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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Oct 24. 2021

편견에 갇혀 친절함을 외면하지 말지어다

다합에서 느낀 글로벌 인정(人情)

우여곡절 다합에서의 프리다이빙 도전기가 3일 만에 끝나버리고 나는 다합에서 남은 5일의 시간을 알차게 즐길 방법을 고민했다.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기엔 통장이 조금 버거워했고, 다합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엔 다이빙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혼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결국 나는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부담과 강박을 내려놓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망고 스무디를 마시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 플랜을 세웠다.


바닷바람이 솔솔 부는 카페에서 가장 푹신한 소파를 찾아 앉아 유럽 여행 동안 다 읽었던 <라틴어 수업>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그냥 타고나서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프렌젤을 자동으로 할 줄 알아 조금 배가 아팠던 남자 친구(현 남편)의 끝나지 않은 다이빙 수업을 구경하기도 했다. 다합에 온 3일 동안 낮엔 다이빙, 밤엔 두드러기로 고생한 탓에 외면했던 밀린 일기도 썼다. 하지만 물놀이를 좋아'는' 하는 내가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다. 다행히도(?) 5월의 다합 바다는 아직 물이 차고 파도가 세서 다이빙 슈트 없이 들어가기엔 무리였는데, 알레르기 때문에 다이빙 슈트를 입을 수는 없으니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때마침 남자 친구도 수업이 없던 날이었는데 아침에 이미 다이빙을 하고 오신 선생님이 이제 막 아침을 먹고 오늘 뭘 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오늘은 슈트 없이 스노클링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집에 있는 스노클과 오리발을 써도 된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는 수영복과 수건을 챙겨 나왔다.


'이퀄라이징'이 힘들 뿐이지 물놀이에 대한 애정도와 자신감이 최고치를 찍었던 나는 얼마만의 물질이냐며 (고작 며칠 전까지 다이빙 자격증 따느라 바닷속에 들어가긴 했다) 엄청나게 들떠 바닷가로 가는 내내 쫑알쫑알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렇게 바닷가에 도착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짐을 풀고 장비를 챙겼는데, 머리끈을 집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단단히 묶지 않으면 스노클 안경에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쩍쩍 달라붙기 때문에 항상 휴대폰 케이스 안에 하나씩 여분의 머리끈을 넣어 놓고 다녔는데 하필이면 그날 집에 놓고 왔던 것이다. 내가 묵었던 선생님의 집은 바닷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라 다시 갔다 오기엔 많이 귀찮았고, 그냥 바닷가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하나 사기로 했다.



그때가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라마단 기간엔 식사를 하지 않는 이집트 사람들이 예민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외교부의 문자를 받을 정도로 라마다 기간엔 현지인들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 그런데 여기서 1차 난관, 집에 있는 캐리어 속엔 머리끈이 한가득이었기에 나는 머리끈 딱 한 개만 필요했는데 머리끈을 파는 모든 상점에서 다 머리끈 수십 개를 묶음으로 팔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상점 주인들에게 혹시 하나씩은 팔지 않으냐며 물어보는 것은 안 그래도 껄끄러운 말을 잘 못하는 나에겐 고역이었다. 그래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혹시 하나만 살 수 없느냐고 물어봤지만 거절의 연속이었다.


수확 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던 나를 보고 제일 먼저 들렀던 우리가 짐을 푼 카페 제일 앞에 있는 상점의 주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닷가에 들어서던 나의 모습을 봤었기에(카페에 들어가다 눈이 마주쳤었다) 풀이 죽은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내게 머리끈을 낱개로 팔겠다고 했다. 나는 땡큐를 남발하며 지갑을 열었다. 여기서 2차 난관, 이거 혹시 나한테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지갑에 있던 지폐가 하필 이집트에서 가장 큰 화폐 단위였다. 그러니까 음 예를 들면 100원짜리 머리끈 하나 사는데 10만 원짜리 수표를 들이미는 꼴. 하...


지갑을 들고 얼음이 된 내게 가게 주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내 상황을 설명하고 아무래도 오늘은 다이빙을 못하겠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쏘리' 하며 가게를 나서려던 나를 가게 주인은 또 한 번 불러 세웠다. 그리고 머리끈 하나를 건네며 그냥 가지라고 했다. '왓? 프리?'라고 눈을 땡그랗게 뜨는 나를 보며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프레젠트. 잇츠 프리'라고 말했다. 내가 폐를 끼친 건 아닐지 걱정되어 연신 사양했지만 그는 꾸역꾸역 내 손에 머리끈을 하나 쥐어주었다.



라마단 기간이니 현지인들과 마찰이 생길 일을 줄이고 신변에 조심하라는 외교부의 문자는  거짓부렁이었나? 어쩌면 눈이 부셔 찡그렸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고 머릿속에서 섣부른 결정을 내렸었던 내가 바보가  기분이었다. 물론 그들이 밥을  먹어서 신경이 거슬리고 짜증이   있지만 그로 인해 친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편견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모로코에서 편견에 갇혀 친절함을 외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다신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기로 다짐해놓고  다짐을 어긴  자신이 부끄러웠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이런 편견으로 내가 미처 못 보고 지나친 순간들도 많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속셈 없이 건넨 친절의 손길을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하고 거절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고. 생각보다 세상은 살만한데 세상은 각박하다며 내가 먼저 벽을 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여러모로 나를 가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베푸는 친절을 감사하게 받으면 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땐 내가 손길을 먼저 내밀면 된다. 가끔 그 친절 속에 날카로운 칼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내 손길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없으니 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처는 아문다. 그리고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따라 상처는 금방 아물 수도 있고 더 곪아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유난 떨며(?) 들어갔던 다합의 바다는 여전히 추웠고, 우리는 들어간 지 5분 만에 다시 물밖로 나왔다. 물놀이를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깨달음을 얻은 다합에서의 그날을 나는 아직도 곱씹는다. 약간 흐름이 거창해진 것 같은데 결론은 이집트에서 느낀 인정(人情)으로 이렇게 인생사의 이치를 배워버렸다. 배웠으니 실천을 해야 하는데 실천은 일단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행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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