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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17. 2024

가족의 의미

: 신흥반점 할머니

이혜란, 『우리 가족입니다』(보림, 2018)




신흥반점에 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다.



할머니가 아빠를 사랑했는지 묻는 딸에게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빠와 할머니는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아빠에게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와 아빠, 엄마, 딸, 아들과 함께 신흥반점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옷을 주워와서 솜씨 없는 바느질로 누더기 같이 만든 옷을 만들어 입으셨고, 자기 옷은 세탁기로 빨지 못하게 하셨다. 할머니는 식사 중에도 입에 넣은 음식물을 밥상 위에 뱉어내기도 하셨고, 방에 있는 요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옷장에 젓갈을 넣어놔서 생긴 구더기 때문에 다른 옷들이 망가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기도 했고, 누워 잠들기도 했다.



이렇게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다. 아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할머니가 택시비도 없으면서 아들 집을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흥반점 아빠와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돌봤다. 정신없이 바쁘게 장사를 하던 중에도 아빠와 엄마는 할머니 옷은 손으로 직접 빨았고, 할머니의 용변 실수로 더럽게 된 곳도 모두 손수 치웠고, 할머니가 동네 아무 곳에나 누워 잠들면 직접 엎고 오셨다. 그리고 아이들을 씻기듯이 할머니도 씻겨드렸다.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이제 아빠와 엄마가 음식을 하고, 설거지하고, 배달하고, 손님을 맞는 것 같은 일상이 되었다.



아빠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아픈 것을 외면하면 안 되고, 엄마는 아빠의 짐을 나눠서 져야 하고, 딸과 아들은 부모의 선택에 따라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것은 좋고, 나쁘다의 감정이나 옳고, 그르다의 감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신흥반점에는 이제 모두 다섯 식구가 산다. 매일 먹는 밥상에 다섯 세트의 수저가 차려지고, 처음에 네 식구였던 가족사진 옆에 할머니 독사진이 놓였다. 함께 찍은 사진은 없다는 것은 함께 한 추억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 사이의 천륜의 정은 끊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제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표정도 색깔도 없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에서 오히려 담담한 가족의 정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고, 배달을 하고, 손님을 맞는 그들의 일상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것에 대해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사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이 이들의 일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결국 가족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책임과 도리라는 문제가 힘든 순간을 함께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가족은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에도 생각이 나는 존재이지만, 아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두려울 때 더 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가족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로 열매를 맺고 사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앞에는 어떤 수식어보다 ‘우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가족은 운명이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코코 이렇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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