말해.
혼자 있음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고독은 긍정적이야. 사람들은 가끔 혼자 있는 게 좋을 때가 있잖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도 고독을 즐기는 방법이야. 그것도 몇 주 혹은 몇 달을 그럴 수도 있어. 도시의 소음이나 사람들의 번잡함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있는 것을 즐기는 거지. 그렇다고 그 시간이 너무 오래가면 사회적 감각이 떨어져 썩 좋은 일은 아니야.
고독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많아. 그중에서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어. 그는 반명주의적 성향이 강했어. 당시 미국이 한참 산업화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었지. 그는 그런 문명의 힘을 빌지 않고, 자연이 주는 대로 살기 위해 혼자 숲으로 들어갔어. 그는 1845년에서 1847년까지 사회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고독을 찾았지. 그는 월든 숲에서 사람들과 절연한 채 혼자 살았어.
철저히 검소하게 생활했어. 최소한의 소비 활동만 하고, 오직 고독을 직시하며 숲속 생활을 기록했어. 그는 미국 수필 문화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월든- 숲속의 생활』(Walden, 1854년)을 남겼어. 소로우는 스스로 고립하고 고독을 찾아 깊은 숲으로 들어갔어. 그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고독을 제대로 즐겼어.
외로운 군중
보통 사람들은 고독을 찾아 스스로 고립할 엄두가 나지 않아. 거꾸로 끊임없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산악회, 조기 축구회, 낚시회, 골프 동호회 등 모임이 많기도 해. 그 모임에 들어가지 않으면 고립감을 느끼고 외로워해. 여러 사람과 함께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하지.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외롭지 않으면 다행이야. 문제는 여러 사람 속에 있어도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울 때야.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여러 사람 속에 있어도 느끼는 심리적 홀로인 상태를 뜻하지. 외로움은 사회적 또는 정서적 연결의 부재나 미흡함을 느끼는 감정이야.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고, 아무 대가 없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도 되지. 외로움은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져. 너무 오래 그것도 심하게 외로움을 타면 몸에도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커.
현대인은 누구도 혼자라는 심리적 격리 상태인 외로움을 완전히 피할 수 없어. 그건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야.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이 쓴『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1950)이라는 책을 보면 알 거야. 현대인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지하는 외부지향형적인 성격이라, 또래나 친구집단의 영향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 그렇게 하다 보면 정작 자신은 사라지고 타인들만 남게 되지.
집단이나 모임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몸부림치는 게 현대인의 자화상이야. 외롭지 않으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려 하면 할수록 자기 내면에는 고립감으로 번민한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독한 군중이라는 말해. 책 제목을 빠꾸면 좋지 않을까.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 아니라 『외로운 군중(The Lonely Crowd)』으로 그렇게 말이야.
위에서 소개한 두 사례는 스스로 물리적 고립을 택했지만, 그것은 재충전을 위한 게 아니야. 심리적 외로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립을 택했어. 고독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거야. 고독은 에너지를 집중하고, 성찰과 명상을 즐기지만, 은둔형 외톨이는 그렇지 않아. 그저 외로워 혼자 방 안에 틀어박힌 거야. 종일 게임을 하거나 컴퓨터의 익명 속으로 숨어 들어가지. 아이들이 이런 세계에 빠져들면 방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은둔형 외톨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피하고, 혼자 생활하는 시간을 좋아해.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소극적이며, 감정 표현도 잘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특성이야. 또한, 은둔형 외톨이 아이는 문제나 고민을 남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여. 부모는 아이의 이런 성격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편안하게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해. 아이들이 항상 가족이 함께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부모가 있다면 아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