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바르셀로나도 다른 유럽과 비슷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쉬워서 이곳에 며칠을 머물든 두어 시간 시간을 내어 동네를 둘러보는 것도 바로셀로나를 관광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된다.
바르셀로나엔 바르셀라노타라는 해변이 있다. 간단한 산책을 하기에도 좋고 이런 저런 액티비티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 나는 이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일반 자전거가 있었고, 전기자전거가 있었다. 전기자전거가 훨씬 더 잘 나갈 것 같아 대여료가 좀 더 비쌌지만 전기로 가는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아 다소 빠른 속도에 브레이크를 밟기 일쑤였지만 이내 곧 적응이 되어 이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속도로 바르셀라노타를 누비기 시작했다.
순수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짐에 갔을 때 기억이 났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운동을 하러 나와 트레이드 밀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며 느꼈던 그 해방감과 비슷한 기분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실컷 달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기분은 그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강하게 불던 바닷바람과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내 기분을 더 상쾌하게 만들었다.
이런 장소가 아니라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전거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충분히 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춘천은 서울만큼 복잡하지도, 차가 많지도 않은 곳이기에 시간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 그리고 심적 여유가 없었다.
결혼 전 나는 주말 아침에 아빠, 동생들과 함께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고 오곤 했다. 금요일까지 열심히 산 나에게 주말 아침에 주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한강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집에 오면 남아있는 힘이 하나도 없어 벌렁 드러눕게 되곤 했지만, 이 역시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으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게 자전거는 그런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쉬는 시간이란 아기가 자는 시간이다. 아기가 잘 때 가장 예뻐 보이는 것도 내가 쉴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이 안정되어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기가 잘 때 취할 수 있는 휴식은 다소 한정이 되어 있다. 언제 어느 때 아기가 잠에서 깰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아기 주변에서 쉬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즉, 아기가 잔다고 해서 자는 아기를 두고 내게 선물을 준다며 자전거를 타러 나갈 수는 없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엄마의 삶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기존에 갖고 있던 쉬는 시간과 쉬는 날에 대한 개념은 사라져버린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아기가 어릴 땐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일을 보고 있는데 아기가 문을 두드리며 울면 일종의 자괴감 마저 든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이 된다. 기약도 없이 말이다.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기가 언제 깰지 몰라 볼륨을 줄인 채 TV를 시청한다든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며 취하는 그런 휴식 시간 말고 금요일 오후 업무를 마치고 회사에서 나와 월요일에 회사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진 확실하게 확보되었던 그런 쉬는 시간 말이다. 자전거를 타는 게 어려워서 오늘 내가 느낀 이 해방감을 춘천에선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니라, 마음 놓고 취할 수 있는, 확실하게 확보된 쉬는 시간의 부재가 그 동안 날 힘들게 했던 것이다.
업무와 업무 사이 칼같이 구분되었던 휴식. 엄마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한 일의 능률이란 것은 절대 오를 수가 없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그 엄마에게도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이란 것이 필요한 이유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탄 것뿐인데 몸과 마음이 깃털만큼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