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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Oct 24. 2021

'나' 사용법을 알게 된 여행

8개월간의 YOLO, 그래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내가 내게 선물한 약 8개월의 쉬는 시간, 그래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하필 특목고 입시가 한창이던 시절에 학생이었던 나는 내가 원해서인지, 친구들이 준비해서인지,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인지 목적도 모른 채 초등학생 때 벌써 입시생 신분이 되었다. 당장 눈앞의 목표만 향해 달리던 입시생 신분은 대학에 가서야 끝이 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 새 목표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당시에는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명확했고, 그러다 보니 목표(a.k.a 좋은 직장)를 세우는 것이 조금 더 쉬웠다. 그러니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수월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있는 직장에 몸을 담고 나서야 나는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입시생, 취준생이 아닌 온전한 나를. 그제야 각박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내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슬픈 것은  모습이 너무 익숙해져 무엇이 잘못된지도 몰랐다는 거다. 계속   없이 달리기만 했으니 알리가 있나. 마치 속사포랩을 하는  같았다.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멈출 수는 없어 얼굴 시뻘게지도록 가사는 계속 내뱉으면서.


누가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나 혼자 다 하는 줄 알았겠네.


나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진 사람치곤  너무나도 허점이 많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내가 외면했다. '이런  내가 아냐.' 라면서. 내가 나의 약점을 외면하고 보듬어주질 않았더니 약점은 더욱 몸집을 키웠다. '이래도  ? 이래도 무시할 거야?' 하며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무너졌다.


일단 나를 정의하고 있는 것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예를 들면 엄마 아빠가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 해내는 큰 딸이라던가, 막내답지 않게 일을 잘 해내는 AE라던가 하는 것들. 그래서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생판 낯선 나라 체코에 발을 디뎠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제야 나는 나를 마주할 용기가 났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새로운 곳에서 나를 마주했다. 각기 다른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만난 사람들은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여행을 통해 만난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인생의 자세를 배우기도 했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감동적인 풍경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사소한 습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게 행복을 주는 것과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다.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작용하고 굴러가는지 투명하게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나를 알고 나니 나를 대하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다. 지금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내가 이런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고, 그전엔 몰랐는데 이젠 그 원인을 알았으니 금세 기분이 다시 좋아질 수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오늘 내가 입은 옷이 너무 튀지는 않는지 자기 검열을 하지도 않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목표가 없는 시간을 보냈는데 나쁘지 않았다. 조급하게 하루를 보내기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누리는 것에 집중했다. 더 이상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항공사가 파산해 돌아갈 비행기가 사라져도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었고, 빙 둘러둘러 돌아가도 대세에 지장이 없었다. 조금 삐끗해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약간의 실수가 지구의 멸망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아이슬란드와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광활한 대자연 앞에 나는 정말 먼지 한 톨(어쩌면 그보다도 작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는 고작! 그것밖에! 안된다고! 그런데 왜 그렇게 실수에 집착하고 조급해하며 자책하는 말도 안 되는 삶을 살았을까.


물론 불안하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시간은 유한하고, 그 시간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알아가는 나는 돌아가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원인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으니 든든한 조력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지만 내겐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식견을 넓히는 것도 여행의 큰 장점이지만 이렇게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8개월 동안 정말 말 그대로 한 번뿐인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아봤고, 그 결과로 '나'를 얻었다. '나' 사용법도 함께.








나에게 프라하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 여유로워지고 싶다.


어떻게 더 여유로워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더 경계를 내려놓고 내 오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음식을 먹고, 그들만의 문화로 가득 찬 거리를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을 하며 분명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괜히 '인종차별'에 지레 겁먹어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이어폰을 낀 적도 있었고, 모든 끼니는 꼭 '완벽'하고 싶어 자기 전 다음날 갈 식당을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몇 시간이고 들여다봤다. 모든 계획을 완벽히 세우지 않았고, 분명 돌발상황도 많았지만 더 여유로울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후회 아닌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여유가 중요함을 느낀다. 내 마음에 새로운 감각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내가 이 순간을 얼마만큼 즐길 수 있는지가 판가름 난다. 그땐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에 대부분의 마음 공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 다시 가면 마음 공간을 좀 더 비워두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갈 마음의 준비는 모두 되었는데, 도대체 언제쯤 다시 이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부디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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