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에서 배운 마인드 컨트롤
야속하게도 프라하에 봄이 와버렸다. 프라하에 봄이 온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로맨틱한 프라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프라하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다. 나는 한국에서 열리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매년 꼭 참석했는데 어쩌다 얼리버드 티켓을 구해버려 나의 여행은 갑자기 시한부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라인업이 굉장했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 한국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되어버렸다.) 뭐, 나의 통장 잔고도 얼추 바닥을 보이고 있긴 했다.
그렇게 그동안 정들었던 n번째 고향 프라하와 친구들을 떠나 이집트 다합으로 향했다. 언제 또 이렇게 해외여행을 길게 할 수 있을지 몰라 한국에 들어가기 전 다합에 들러 프리다이버 자격증을 따기로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웬 프리다이버 자격증이냐고? 보라카이 여행을 갔을 때 호핑투어를 하며 생애 첫 스노클링을 해봤는데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 꽤나 즐거웠다. 프리다이버 자격증도 온전히 스노클링을 좀 더 재미있게 즐겨보고 싶어서 따기로 했다. 뭐 나의 한계에 도전 이런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었고. 그래도 프라하의 봄을 즐길 시간을 줄여가며 마련한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기대를 양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다합에 도착했다.
다합엔 꽤 활발한 한국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 여행객들이 참 많이 거쳐가는 도시였는데, 대개는 잠깐 다이빙만 즐기러 왔다가 다합의 매력에 빠져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또 취소하곤 했다. 그래서 자격증이 있는 프로페셔널 한국인 다이버들이 많았고, 우리도 SNS에서 수소문해 한국인 선생님에게 다이빙을 배우게 되었다. 숙소도 선생님 집에서 합숙(?)하며 지내기로 했다.
다합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대폰 유심칩을 살 겸 동네 산책을 했는데, 왜 이곳이 여행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허허벌판에 집들이 띄엄띄엄 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앞에 다이빙하기 좋은 수심이 좀 되는 바다가 보였다. 바닷가엔 다이빙하다 지치면 쉬어갈 수 있는 밥집 겸 카페들도 쫙 펼쳐져 있었다. 밥값도 싸고, 한적한 이 동네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쉼표를 찍기에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다 2(AIDA)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려고 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필기시험도 봐야 하고, 숨 참기, 잠영, 잠수, 구조법까지 모두 다 익혀야 했다. 일단 다른 것들은 방법을 알면 어찌어찌해보겠는데, 일명 이퀄라이징이라 불리는 압력 평형이 쉽지 않았다. 물속으로 들어갈수록 수압이 세지기 때문에 이퀄라이징을 하지 않으면 고막이 파열될 수 있는데, 잠수를 하며 공기를 밀어 넣어 바깥 압력과 몸속의 압력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주어야 한다. 비행기를 타거나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귀가 먹먹해질 때 코를 풀거나 침을 삼키면 뻥 뚫리는 것도 일종의 이퀄라이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프리다이빙은 '프렌젤'이라는 이퀄라이징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와 이게 정말 관건이었다. 코와 입천장 뭐 어디에 힘을 주고 뭘 어떻게 하면 된다는데 난 죽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는데, 그 일주일 내내 단 한 번도 프렌젤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바닷속으로 깊게 잠수를 하며 들어가야 할 때도 귀가 아파 금방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곤 했다.
프렌젤뿐이랴. 이번엔 다이빙 슈트 재질이 몸에 안 맞았던지 온 허벅지에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왔는데 이게 엄청난 간지럼증도 유발했다.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도전해보던가, 빠르게 포기하고 다합에서의 남은 일정을 다른 스케줄로 채우거나. 결국 나는 다합에 온 이유였던 '프리다이빙 자격증 따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프리다이빙에 도전해보는 것만으로도 얻은 것이 많아 의외로 속상하지 않았다.
사실 자격증 시험의 거의 첫 단계인 2분 숨 참기는 거뜬하게 통과했었는데 나는 살면서 내가 이렇게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나의 물놀이는 차원이 달라졌다. 스노클이 빠지면 죽는 줄 알고 엄청 겁을 내 허우적거리며 바닷물만 더 먹던 내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된 것이다. '나 2분도 숨 참았던 사람이야. 스노클이 빠지면 잠시 숨을 참고 다시 끼면 되는 거야.'라며 꽤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물놀이는 좋아해도 구명조끼 없는 물놀이는 무서워하던 내가 파도가 잔잔하고 안전한 곳에서는 구명조끼 없이도 조금 더 자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꽤 큰 수확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내가 나를 다루는 법을 또 하나 배웠으니까 말이다.
위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평정심을 찾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던데, 이번 다이빙 도전 경험으로 나는 평정심을 배웠다. 어떤 위급 상황이 생겨도 내게는 2분이라는 보너스 시간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내가 여태껏 생각도 못했던 어떤 부분에서 나 꽤 멋진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공상도 조금 했다. 그렇게 비록 자격증 따는 것은 실패했지만, 나는 나 사용법 매뉴얼에 '물속에서 2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음'이라는 설명 한 줄을 더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을 긍정적인 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경험치도 조금은 쌓인 것 같다.
프리다이빙하러 프라하의 로맨틱한 봄을 즐길 시간을 줄이며 겨우 다합에서의 시간을 마련했는데,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니. 유럽살이를 시작하기 전의 나라면 마치 내 인생의 전부가 실패한 것처럼 자책하며 남은 여행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래도 좋아, 이 경험 덕분에 나는 또 다른 것을 배웠으니까. 나를 알게 되었으니까.'라며 내가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 몇 달의 시간 동안 나는 꽤나 성장했고, 꽤나 단단해졌구나 싶었다. 덕분에 허벅지의 두드러기와 이 빼고 까맣게 다 타버린 얼굴과 몸뚱아리를 하고도 나는 다합에 있는 남은 시간동안 실실 웃으며 다녔다. '오... 이런 생각하는 내 모습 좀 멋져'라는 자부심도 슬쩍 꺼내보며 말이다.
아 그리고 다이빙 자격증을 땄으면 나도 비행기표를 찢었을지도 모르는데, 프렌젤은 최소 몇 달을 연습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조금 더 빠르게 다합살이의 맘을 접을 수 있었다. 양면의 프렌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