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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May 15. 2022

[서평] 코 끝의 언어

세상 강렬한 냄새를 글로 읽어보는 신기한 분석기, 체취로 우리는 추적당할

코 끝의 언어 : 세상 강렬한 냄새를 글로 읽어보는 신기한 분석기, 체취로 우리는 추적당할 수 있을까?


냄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소설 한 편이 끝장을 냈다.

쥐스킨트의 “향수”는 읽은 지 오래되었어도 소설 제목처럼 코 끝에 매달려 냄새라는 주제에 대한 기억서랍 속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인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했던 영화도 엔딩 씬 장관이 소설에 대한 향기를 한층 강하게 더해주고 있다.


냄새라는 감각은 저자가 서두에 밑줄 그어 놓은 바와 같이,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 느낄 수 있고 보존하거나 원거리로 보낼 수 없는 감각이다. 

어느 단편영화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액체의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기가 등장하지만, 냄새는 이 마저도 불가능한 특성이다. 완전 밀봉된 상태로 냄새를 멀리 보내거나 압축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미래에는 발명될 수 있을까?


냄새는 개인적인 취향차이도 유별나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냄새도 있지만 때로는 특정한 악취를 좋아하는 몇몇 부류도 있고, 참을 수 없는 지독함이 가득한 냄새인데 그게 또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어릴 적 소독차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닐 때, 뿌연 연기와 평상시 맡을 수 없는 냄새에 빠져 아이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추격전을 벌였다. 연관시켜보면 무관하지 않다.


저자가 좋아하는 냄새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비 내리고 흙 위로 솟아나는 향기는 향수로 만들어 질 만큼, 독특한 정서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보편성도 지니고 있지만, 과학적 원리로 다양한 냄새의 근원과 널리 퍼져 나가게 만드는 물방울의 원리까지 설명을 듣게 되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소중한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끌리는 것처럼.


냄새가 퍼지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과정은 과학적 돋보기를 들여다봐도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형태의 분자들이 공기의 밀도를 따라 흔들리다가 콧 속으로 들어가 수용체에 접합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다.


냄새를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은 가능할까?

대형마트 과일 매장에 들르면 형형색색의 빛깔만큼이나 저마다의 당도를 뽐내는 상품들을 사고 싶게 만드는 욕구가 들어야 하는데 의외로 몇 가지만 그런 작용을 해낸다.


 저자는 51가지 향에 대한 과학적이고 감정적인 글로 독자에게 흡입력 있는 냄새로 꽉 찬 방 안에서 코를 벌름거리게 만드는 자극을 일으킨다.

꽃과 허브, 달콤함, 감칠맛, 흙, 수지, 쿰쿰함, 얼얼하게 톡 쏨, 짭짤하고 고소함, 상큼함, 신비로움.

냄새의 저마다의 특성을 재주 많은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꽤나 어려울 텐데 작가는 능숙하게 분류부터 멋들어지게 해냈다.

평생 맡아보지 않은 냄새들 연상하게 하는 기가 막힌 글솜씨에는 비유와 비교를 적절히 활용하여 이미지 연상 같은 마법을 향에도 적용시킨다.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향을 소개해보자.


바닐라향은 아이스크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예전에는 딸기 맛이나 초콜릿 맛이 듬뿍 들은 제품을 선택했지만, 요즘은 마트에서 하겐다스 세일할 때 바닐라 아니면 녹차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바닐라는 향의 시작점을 점유하고 있어 여기에 초콜릿을 섞어 먹는 방식이 초창기에 유럽에 전파되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향을 맡는 대부분의 가공식품 바닐라향은 원래의 냄새와는 다르다.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저렴한 상품에는 인공 바닐라가 쓰인다. 고급 아이스크림인 경우에는 원래의 바닐라 색이 검정 알이 박혀 있는 형태가 인기라고 하니 기회가 되면 진짜의 향과 맛을 음미해 봐야겠다.


두리안 냄새는 꽤 자극적인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도대체 이런 과일을 왜 먹는거지? 입에 과육을 가져가면서도 끝없는 궁금증이 반복되었고 기괴한 모양에 딱 맞는 향은 다시는 조우하지 않기를 맹세했다.

요즘도 마트 냉동고에 음흉한 손짓을 하는 두리안은 동남아에서는 과일의 왕으로 대우받고 있고 저자도 첫인상의 끔찍한 기억을 밀어내고 매력적인 과일로 묘사한다.

연인의 냄새에 우리가 왜 본능적으로 끌리느냐에 대한 분석은 생활에 매우 밀접한 냄새인 데도 깨닫지 못했던 친밀성이 녹아 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아기 냄새도 아마 가족이라는 안락함을 기반으로 사람의 감정을 차분하게 때로는 흥분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작용이 있으리라.

냄새로 사람을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동독에서 체취 데이터베이스 만드는 실험도 한 모양인데, 지문이나 홍채가 아닌 체취로 사람을 인식한다면 보안문제는 확실하게 해결할 거 같긴 하다. 조지 오웰이 두려워하던 완전 통제 사회도 가능해지겠지만.

피부 상태가 안 좋아 스마트폰 지문인식에 잘 안 먹히는데, 냄새로 잠금 화면이 풀리면 어떨까 공상을 해본다. 입이나 겨드랑이 냄새는 확실하게 센서가 작동하지 않을까?


오래된 책 냄새는 예전에는 좋아했는데 요새는 새 책 냄새가 더 끌린다. 나이가 먹어가고 경험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바뀌니 냄새에 대한 취향도 변하는 것 같다. 변화가 마냥 좋지는 않다.


하나의 냄새가 우리 코를 자극하는 경로와 과학적 분석은 물론 향의 재료가 어떤 역사로 퍼져 나갔고, 재료의 종류나 재배지 등에 대한 잡학들을 읽어 나가면서 냄새에 숨겨진 보석 같은 문장들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책 읽기 여행이 된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길거리 커피숍에서 풍기던 구수한 콩 냄새를 맡기가 어려웠고, 지하철 여름의 꿉꿉한 냄새를 막을 수도 있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햇볕 강렬한 회사 근처 공원의 산책길에 들꽃 냄새가 조금은 강하게 느껴졌던 지난주였다. 냄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코를 더 벌름거리고 다니게 될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는 않을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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