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섭 Mar 03. 2019

인간, 과학, 철학 그리고 언어의 접점

문자와 그래프

세상에는 많은 사물개념 있 이를 구별하려이름을 붙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태를 잡아 손질 방법에 따라 생태, 동태, 황태로 구분하지만 외국사람은 통틀어 명태로 부른다. 우리는 무지개를 7 색채로 구분하지만 3개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휘가 정교하다는 의미는 우리의 생각도 정교하다는 뜻이므로 언어 연구는 철학 연구의 중요한 갈래이다.


철학자 데리다는 '차연(Differance)'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기존의 어휘인 차이(Difference)가 자신의 철학 개념을 잘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연은 시간 지연을 수반한 차이라고 해석된다. 예를 들어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Mother'라는 단어를 듣고 영영사전을 찾는 상황을 보자.


Mother: Your mother is the woman who gave birth to you


당황스럽게도 Woman이라는 Mother보다 더 어려운 단어가 나온다. 아마 사전을 편찬하는 분들도 느끼겠지만 어휘의 정의는 또 다른 단어에 의존하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논법에 빠지게 됩니다. 즉  Mother 하나 찾다가 사전의 모든 단어를 봐할지도 모릅니다. Mother라는 실체에 도달하기까지 시간 지연이 일어나는 상황을 차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순환이 일어납니다. 물의 순환, 대기의 순환 같은 자연현상의 순환도 있고 피드백 제어 같은 공학적 순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차연발생하는데 심하여지면 홍수가 나고 태풍이 되기도 하고 제어에서는 폭발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데리다는 인문분야에 차연을 적용지만 나는 과학기술분야까지 확대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과학기술을 전공했고 요즘에는 업무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업무의 흐름을 보통 절차라고 하지요. 절차가 잘못되면 문제가 생기므로 오해 없도 절차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ATM에서 돈을 인출하려면 카드를 넣고 아래와 같은 절차를 순서대로 완료해야 합니다.


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금액을 입력하세요

5만 원 건 매수를 입력하세요

영수증을 받겠습니까?  


ATM의 절차는 간단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절차는 복잡합니다. 발전소 조건에 따라 특정 단계를 건너뛰기도 합니다. ATM 절차처럼 일련의 문장으로 표시할 수 있지만 실수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 노력한 끝에 '흐름논리도'라는 그래프를 개발했습니다. 흐름도와 논리도를 합성시킨 그래프이고 흐름논리도는 우리가 명명한 이름이니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이죠.


신규 발전소에는 이 흐름논리도로 작성된 절차서가 들어갑니다. 연구 개발한 보람을 느꼈죠. 더구나 수출한 원전에서도 흐름논리도가 들어갔습니다. 수출 대금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해외 경쟁사가 치고 들어옵니다. 구식 무기로 무장하고 인해전술로 공격하여 옵니다. 몇 사람이 막기 어렵습니다. 양보를 해도 회사로 돈이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업을 위해서라도 저는 흐름논리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국내 시장에만 머물 수가 없거든요. 흐름도 개념을 해외에도 널리 퍼트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흐름논리도의 특성을 맛본 고객은 우리 제품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말과 문자가 있습니다. 말은 순간적이고 직접적이므로 대부분 철학자들이 말이 문자보다 우선 수단으로 여깁니다.  이 탓인지 소크라테스나 예수님도 글보다는 말로서 진리를 설파했지요. 더 나아가 문자 중에도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보다 더 이성적이라는 인식까지 있습니다.


데리다는 말이 문자보다 이성적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해체시킵니다. Difference와 Differance는 프랑스에서는 동일하게 발음되지만 문자로는 구분이 됩니다. 즉 어떤 관점에서는 말보다 문자가 구별성이 있어 우수하지요. 인쇄술로 인한 종교개혁을 기억한다면 문자의 우위성을 수긍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문자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수학과 과학은 수식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일반 문자로 수식의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수식으로 표시할 수가 없으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페북에서도 다양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교통표지판도 기호로서 교통정보를 제공합니다. 공학에서도 다양한 그래프가 도입됩니다.


만일 문자로 동등한 정보를 제공하려면 긴 문장이 동원돼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흐름논리도도 긴 절차를 짧고 명료하게 표시하는 그래프입니다. 또한 컴퓨터 모니터에 알맞게 설계되고 지금 수행할 절차를 바로바로 보여주도록 규정되었습니다.


흐름논리도는 나에게 과학과 철학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통섭의 공간이었습니다. 문자를 해체시켜 그래프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저항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차연을 도입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도 그랬지요.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외국 경쟁사의 저항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진보된 설계 특성을 문서화하여 흐름논리도의 우수성을 확실히 구축하여 놓아야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해체를 통해 창조의 추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