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38일 차
버클리의 하루
한국은 덥다고 하는데, 집에 있으면 서늘한 버클리는 16도. 햇빛 속에 걸으면 덥지만, 바다 바람 덕에 다시 서늘해진다.
카드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분실신고를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현금으로만 결제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가 남아 아침과 점심으로 끓여 먹고, 오후에는 버클리대를 방문했다. 두 번째라 그런지 한결 익숙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갔다. 커다란 나무와 시계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남편을 만났다.
메인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대리석으로 된 웅장한 내부는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았다. 벽도, 천장도, 조명도 모두 예술이었다. 방학이라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일반인도 들어가 공부할 수 있다고 한다. 막내에게 “일주일 동안 도서관 다녀보라”고 했더니 하루는 공부하러 와보겠다고 했다. 진열된 책은 자유롭게 꺼내볼 수 있었다. 딸은 학기 중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했다. 다만 점심이나 화장실을 갈 때는 짐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다고 했다. 잔디밭 여기저기에는 벤치가 많아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자고, 대화를 나누었다. 딸은 사위 도시락을 싸며 자기 것도 함께 준비해 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구내식당을 한번 가볼 걸 싶다.
남편은 “30년 전이라면 나도 이곳으로 유학 왔을 것 같다”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잔디밭은 공원처럼 자유로웠다. 운동하는 사람, 놀고 쉬는 사람, 작은 파티를 여는 사람, 심지어 썬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견학 중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고등학생 때 대학 견학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명문대 로고가 새겨진 메모장과 볼펜을 보물처럼 아끼던 모습이 선하다.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기프트숍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크고 작은 옷이 많았고, 심지어 개 옷도 다양했다. 신생아 옷과 턱받이도 진열되어 있었다. 문구류는 한쪽 구석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버클리대의 정식 명칭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약칭 UC 버클리이다. 1868년 설립된 캘리포니아 최초의 대학으로, 10개의 캠퍼스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을 바라보는 27㎢의 녹지 위에 세워졌으며,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있는 언덕까지 포함한다. 학교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샌프란시스코 풍경은 장관이다. 한 달 전, 버클리에 도착한 다음 날 사위 연구실 견학 신청으로 그 언덕에 올랐었는데, 노을 질 무렵의 풍경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퇴근하는 사위를 만나 잠시 쉬고, 저녁은 사위가 좋아한다는 오클랜드의 한인식당 ‘강남짜장’으로 갔다. 주차 중 휠이 살짝 긁혔는데, 남편이 걱정하자 딸과 사위는 “괜찮다”며 웃었다. 미국은 찌그러진 차를 그냥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한국처럼 차에 예민하지 않다고 했다. 식당은 픽업 손님도 많고 내부도 붐볐다. 짜장, 짬뽕, 치킨, 양념치킨을 시켰더니 만두가 서비스로 나왔다. 짜장과 짬뽕, 만두는 그저 그랬지만 치킨은 꽤 맛있었다.
식사 후에는 바닷물이 유입되는 오클랜드 호수, 레이크 메리트(Lake Merritt)에 들렀다. 여기저기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산책하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DJ 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리듬에 몸을 맡겼다. 치마를 입은 남자를 비롯해 몇몇은 전문 무용수처럼 보였다. 사위는 “DJ가 정말 잘한다”며, 버클리보다 오클랜드가 자유롭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수 주변에는 커다란 나무와 비틀린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오리, 거위, 이름 모를 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작은 섬들이 몇 개 있었는데 철새들의 쉼터라고 한다. 산책길 곳곳에는 새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레이크 메리트는 오클랜드의 보석이라 불린다. 도심 속에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호수이자, 가을철 이동하는 새들의 중요한 서식지라고 한다. 지난번 딸 부부가 이 근처 호텔에서 2박을 했을 때, 가로등마다 달린 전구들이 ‘빛의 목걸이’처럼 반짝였다고 했다.
어둑해지자 사람들의 흥이 더해지는 듯했다. 사위는 “밤에는 위험하니 그만 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홈리스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이 보였다.
막내가 콜라를 마시고 싶다 하여 마켓에 들렀는데, 그 큰 마켓에 콜라도 사이다도 없었다. 웰빙 제품만 파는 자연드림 같은 곳이라고 했다.
오늘도 오전에는 쉬고, 오후에는 알찬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