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이번 여행은 에어비앤비로 시작해 에어비앤비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나름의 문제도 있는 시스템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렇게 좋은 시스템이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내가 여행을 하는 한달 동안 호텔에서만 지내기로 했다면 아마 숙박비로 최소 30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했겠지. 물론 한인 민박이나 호스텔 등 다른 형태의 숙박을 이용했다면 그 정도의 예산은 들지 않았겠지만 그랬다면 예산이 낮아지는 대신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검색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예약할 수 있는 숙소의 형태가 달라진다. 가령 나와 같은 스타일의 사람일 경우 다인실이 불편하면 개인실을 선택하면 될 것이고, 욕실을 따로 사용하고 싶다면 그것 또한 검색 조건에 추가하면 된다. 언급한 조건 말고도 다양하게 선택이 가능한 옵션이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 인지만 확실히 안다면 맘에 들지 않는 숙소를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총 4개의 숙소를 구했고 이를 위해 지불한 금액은 한화로 6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4개의 숙소 모두 개인실이고 주방을 사용할 수 있으며 wifi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정도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최고의 숙박 시스템이라 칭찬할 만한 하지 않은가. 나아가 에어비앤비에선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여행 상품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상투적인 느낌의 기존의 관광 상품이 아닌, 상당히 독특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형태의 관광 상품을 제공 중이다. 나의 경우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선택한 데이 트립 (보통 3-4시간 정도 소요)에서 상당한 만족감을 느껴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안에 고딕 지구라는 곳이 있다. 아직 방문해보지 못한 곳이고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궁금한 지역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그곳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해당 지역을 함께 둘러 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데이 트립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데이 트립이 아니고서야 한국어 서비스가 제공될 일은 만무하기 때문에 여행을 주도하는 사람의 설명을 모두 다 알아 듣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사실 데이 트립의 진정한 묘미는 가이드의 설명을 알아 듣고 이해하는 것에 있지 않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외롭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게 된다. 당연히 외롭다. 그런데 간혹 그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인데, 나 같은 사람들은 외로움과 자유로움은 한 끗 차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외로움이란 것을 기꺼이 환영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애초에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최대 96시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누군가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찾아보면 그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참여하게 된 데이 트립은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고딕 지구를 둘러보며 가이드를 통해 설명을 들었던 부분도 좋았고, 설명 중간에 서로를 궁금해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데이 트립 마지막에 진행되었던 다 함께 한 잔하며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데이 트립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이 순간에 찾아왔다.
가이드 비앙카는 브라질 출신 건축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브라질로 계속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며 앞으로도 이곳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미네소타에서 온 간호사 안드레아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지 이틀째라고 하며 전날 피곤해서 24시간을 잤다고 했다. 깨어나보니 하루가 지나 있었지만 휴가 중인데 무엇이 문제겠냐며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코네티컷 출신의 제스 부부는 작년 8월에 결혼을 하고 뉴욕에서 살고 있는데 렌트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걱정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아기는 낳지 않을 예정이고 현재 키우고 있는 두 마리의 개와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인 내가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후 춘천으로 거처를 옮겨 남편과 함께 한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고 불규칙적으로 어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혼자 여행 중인데 해방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하니 안드레아가 이렇게 말했다.
“Don’t be. Be nice to yourself. You deserve this.”
좋은 분위기를 깰 까봐 눈물이 나올 뻔 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엄마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겪는 이 혼란을 다 알고 있고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관대해지라고 하는 말에 꽉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힘없이 풀어졌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큰 위로를 받았다. 이런 것은 예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비행기로 10시간도 넘게 가야 당도할 수 있는 나라에서 만난 외국 사람에게 이런 사적인 위로를 받을 생각을 미리 할 수 있겠는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받게 된 위로의 크기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위로의 크기가 큰 만큼 이를 통해 얻게 된 용기 또한 그 힘을 오래 유지하게 될 것이다. 여행의 힘은 이런 곳에서 차오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 만큼 많이 있다. 즐거운 일은 그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에너지로 다른 생각을 하며 내 생각을 쉽게 부정하려는 사람들을 가뿐하게 무시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날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어느 골목에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들을 한 번에 물리칠 수 있는 긍정적이면서도 끈끈한 에너지를 서로에게 퍼부으며 각자의 삶에 축복을 듬뿍 안겨주었다. 내가 발렌시아로 떠난 사이 안드레아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고, 제스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로서 우린 서로의 삶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의 좋았던 기억으로 서로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