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즐거운 엄마의 직장 이야기
해외여행인솔자가 되어 볼 요량으로 자격증을 땄으나 그 자격증은 인솔자가 아닌 '관광통역안내사'가 되는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서울의 어느 관광 명소에서 관광통역안내사로 일을 하는 중이다. 새로운 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바뀐 인생에 적응을 하느라 브런치에 이렇게 오랜 만에 오게 되었다.
1년전 오늘 즈음 해당 자격증과 그 당시 보유한 영어 성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던 중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알게 되어 지원을 했고 그렇게 또 다시 직업이란 것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5년 동안 다시 갖고 싶다고 노래를 했던 사원증을 그렇게 다시 얻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해 관광객이 원하는 관광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인데 그 관광객이 구사하는 언어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어로 질문을 하면 한국어로, 영어로 질문을 하면 영어로, 간혹 일본어 안내가 가능할때가 있는데 그땐 일본어로도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 하나 더. 내가 하는 일은 고정된 장소에서 그 장소안으로 들어오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장소를 옮기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관광객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찾아가는 관광 통역 안내 서비스라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지만 이 직업 안에서는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도움을 주게 될 지 알 수 없다. 대개는 비슷한 멘트로 비슷한 안내를 하게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여행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두 여성분이 지도를 살펴보시고 계시길래 도움이 필요한지를 여쭤보았더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고 하시며 지도에 체크된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현재 위치에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안내를 마치려고 하는데 안내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는 중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여정과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감명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 동안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듯 우린 어느 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었다. 이 인연이 안내가 끝남과 동시에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분들의 여행의 한 부분에 그리고 내 일상의 한 부분에 서로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 하나 생긴 것 아니겠나.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왔다. 그리고 이런 하루 하루가 내 인생의 어떤 한 부분을 채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니폼을 입고 밖에서 하는 일이다보니 의도치않게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되어 난처할 때가 종종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극히 사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안내나 통역과 관련된 질문이 아닌 다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땐 어떤 회의감 같은 것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지만, 어떤 직업이 만족만 할 수 있겠나 싶은 생각으로 진정해보려 노력한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나는 지금의 내 직업이 그저 고맙고 현재의 시간이 매우 즐겁다. 원래 있었던 능력에 애기 키우는 능력이 더해져 더욱 막강해진 나를 경력이 단절된 사람으로만 취급하며 직업 같은 것은 다시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해주어 고맙고, 일을 하며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좋은 경험을 쌓게 되는 지금이 즐겁다. 임신과 출산이란 경험은 엄마가 되는 사람에게 대단히 어려운 결정을 내리라고 종용한다. 아기도 키우고 스스로도 키우며 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며 원하지 않았던 오지랖을 펼치기도 한다. 모두가 하나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말고 다른 인생에 대해서는 잘 알수가 없을 텐데도 자기 인생의 예를 들면서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내 인생인데 자꾸 자기 인생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내 인생에 대해 잘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내 인생은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니 내가 알아서 꾸려가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5년 만에 다시 직업이란 것을 갖게 되었을 때 축하의 메세지 보다 걱정과 우려의 메세지를 더 많이 받았던 이유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알아서 잘 할 건데 왜 걱정을 하고 난리인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잘 굴러온 것을 보면 앞으로도 어떤 큰 문제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믿고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앞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엄마들이 정말 많을텐데, 내가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 생각이 확고하다면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언제까지나 나여야 한다. 태어났을 때 부터 그랬으니 결혼을 한 후에도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선택은 그 인생의 주인공들이 내리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도 그들이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이기 때문 아닌가. 이야기는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에 의해 흘러가게 되어있다. 내 인생의 이야기이니 내 선택에 의해 흘러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